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해수관음상 제 1장/삼각산 옥천암

백련암 2008. 3. 29. 00:29

 

보도각 백불인 해수관음보살

 

 

삼각산 옥천암 일주문

 

 

삼각산 옥천암은 해수관음상으로 유명하다.

이 관음보살에 기도해서 소원을 얻지 않은 이가 없었으므로 오늘날에도 옥천암에는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조선조 말엽, 순조 7년(1819)의 일이다.

지금은 고양시로 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경기도 고양군 고양읍이었다.

 

고양군 신도면 어느 마을에 나무장사를 해서 생계를 꾸려가는 젊은이가 있었다.

이름은 윤덕삼(尹德三)이라 했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나이가 서른이 넘도록 결혼도 하지 못했다.

 

덕삼은 70 이 넘은 늙은 부모님을 모시고 있었다. 

그는 매일 같이 나무를 했고 첫닭이 울기 기다려 나뭇짐을 지고 서울에 내다 팔았다.

 

신도면에서 서울까지 30 여리는 족히 되었다.

구파발을 들어서서는 불광동을 지나고 홍제동을 단걸음에 내달았다.

 

무악재를 넘어 서대문 거리로 나가 거기서 나무를 팔기도 했다.

텃세에다 경쟁까지 있어 가급적이면 자하문 쪽으로 향했다.

 

홍재동에서 왼쪽으로 길을 틀어 개천을 끼고 세검정을 선뜻 올라서면 자하문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발바닥이 부르트고 양쪽 어깨에는 굳은살이 박혔다.

땅 한평 없는 그로서는 나무장사만이 부모를 봉양하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다.

 

겨울이고 여름이고 나무만을 해다 팔았다. 

봄이고 가을이고 그에게는 나무 해다 파는 일이 전부였다.

 

나이가 벌써 서른을 넘기고 나니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도 없었다. 

만일 이대로 가다가는 노총각 신세를 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는 외로웠다.

 

밤이면 밤마다 고독에 몸부림쳤고 낮은 낮대로 온통 배필에 대한 그리움이 차올랐다.

더욱이 덕삼은 삼대독자였다. 

무엇보다 자기에게 와서 대가 끊길 것 같아 조상에 대한 죄스러움이 들기도 했다. 

집 안에 들어와도 가구라곤 들먹일 게 없었다.

설령 장가를 든다 해도 당장에 혼례를 치를 여우조차 없었다.

그러나 짝이주어지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살아가리라 생각했다.

괜스레 마음이 울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첫새벽  집을 나섰다.

나뭇짐을 지고 홍제동에서 세검정 쪽으로 길을 잡아 가노라니 어디선가 목탁소리가 들려 왔다.

덕삼은 나뭇짐을 내려놓고 담배 쌈지를 꺼냈다.

쌈지 한녘에는 담배를 말 종이도 들어 있었다.

우선 종이를 꺼내 왼손으로 쥐고,

쌈지에서 잘게 썬 담배를 한 줌 집어 내어 종이 위에 옆으로 길게 놓았다.

담배를 말아서는 마지막으로 침을 발라 입에 물었다.

 

목탁소리는 여전히 들려 오고 있었다. 

덕삼은 부싯돌에 잘 마른 쑥을 갖다 대고 오른손으로 부시를 꺼내 내리쳤다.

하얀 불꽃이 튀기며 마른 쑥에 불이 붙었다. 그날따라 담배맛이 좋았다.

 

연기가 사라지는 쪽을 바라보니 웬 절이 하나 보였다 .

옥천암이었다.

옥천암 아래에는 내가 흘렀고, 크고 작은 바위들이 늘어서 있었다.

덕삼은 이마 위에  손을 얹어 햇살을 가리며 자세히 보았다

수십 척이나 되는 바위가 서 있는데 거기에 마애불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아니 마애불상이 아니었다.

바위 그대로가 거대한 관세음보살상이었다.

그 앞에는 스님을 비롯해 많은 신도들이 기도하고 있었다.

초 타는 냄새와 향내가 코끝에 스며들었다.

