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관음상 제 2장/삼각산 옥천암
옥천암 전경
보도각 백불인 해수관음상 /삼각산 옥천암
나는 옥천암에 있는 해수관세음이다.
너의 정성이 하도 지극하고 또한 갸륵하여 네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을 일러 주려고 한다.
내일 새벽 첫 닭이 울기 전에 나뭇짐을 지고 떠나 날이 밝기 전 자하문 밖에 당도해야 한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서 첫번째로 나오는 여자가 있을 테니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라.
<남녀가 유별한데 먼저 말을 걸기는 미안하오만, 어디로 가는 누구신지 제가 안내하겠으니 저를 따라 오시지요>라고
그리고 그녀를 너의 집으로 안내하면 너의 소원을 이루게 될 것이다.
덕삼은 그 말을 듣고 너무 기뻣다.
감사합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덕삼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제 소리에 놀라 깨고보니 꿈이었다.
덕삼은 첫닭이 울기를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는 재빨리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나뭇짐을 짊어졌다.
그때 덕삼의 어머니가 부시럭 소리에 잠이 깨어 밖에 나와 보니 이미 아들이 사립문을 나서고 있었다.
얘, 덕삼아!
오늘은 첫닭도 울지 않았는데 벌써 나가느냐?
예, 어머니,
오늘은 일찍 만나 데리고 올 사람이 있어서 그래요.
그래, 그럼 찬밥 남은 것이라도 먹고 가지.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려 하자 덕삼이 팔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밥 먹을 새도 없어요.
원 뭐 저리 급할까.
덕삼은 집을 떠났다.
나뭇짐을 지고 30리를 걸어간다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빈 속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즐거웠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지난 밤 꿈 얘기대로 라면 틀림없이 예쁜여인을 만나게 되어 있었다.
그는 길을 걸으며 앞날을 그려 보았다.
다 쓰러져 가는 초가 오두막일망정 벽은 맥질을 하면 된다.
그리고 긴 베개 하나에 이부자리 한 장이면 된다.
아들 딸들이 커 가면서 재롱을 부리는 게 눈에 선했다.
큰놈이 말썽을 부리기도 하겠지.
덕삼은 혼자 즐거워서 싱글벙글했다.
자하문 밖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행이다 싶어 나뭇짐을 벗어 놓고 먼동이 트기를 기다렸다.
집에서 이곳 자하문까지는30리나 되었고 그 30리 길이 너무나 짧다고 생각했는데,
자하문이 열리는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고역이었다. 지루했다. 하지만 참기로 했다.
덕삼의 눈은 자하문 문짝 아래 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때였다.
자박 자박 걷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었다.
덕삼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문을 응시하는데,
하얀 버선발이 문안에서 멈추었다.
관세음보살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어.
자기도 모르게 그만 소리를 질렀다.
삐걱 하고 문이 열렸다.
한 여인이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세검정 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덕삼은 벌떡 일어섰다.
그는 성큼성큼 걸었다 그러면서도 그 걸음은 매우 빨랐다.
앞서 가던 여인이 힐끗 돌아봤다.
이때다 싶어 그는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초면에 실례인줄 압니다만,
더욱이 남녀가 유별한데.
하오나 어디로 가시는 낭자인지 제가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시겠지요?
여인의 음성은 의외로 차분했다.
아직은 이른 새벽이라서 상대방의 얼굴이 똑똑히 보일 시긴도 아니었다.
또한 이 외진 곳에서 낯모르는 남자를 대하고 있지 않은가.
예, 소저는 윤도령이란 총각을 찾아갑니다. 이름은 덕삼이라 하고요.
덕삼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제가 윤도령, 총각 덕삼이 올시다.
아, 그러세요?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덕삼은 사실대로 얘기했다.
간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속에 한 여인이 나타나 자기는 옥천암의 관세음보살이라며 소개를 하고는
오늘 새벽 자하문 밖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을 안내하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바로 낭자인 듯싶습니다.
여인이 말을 받았다.
어쩌면 소저의 꿈과 그리도 같습니까.
소저도 간밤의 꿈에 어떤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자하문 밖을 나서면 첫번째로 어떤 남자를 만날 것이다.
그의 이름은 윤덕삼이며 너의 베필이 될 것이다.
그는 마음씨가 고운 사람으로 네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은 내일 새벽 먼동이 틀 무럽이다> 하면서 사라졌습니다.
이제보니 도령이 바로 그 여인이 말하던 윤덕삼 도령이셨군요.
그게 다 천생연분이지요.
소저도 그리 믿고 싶습니다.
두 남녀는 십년지기나 된 듯 얘기를 주고 받으며 길을 걸었다.
옥천암 관음각 앞에 이르렀을 때 덕삼이 쉬어 가자고 했다.
둘은 관세음보살상 앞으로 갔다.
