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말씀 =경전이야기

[스크랩] 세월 참 빠르기도

백련암 2007. 12. 19. 01:57


세월 참 빠르기도

 


조선 말기에 진묵대사 라는 큰스님이 계셨다.

진묵대사는 소석가(小釋迦)라 불리어질 만큼 뛰어난 법력을 가진 도인으로 여러 가지 일화를 많이 남겼다. 진묵대사가 말년에 상운암 조실(祖室)로 주석하고 계실때의 일이다. 큰스님을 모시고 정진하던 스님들이 일제히 탁발차 하산하게 되었다.

“조실 스님, 오늘 저희가 모두 탁발하러 떠납니다. 혼자서 힘이 드실텐데 어쩌지요?”

“내 염려는 그만 두고 잘들 다녀오게.”

“드실 쌀과 땔나무는 넉넉하게 준비해 두었습니다.”

 

대중들은 암자를 떠나면서 방 문 턱에 두 팔을 얹은 채 밖을 내다보는 조실 스님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진묵대사는 고개를 끄덕여 답례하고 대중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선정에 들었다.

 

청명한 하늘에 노을이 물들고 해가 기울어 달빛이 산사를 적실 무렵에도 진묵 대사는 처음의 그 자세로 두 팔을 방 문 턱에 걸친 채 앉아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싸늘한 새벽 공기가 몸 속을 파고 들어도 햇살이 따갑게 내리 쬐어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문이 거센 바람을 따라 여닫힐 적마다 진묵 대사의 손을 문짝에 치여 시커멓게 멍이 들고 살이 터져 피가 흘렀다.

이렇게 밤과 낮이 바뀌어 어느덧 한 달이 지나갔다.

 

시월 보름 결제일을 앞두고 탁발을 끝낸 스님들이 절로 올라왔다. 절에 도착하여 조실 스님 방쪽을 건너다 본 스님들은 그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우리가 떠날 때의 그 자세로 계시지 않는가!.” 부랴부랴 짐들을 내려놓고 조실 스님께 다가가니, 문에 치인 손은 피가 흘러 말라붙어 있었고, 온몸이 거미줄로 덮히고 얼굴 위로 거미가 기어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공양간을 들여다보니, 떠날 때 지어 놓은 밥이 곰팡이가 핀 채 썩어 있었다.

 

대중들은 서둘러 조실 스님을 말끔히 닦아 드리고 흔들어 깨웠다.

“스님, 저희가 돌아왔습니다.”

 

이윽고 눈을 뜨신 조실 스님이 하시는 말씀은 더욱 놀라웠다.

아니, 너희들 벌써 돌아왔느냐?

“벌써라니요? 스님, 한 달 만에 돌아왔습니다.

“한 달이라, 세월 참 빠르기도 하다.”

대중들은 할 말을 잊고 조실 스님을 물끄러미 올려다 볼 뿐이었다.

 

(2007.4.17(음 3월법회)-옥천사 대중)

 

 

출처 : 아비라
글쓴이 : 어질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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