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양생(梁生)의 사랑 /제 2장= 3장으로 연결

백련암 2008. 3. 30. 02:13

 

 

 

양생(梁生)의 사랑 /제 2장

 

 

시녀가 노래를 마치자 여인은 얼굴에 슬픈 빛을 띠며 말했다.

진작 당신을 만나지 못하였음을 못내 아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 아름다운 인연을 어찌 천행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만일 소첩을 버리지 않는다면 평생토록 당신의 수건을 받들고 빗을 집어

드리겠습니다.

하오나 만일 당신이 나를 저버리신다면 저는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사라지겠습니다.  

양생이 바라던 바였다. 얼마나 많은세월을 고독과 싸우면서 살아왔던가.

그런데 이처럼 아름답고 착한 여인을 저버리다니,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대를 진정 사랑하오. 그대 또한 나를 사랑하고 . 한데 내 어찌 그대를 저 버릴 수 있겠소.

약속하리다.

하지만 여인의 일거일동이 좀 수상하여 그는 유심히 그녀의 동정을 살폈다.

이윽고 서쪽 봉우리에 달이 걸리고 먼 아랫마을에서 닭의 홰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벽 예불을 시작하는 도량석 소리가 나는가 했더니 범종소리가 여명을 가르며 은은하게 들려 왔다.

 

희끄무레하게 먼동이 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한낮이 밤과 교대하여 그 자리에 나앉게 될 것이었다.

여인이 시녀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술상을 거두어 돌아가거라. 파해야 할 시간이구나.

여인의 말이 떨어지자 시녀는 주안상을 거두어 안개처럼 어디론가 사라졌다.

양생이 고개를 갸웃하자 여인이 다소곳한 모습으로 말했다.

가연(佳緣)이 이미 이루어졌어요. 당신을 모시고 저의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오니  허락하소서.

양생은 기꺼이 승락했다. 

그는 한 쪽 팔을 굽혀 여인이 거머 쥘 수 있도록 배려했다.

둘은 판도방을 나왔다. 

여인이 앞장을 서다시피하여 앞길을 안내했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울타리 밑에서 개갸 짖고 길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뭇 이상한 것은 누구나 양생이 여인과 함께 가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혼자서 이른 새벽녁에 어디 다녀오는 줄 알고 있었다. 

양도령,  어디 다녀오는가, 이 이른 새벽녘에?

 

양생은 대답했다.

예, 어젯밤에 한잔 걸쳤더니 좀 취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만복사에서 눈 좀 붙였다가 방금 옛 친구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양생은 여인을 따라갔다.

 

숲속으로 난 길은 이슬이 담뿍 내려 바지가랑이를 적셨다. 길은 점점 으슥해졌다.

아직 해도 돋기 전이었다.

 

한참을 따라가던 양생이 의아하게 여기고 물었다.

낭자가 머무는 곳은 아직 멀었소?

예, 소첩은 이처럼 누추한 곳에 머뭅니다. 자, 가시지요. 거의 다 와 갑니다.

그녀는 말 끝에 시를 한 수 지었다.

 

이슬 내리는 오솔길

저물기 전에 가고 싶건만

어인 이슬이 이리도 심해

내 소원을 더디게 하느뇨.

 

이를 듣고 양생이 화답했다.

 

엉거주춤 저 여우

다리 위로 건너가네

정은, 아가씨 노리는 마음

미친 놈 멋없이 설레이네.

 

 

둘은 함께 웃고 함께 읊으며 개령동(開寧洞) 골짜기로 들어갔다.

 

한 곳에 이르니 쑥밭이 즐비한데 아담하고 고운 집 한채가 수려히 서 있었다.

여인은 양생을 데리고 그 집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곧 이어 밥상이 들어왔는데 지난 밤 만복사에서의 차림새와 비숫했다.

 

양생은 거기서 연 사흘 동안 즐기며 보냈다.

그 즐거움은 한평생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됨에 있어서  조금도 모자랄게 없었다.

시녀의 얼굴도 아름답고 고왔다. 하지만 교태를 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좌우에 벌려 놓은 그릇들은 무늬가 없었다.