이미 날이 밝았다.
막 떠오르는 태양이 그들 두 사람의 이마를 비추고 관세음보살상에도 비추었다.
한데 낭자는 성씨가 무엇이오?
덕삼이 새삼스레 묻자 여인이 대답하였다.
저는 심 낭자라고 합니다. 저의 아버님은 규장각 학사를 지낸 분이고요.
그렇군요, 심 낭자.
우리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이나 올리고 갑시다.
덕삼이 먼저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관세음보살에게 큰절을 올렸다.
심 낭자도 따라서 함께 했다.
한참 절을 올리고 있는데 심 낭자가 소리를 질렀다.
어머! 바로 이분은 간밤의 꿈속에 나타났던 여인과 너무나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관세음보살님이 우리의 인연을 맺어주셨군요.
그렇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저의 소원을 들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심 낭자의 소원도 들어 주신 것입니다.
맞지요?
덕삼은 심 낭자를 돌아봤다.
심 낭자 역시 싱긋 웃었다. 덕삼과 마찬가지로 심 낭자도 짝을 구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심 낭자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덕삼은 여인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보며 물었다
아니, 이 기쁜날, 어찌하여 낭자께서는 눈물을 흘리십니까?
감격의 눈물인가요? 아니면.......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햇살이 기둥을 만들면서 여인의 가슴에 내리꽂히고 있었다.
여인의 앞으로 어디서 나타났는지 다람쥐 한 마리가 잽싸게 지나갔다.
보드라운 꼬리를 하늘로 향하고 사뿐히 뛰어 지나갔다.
관음각 앞으로 흐르는 냇물소리가 더 높게 들리는 듯했다.
심 여인은 명문대가의 규수로서 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열여덟 살 때까지 어머니로 부터 신부수업을 착실히 받았다.
시서와 음악, 예의 범절, 음식 만들기, 바느질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을 잘 익혔다.
그는 열여덟 살에 어느 양반댁으로 시집을 갔다.
혼처는 이미 오래 전에 정해져 있었다.
그녀는 시집가던 날, 시집에서 소박을 맞았다.
이유는 그녀에게 공방살이 끼었다는 것이었다.
공방살이 끼면 자식을 낳을 수 없다고 했다.
남의 집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은
여인에게 있어서 치명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첫날밤부터 남편을 보지도 못했다.
3년을 기다렸지만 남편은 끝내 심 낭자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녀는 친정으로 돌아왔다.
친정 부모님은 예전처럼 대해 주지 않았다.
시집간 날부터 소박을 맞아 되돌아온 딸이 늘 짐스러웠고,
심 낭자는 심 낭자대로 천덕꾸러기가 되어갔다.
그녀는 친정에 돌아와 7년 간 남편의 회심이 있길 기다렸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심 낭자는 처녀나 다름이 없었다. 실제로 한 번도 남편과의 만남이 없었다.
그러나 다시 시집을 갈 수 도 없었다.
호적으로는 이미 남의 아내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 지내는 것이 고역이었다.
자신도 자신이려니와 자기 때문에 애처로워하는 부모를 바라보기가 더욱 면구스러웠다.
심 낭자는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어떻게든 친정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심 낭자는 어머니에게 졸라 댔다.
어머님,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아무래도 집을 떠나야만 할 것 같습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떠난단 말이야.
딱히 정해 놓은 곳은 없습니다. 하오나! 이대로 산단는 것은 저도 저지만,
다른 식구들에게도 더 없는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려무나.
심 낭자의 어머니는 값나가는 금, 은, 보석, 산호, 비취, 진주 등 귀중한 패물을
한 보따리 챙겨 주었다.
그날 밤, 심 낭자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한 여인이 나타나 말했다.
성을 벗어나려거든 다른 문으로 나가지 말고 반드시 자하문으로 나가거라.
그리고 첫번째로 만나는 남자가 그대의 배필이 될 것이다. 명심하라 .
그 사람은 유덕삼이며 아직 혼처를 정하지 못한 노총각이니라.
그렇게 해서 심 낭자는 덕삼을 만났고,
이제 그와 함께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꿈속의 여인이 바로 이곳 옥천암의 해수관세음보살이었던 것이다.
덕삼은 심 낭자의 얘기를 듣고 너무나 감격했다.
심 낭자가 준비해 온 점심 도시락을 꺼내어 관세음보살님께 올리고
감사의 기도를 올린 뒤 아침으로 식사를 때웠다.
그 후 그들은 따로 날자를 택하여 간소하게 혼례를 치렀다.
심 낭자가 지니고 온 패물을 팔아 논 밭을 사고 집과 가재도구도 장만했다.
그리하여 신도면 일대에서 꽤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모두 옥천암에 모셔져 있는 해수관세음보살의 가피에 의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