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이야기=고려외

국립 중앙박물관 = 용과 꽃과 시가 있는 도자기와 기와 사후도자기 사후도장

백련암 2014. 5. 10. 03:27

 

白磁 靑畵 雲龍文 壺(백자 청화 운룡문 호) = 시대 : 조선 18-19세기 *구름 용무늬 항아리

 

 

   

白磁 靑畵 雲龍文 壺(백자 청화 운룡문 호)의 다양한 면의 그림들

 

 

白磁 靑畵 雲龍文 壺(백자 청화 운룡문 호) = 시대 : 조선 18-19세기

 

 

   

白磁 靑畵 雲龍文 壺(백자 청화 운룡문 호)의 또 다른 면들

 

 

白地黑花 牡丹唐草文 甁(백지흑화 모란당초문 병) = 金나라  개성 출토   일명 = 백지흑화 모란 넝쿨무늬 병

 

 

   

白地黑花 牡丹唐草文 甁(백지흑화 모란당초문 병)

 

 

靑磁 陽刻 蓮唐草文瓢形 甁(청자 양각 연꽃 넝쿨무늬 표형 병) = 시대 ; 고려 12세기

일명 = 도교에 심취한 시인을 노래한 시가 새겨진 청자 병

 

몸체 양면에 시를 흑상감한 조롱박 모양의 청자병이다.

조롱박 모양의 몸체 전면에 연꽃 넝쿨무늬를 양각하고 굽 위쪽에도 양각으로 두 겹의 연꽃무늬를 둘렀다.

몸체 양면에 각각 마름꽃 모양의 창을 내고 그 안에 시구를 흑상감했다.

시에는 봄날 주흥(酒興)에 겨운 하지장(賀知章 657年~744年)의 술병을 언급한 구절이 있다.

하지장(賀知章)은 도교에 심취하여 술과 풍류를 즐긴 것으로 유명한 당나라 시인이다.

시 내용이나 병의 생김새로 보아 술병으로 썼을 가능성이 높다.  

 

 

  

靑磁 陽刻 蓮唐草文瓢形 甁(청자 양각 연꽃 넝쿨무늬 표형 병)

 

 

서천 추동리(舒川 楸洞里 高麗時代 무덤) 발견 =  저 세상에서도 이 세상과 같이...

 

서천 추동리 지역은 금강(金江)이 서해로 유입되는 요지로 넓은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어 선사시대부터 생활터전으로 손색없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시기의 분묘와 주거지가 확인된다.

서천(舒川)과 천안(天安) 사이를 잇는 고속도로 건설과정에서 고려시대의 돌덧널무덤(石槨墓, 석곽묘)과 움무덤(土壙墓, 토광묘)등

342기가 발굴되었다.

이들 무덤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그릇, 젓가락과 숟가락, 동경, 동전, 자기 그릇 등 생활용구 등과 함께 먹으로 글을 쓴 문서가 발견되었다.

무덤에 묻힌 유물들은 대체로 생활유물로서 무덤의 주인공이 평소 사용하였던 물품들이다.

저 세상에서도 이 세상과 같은 삶을 누린다고 믿었던 고려 사람들의 내세관(來世觀)을 엿볼 수 있다.

 

 

서천 추동리(舒川 楸洞里 高麗時代 무덤)에서 나온 유물

 

 

서천 추동리(舒川 楸洞里 高麗時代 무덤)에서 나온 유물

 

 

서천 추동리(舒川 楸洞里 高麗時代 무덤)에서 나온 유물 속에서 나온 靑銅印章(청동인장) = 도장

 

 

서천 추동리(舒川 楸洞里 高麗時代 무덤)에서 나온 유물

 

 

조형 토우(鳥形 土偶) : 시대 = 고려 13세기.  일명 = 새 모양 토기,  출토지 = 강화 곤릉 출토

 

 

"천순경진(天順庚辰)" 이라 쓰여있는 기와

檜巖寺址 出土 瓦當(회암시지 출토 와당) = 시대 : 조선 세종 18년(1436년), 세조 7년(1461년)

 

세종의 둘째형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칭호와 "정통병진(正統丙辰)"(1463년) 글씨가 새겨진 기와

"천순경진(天順庚辰)"(1436년)이 새겨진 봉황무늬 기와와 용무늬 기와들이다.

용과 봉황무늬 기와가 함께 사용된 것은 화암사가 왕실 관련 사찰이었음을 뒷바침하는 하나의 예이다.

 

 

檜巖寺址 出土 瓦當(회암시지 출토 와당) =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칭호와 "정통병진(正統丙辰)" 쓰여있는 기와

 

 

잡상(雜像) = 시대 : 조선 전기(朝鮮 前期) =    일명 = 수호신 모습의 장식기와

 

 

귀목문 암막새(鬼目文平瓦當) 귀목문수막새(동그란것, 鬼目文圓瓦當) : 시대 = 고려

 

 

청동 금탁(靑銅 琴鐸) : 시대 = 조선 태조 3년(1394년)   일명 = 시주자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 금탁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檜巖寺) 보광전 터에서 출토되었다. 금탁에는 모두 134자의 명문이 남아 있는데

"왕사(王師) 묘엄존자(妙嚴尊者) 조선국왕(朝鮮國王) 왕현비(王顯妃) 세자(世子)"로

시작하여 조선이 만세토록 전해질 것을 발원한 내용과 시주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명문의 조선국왕은 태조, 왕현비는 신덕왕후 강씨, 세자는 태조 7년(1398년) 왕자의 난에 희생된 방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