덕삼은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덕삼은 생각했다.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바위에 불상을 조각했기로서니, 어떻게 생명도 없는 바위에 대고 예배를 하는 것일까? 

  우리네 인간들 처럼 마음 먹은대로 다닐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영험이 있다고 저러는 것일까.>

 

덕삼은 신도들의 예배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한갖 우상에 지나지 않는 다고 생각했다.

전에도 신도들의 예배를 무수히 보아왔지만 아직 한 번도 그것이 무의미하다고 느끼지못했는데

오늘 따라  덕삼에게 불현듯 회의가 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위의 불상을 믿느니 차라리 내 두 어깨와 두 다리를 믿지.>

 

회의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덕삼은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갔던 일이 생각났다. 

일주문에 들어서면서 부터 어머니는 예배를 하기 시작했다.

어린 덕삼도 어머니가 하는 대로 절을 했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들어서서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싶은 사천왕의 모습들을 보고

이내 어머니의 치맛자락으로 숨어들곤 했다.

 

덕삼은 그 생각을 하며 혼자 피식 웃었다.

어머니, 부처님은 어떤 분이에요?

그때  어머니는 부처님에 대해 이렇다 할 설명을 해 주지 못했다.

부처님? 부처님은 말이다. 福을 주는 분이란다. 부처님은  으음, 그러니깐......

어머니는 부처님을 복 주는 분이라고 했다.

 

복을 많이 만들어 놓고 당신 이름을 부르면 하나씩 나누어 주는 그러한 분이라는 의미로 설명했다.

그때 였다.

불공기도가  끝났는지 신도들이 하나 둘씩 흩어져 내려가고 있었다.

그중에  한 노보살이 덕삼이 쉬고 있는 길로 접어들었다.

노보살이 닥아오길 기다려 덕삼이 물었다.

할머니, 저 바위에 새겨 놓은 분은 어떤 분이에요? 

그리고 할머니는 무엇 때문에 거기에 절을하곤 하셨어요? 

그러자 노보살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봐요, 젊은이.

보아 하니 아직 노총각인 듯한데 나이도 꽤나 들어 보이고 그런데 뭘 잘 모르는 것 같애.

제가 무엇을 잘 모르는데요?

저 바위에 새겨진 분은 관세음보살님 이신데  정확하게 말하면 해수관음보살<海水觀音菩薩>이야.

그래서요?

저 보살님은 동해와 서해, 남해 할 것 없이 바닷가에는 반드시 계시는 분이며,

어부들의 삶을 보살펴 주고 가피하시는 분이네.

 

그래서 동해에는 양양의 낙산사 홍련암에 관음굴이 있고

서해에는 강화군 삼산면에 보문사가 있으며,

남해에는 금산에 보리암이 있지.

여기는 바닷가도 아닌데 어떻게 해수관세음보살을 모셨습니까?

그렇지 이곳은 바다는 아니지.

하지만 냇가이기에 해수관음상을 모셨고, 

보다  중요한 것은 바다에 가지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에게 인연을 맺어 주려고 모신 것이라네.

 

그런데 이 보살님이 워낙 영험하셔서 누구나 소원을 빌면 다 들어주신다네.

여보게, 젊은이. 젊은이도 소원이 있다면 저 보살님에게 가서 지극정성으로 소원을 빌어 보게.

 

덕삼이 말했다.

그렇지만 돌 부처가 무슨 영험이 있겠습니까?

저야 소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잘 모르는 말일세.

돌부처라도 믿는이의 마음 여하에 따라 여러가지 영험이 있지.

신앙은 이론적으로는 설명이 어려워. 직접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네.

자, 그럼 난 가네. 반드시 소원을 이루시게.

 

덕삼은 헤어지려는 노보살을 붙들엇다.

잠깐만요, 할머니.  제게 좀 더 얘기해 주십시오. 

정말 할머니 말씀대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아무렴 그렇구말구.

 

이제 좀 생각이 달라지나 보군.

돌부처라도 그냥 바위가 아니고 부처님의 모습을  새겨 모신 바위니까.