가구들도 그랬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글씨나  그림이나 무늬는 보이지 않았다.

 

이건 인간의 세상이 아니야. 절대로 아니야.

양생은 수시로 일어나는 의문을 떨쳐 버릴 수 가 없었다.

하지만 여인의 은근하고도 정겨운 접대에 그러한 생각들을 접어 두기로 했다.

 

양생은 생각했다.

<아무렴 어때. 인간세상이든 아니든.>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렀다. 사흘 낮 사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여인이 문득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양생을 향해 뭔가 말을 하려다 그만두고,

또 말을 하려다 그만두곤 했다.

 

양생이 눈치를 채고 안심시키며 말했다.

뭔지 말씀해 보시오.

주저할 것이 뭐가 있겠소.

우리 사이에 말이오.

어서 말해 보오.

말씀드리지요. 이곳 사흘은 인간세상의 3년에 해당합니다.

이제는 그대가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인간세상으로 돌아가시어 옛일을 돌보심이 어떠하신지요.

양생이 짐작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지금 이승이 아니라 저승이거나 아니면 신선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하고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웬지 양생은 아쉽다 못해 서글퍼졌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이오 낭자?

여인이  어깨를 들먹이고  있었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는 것이 너무나 역력했다.

 

그녀가 말했다.

이번에 다하지 못한 연분은 내생에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시를 읊었다.

 

개령동 깊은 골  봄의 수심 안은 채 

꽃은 지고 또 피고

온갖 근심 더 할세라

아득산 초협 구름 속 님을 여의고는

서상강 대밭 속에  눈물 어린 눈동자여.

 

맑은 강 따뜻한 날씨 원앙이 짝을 찾고

푸른 하늘 구름 걷히자

비취새 노니누나.

님이여!

맺사이다. 좋고 좋은 동삼쌍관과

비단부채 가지고서

맑은 가을 원망할 게 없나니. 

 

 

*초협이란 중국의 땅 이름으로 수목이 울창한 깊은 골짜기였다.

그리고 소상강은 순임금의 두 부인인 아황과 여영이 놀던 아름다운 강이었다.

부부의 두 마음이 영원히 변치 말기로 약속하면서 맺는  실은 동삼쌍관이라 했고,

사랑 잃은 여자의 정경을 비단부채에 비유했다.*

 

그만큼 여인은 유식했다.

여인은 은잔을 한 벌 내어 양생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남원에서 서쪽으로 40리에 보련산이 있고 그 산에 보련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그 절에서 내일 재가 있습니다.

이는 저의 부모님이 저를 위해 베푸는 것입니다.

저의 부모님을 한 번 만나심이 어떠하올는지요?

 

양생이 말했다.

그야 당연한 말이오 내가 낭자를 버릴 마음이  있겠소 ?

내 꼭  당신의 부모님을 만나뵈오리다.

여인은 사라졌다. 찰나의 일이었다.

양생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볼 뿐 도저히 일어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너무 허무했다.

사흘의 환락이 이로써 끝나다니. 그러나 그는 일어섰다.

 

그는 다음날 여인이 일러준 장소에서 그녀가 준 은잔을 들고 그녀의 부모를 기다렸다.

 

과연 얼마쯤 있으려니 큰 행차가 다가 왔다.

수레에 바리바리 짐을 싣고 보련사로 가는 중이었다.

딸의 대상재를 지내기 위해서였다.

 

그때 한 시종이 한 손으로 양생이 들고 있는 은잔을 가리키고는 주인에게 말했다.

 

저기 보십시오.

저기 저 사람이 들고 있는 은잔은 아씨의 장례식 때 관 속에  부장품으로 넣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주인이 놀라 물었다.

시종이 말했다.

저 서생이 들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주인님, 아씨의 부장품이 틀림 없습니다.

주인이 말했다.

그런것 같구나.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저 사람의 손에 들려 있을꼬?

시종이 신이 나서 말했다. 

마님, 아무래도 소인이 보기에는 도굴한 것이 틀림없는 듯 하옵니다. 

원, 세상에 아씨의 부장품을 훔치다니.

*양생(梁生)의 사랑 /제 3장 으로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