불화이야기=고려외

무구정광대다리니<석가탑>, 부처, 보살, 불당, 사리탑, 사리합, 금강저. 종

백련암 2011. 5. 27. 14:14

 

 

이것이 그 유명한 무구정광대다라니 경이랍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본으로, 1966년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을 보수할 때 여러가지 사리장엄구와 더불어 발견되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석탑에서 다수 발견되는 작은 탑과 관련이 있으며, 사리신앙에 영향을 주고 있다.

8세기 중엽 무렵에 만든 것이며 당나라 측천무후가 집권하고 있을 때 만들어 사용했던 무주제자(武周制字)도 나타나고 있어 이채롭다.

통일신라 불교문화의 우수성과 한국 인쇄 문화의 높은 수준을 증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관세음보살 = 金銅菩薩立像 : 高麗 14세기

 

 

 

부처를 모신 작은 집 = 금동 불감(金銅 佛龕) : 高麗 14세기

불감(佛龕)은 작은 불당(佛堂)으로 집에서 예불을 드리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문 왼쪽에는 문을 지키는 인왕(仁王= 금강역사라고도 하며, 절의 문이나 불상을 지키는 수호신)을 조각하였고,

원래 안쪽에 작은 불상을 모셨던 것으로 추정된다.

벽면에는 구품인(九品印)을 맺은 아미타불(阿彌陀佛)과 보살(菩薩), 나한(羅漢= 부처의 가르침을 깨달은 성자)등을 새겼다.

 

 

나원리 오층석탑 사리갖춤(羅原里 五層石塔 舍利具) = 통일신라(統一新羅) 8세기

이 사리갖춤은 통일신라 초기에 대표적인 석탑인 나원리 오층석탑(국보 39호)에서 1996년에 출토되었다.

금동사각 외함의 네면에 각각의 방위를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새겨져있다. 사리함 안에는 금동제 구층소탑과 여래입상, 그리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의 종이 조각이 있어으며, 사리는 여래입상의 대좌(臺座) 아래 안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원리 오층석탑 五層石塔 國寶 제 39호

 

나원리 오층석탑 사리갖춤(羅原里 五層石塔 舍利具)안에 모셔져 있던 여래입상

 

나원리 오층석탑 사리갖춤(羅原里 五層石塔 舍利具) = 사리는 여래입상의 안치되었던 자리가 보인다.

 

감은사지 동삼층석탑 사리장엄구(感恩寺址 東三層石塔 舍利具) : 통일신라(統一新羅) <682년 경>, 보물 제 1359호

출토지 = 경상북도(慶尙北道)-경주시(慶州市) 양북면(陽北面) 감은사지(感恩寺址) 동삼층석탑(東三層石塔)

 

감은사感恩寺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인 682년경 신문왕神文王이 아버지 문무왕文武王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이다.

지금은 동서 삼층석탑과 건물터만이 남아 있다. 이 사리갖춤은 1996년 동탑을 수리하기 위해 해체했을 때 3층 탑신석 윗면의 사리공에서 발견되었다.

사리갖춤은 부처님의 유골인 사리舍利를 탑 안에 넣을 때 담았던 여러 겹의 용기 세트를 말한다.

감은사 동탑의 사리갖춤은 전각殿閣 모양 사리기를 상자 모양 사리외함 안에 넣어 중첩시켰다.

또한 사리갖춤 앞에 전시된 수정 사리병은 원래 사리기 중앙에 놓은 후 보주와 연꽃잎으로 장식된 복발覆鉢 모양의 뚜껑을 덮어 보이지 않도록 했다.

한편 금도금을 한 사리외함의 네 면에는 안에 넣은 사리기를 지키는 사천왕상 부조가 붙어 있다.

부처님의 세상을 수호하는 임무를 맡은 사천왕은 각 방위를 지키고 있는데, 북방 다문천왕은 손에 탑을 들어 방위를 나타낸다.

갑옷을 입은 사천왕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한 조각 기법이나 사천왕의 자연스러운 자세 등을 볼 때

당시의 금속공예 기술이 매우 우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금동사각 외함의 네면에 각각의 방위를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새겨져있다.

 

 

사리탑 = 은제 사리합(銀製 舍利 盒) :高麗 14세기

 

 

사리탑(舍利塔) : 高麗 14세기

 

 

금제 사리탑(金製 舍利塔) : 高麗 14세기

 

 

청동 금강저(靑銅金剛杵) = 고려

 

청동 금강저(靑銅金剛杵) = 고려

금강저는 고대 인도의 무기에서 유래한 형태로 번뇌를 깨뜨린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밀교법구이다.

제석천(帝釋天)이 지닌 상징물 이기도하다 

고려 후기에 중국 元 과 교류하면서 유입된 라마교의 영향으로 이와 같은 밀교법구가 유행하였다.

양 끝의 뾰족하게 돌출한 부분에 갯 수에 따라 독고저(獨鈷杵), 삼고저(三鈷杵) 오고저(五鈷杵)로 나뉜다.

 

 

장군 부부가 시주한 동종

"을사"명 동종("乙巳"銘 銅鐘)高麗 明宗(명종) 15년(1185년) 또는 高宗 32년(1245년) 제천시 인근 출토

상장군 조 아무개가 부인과 함께 발원하여 시주한 종이다. 우리나라 범종의 형식을 비교적 잘 갖춘 이종에는 임금의 만수무강과 국태민안,

중생의 편안함 등을 기원하는 내용의 발원문이 새겨져 있다. "상장군 조"가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종의 모양이나 발원문에 나타나는 관직 명칭 등으로 볼 때, 종을 시납한 "을사"년은 명종 15년(1185년)이거나 고종 32년(1245년)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