만일 사람이 그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고 지성으로 마음을 모아 기원하면, 신묘한 힘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부처님이 기원하는 자에게 오셔서 그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이네. 

 

그러기에 말이 있잖은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정성이 부족하고 신앙심이 부족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그저 바위이고 돌일 뿐이지만,

무정한 바위나 돌, 흙이나 나무라도

정성이 지극한 사람에게는 살아 있는 부처님으로 나타나는 것일세.

 

그러므로 소원을 이루고 못 이루고는 그 돌부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원하는 자의 마음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일세.

덕삼은 호기심이 일었다.

 

정말 그게 가능할까요?  노보살이 말했다.

당연하지.

 

이 옥천암에 다니는 신도가 수백 명이지만 소원을 이루지 못한 이가 거의 없다는게야.

세상에 무슨 할 일이 없어 이 험하고 깊은 산골짜기까지 와서 그 고생하고 헛돈 버리며 품 버리겠는가.

 

여보게 젊은이. 생각해 보게. 안그런가?  하긴 그렇기도 하겠군요.

그래서 여자들은 마음이 여리고 신앙심이 두터워 열심히 믿고 소원을 이루지만

남자들은 생각이 거칠어 건성건성 믿지 그러지 않으면 자네처럼 따지기나 하고 말야.

그러니 소원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말야.

 

밑져 봐야  본전인데, 어디 나도 소원이니 빌어볼까?

덕삼은 그길로 석불에게 달려가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제 소원을 들어주옵소서.

저는 나이가 서른이 넘도록 장가를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게 예쁜 여인을 배필로 보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들 딸 낳고 건강하고 잘 살게 해 주십시오.

나무장사도 면하게 해 주십시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저의 간절 한 소원입니다.

관세음보살님, 관세음보살님, 관세음보살님......

덕삼은 나무를 팔러 갈 때와 팔고 돌아올 때  항상 그 해수관음상 앞에서 절을 하고

소원을 빌고 또 이름을 불러  댔다.

 

여러날이 지나갔지만 그는 한  번도 거르는 일이 없었다.

그야말로 지극정성이었다.

덕삼은 예배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는 도시락을 부처님께 올렸다. 새로 지은 밥도 아니었다. 

깡보리밥 아니면 깡조밥이었고 온통 된장 냄새와 김치 냄새만 진동하는 반찬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비록 좋은 음식은 아니지만 부처님은 다 이해 하실 거야.>

 

덕삼은 그렇게 하기 어느새 백일이 지났다.

덕삼은 이제 관세음보살상에게 어머니 이상의 다정함을 느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지만 덕삼은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하루는 덕삼이 관세음보살에게 소원을 빌고 일어서려는 찰라,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먹장구름이 일고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관음각에 갇히고 말았다.

 

비가 멎기를 기다리는 동안 덕삼은 관세음보살상 앞에 우물고누를 그려 놓고 말했다.

관세음보살님, 보살님도 심심하시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 내기 고누를 한번 두시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길자신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

만일 관세음보살님께서 이기시면 제가 계속해서 공양을 올리겠습니다만,

제가 이긴다면 제 소원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제 소원이 무엇인지 관세음보살님은 이미 알고계시지요? 

덕삼은 조약돌 두 개를 주워다가

하나는 관세음보살님의 몫으로 하고 하나는 자기 것이라고 했다

그럼 제가 아랫사람이니 먼저 두겠습니다.

그는 첫수를 놓고 말했다.

보십시오, 제가 분명히 이겼습니다. 보살님께서는 지셨구요.

그러니 관세음보살님은 내일이라도 당장 제 소원을 들어 주셔야 합니다.

 

어느새 비는 멎었다. 

덕삼은  빈 지게를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 흥겹게 콧노래를 불렀다.

 

천안 삼거리 흥~응

능수야 버들은 흥~응

제멋에 겨워서

휘늘어졌구나 흥~응

에헤야 데헤야 흥~응

성화가 났구나 흥~응

 

그날 밤 덕삼은 꿈을 꾸었다.

꿈에 아름다운 모습에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나타나서 덕삼에게 말했다.

 

*너무 길어서 다음장으로 넘어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