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문수동자가 준 산삼을 먹고

백련암 2008. 4. 11. 21:22

 

 상원사 문수동자

 

문수동자가 준 산삼을 먹고 


 

이제 외국 이야기를 한 편 하겠습니다.
중국 오나라의 왕자 부(溥)는 왕 양륭인(楊隆인)의 외동아들로서 장차 한 나라를 물려받아야
할 몸이었습니다.

 

왕자는 타고난 총명으로 왕도(王道)를 익히며 건강하게 자랐으나,

나이 스물이 갓 넘자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이상한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곧 고열에 사지가 뒤틀리면서 뼈마디가 녹아내리는 듯한 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한번 발병하면 10일 이상 계속되는 이상한 병이었을 뿐 아니라, 그 빈도도 해가 갈수록 잦아졌습니다.
왕은 왕자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 넓은 중국 천하의 용하다는 의사들을
모두 불러 모았지만,

치료는 고사하고 병명조차도 제대로 밝히지 못했습니다.


왕자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괴로웠습니다.

호사스런 궁중생활도 더 높은 권세도, 꽃다운 아내와 궁녀들의 시중도 귀찮게만 느껴졌습니다.
병고(病苦)와 짜증 속의 나날을 보내면서 왕자는 자기의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내 무슨 전쟁의 복분으로 왕자로 태어났으며, 

내 무슨 죄업으로 이런고통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가?"
그러던 어느 날, 내시 유겸지(劉謙之)가 가져온 불경을 뒤적이다가
차츰 불법에 심취하게 되었고,

마침내 자기의 불치병과 신세에 대해 원망 하지 않는 상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화엄경>을 읽다가 문수보살의 지혜와 신통에 감탄하여 '문수보살의 친견'을 은근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왕자는 스님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문수보살을 친견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예로부터 오대산(五臺山)은 1만 문수보살님이 머물러 계신 영산(靈 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왕자님께서 거기로 가셔서 지극정성으로 기도 하시면 1만 분 중 한 분의 문수보살은 틀림없이 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왕자가 환희하여 오대산으로 떠나려 하였으나,
아내를 비롯한 궁중 사람들은 말리고 또 말렸습니다.
"성치 않은 몸으로 그 먼 곳으로 가시는 것부터가 불가하옵니다.

절대로 가셔서는 아니되옵니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는 것.

오대산으로 가다가 죽으면 하늘이 나를 거두어 가는 것이요.

대산에 이르러 성인을 친견하고 죽는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
왕자는 고집을 부려 내시 유겸지와 함께 왕궁을 떠났고,

마침내 오대산에 도착하고 보니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 한없이 마음이 평화로워졌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예불하고 염불하고 법문을 듣고.....

그리고 하루 네 차례씩 기도하며 왕자는 기원했습니다.
"문수보살님, 이 박복한 중생이 보살님을 친견하기 위해 머나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이 몸, 죽기 전에 단 한번만이라도 보살님의 참모습을 보고 가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때, 문수보살상 앞에 꿇어 엎드린 왕자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아, 문수보살님!"
왕자는 기도 끝에 뒷산으로 올라갔다가 큰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
소년을 만났습니다.

소년은 10세 가량 되어 보였고, 큰 망태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너는 어디 사는 누구냐?"
"저는 이 오대산에서 살고 있는 만수사리(曼殊舍利)입니다."
"무엇을 하러 다니느냐?"
"약초를 캐러 다닙니다."
"주로 어떤 약초를 캐느냐?"
"산삼도 캐고 백복령도 캡니다."
"산삼?

산삼을 캐기가 10년 공부하여 도를 통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데, 자주 발견되느냐?"
"예. 이 오대산은 다른 곳과 달라서
산삼을 캐기가 도라지나 더덕 캐기보다 더 쉽습니다."
"정말이냐?"
"예."
"그럼 그 망태기 속에도 산삼이 들어 있겠구나.

한 번 보여 줄 수 있겠느냐?"
"예."
소년은 대답과 함께 망태기를 열어 보였고,

과연 그 속에는 팔뚝 크기 만한 산삼이 여러 개 들어 있었습니다.
"처사님. 드시고 싶으면 아무거나 한 개 골라 잡수세요."
"이 귀한 산삼을 돈도 안주고 먹어?

저 아래 절로 함께 내려가자.

네 가 요구하는 대로 값을 준 다음 먹도록 하자꾸나."
"돈은 천천히 받아도 되니 먼저 잡수시기나 하세요.

산삼은 산에서 먹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한 개 먹어 볼까?

그런데 어느 것을 먹어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구나.

네가 하나 골라 주렴."
"이것이 좋습니다."
소년은 망태기를 한번 휘젓더니 마치 사람의 형상과 비숫하게 생긴
산삼 한 뿌리를 집어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색깔이 누르스름하고 향기가 진동하는 동자삼(童子蔘)을 대하자  왕자는 입 안이 가득 침이 고였고, 

정신없이 쿡쿡 씹어 꿀꺽 삼켰습니다.

그리고 소년과 함께 절로 내려왔는데,

절 문에 이르렀을 때 소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만수사리야, 만수사리야 -."
목이 터져라 불러 보았지만 소년은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절 안의 스님들이 뛰쳐나와 이상한 듯이 물었습니다.
"만수사리라니? 왕자님, 지금 누구를 찾으시는 것입니까?"
왕자가 소년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소상히 말하자,

스님은 합장배례하며 말했습니다.
"왕자님! 그 소년은 사람이 아니라 문수보살님이요,

만수사리는 문수사리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제 왕자님께서는 문수보살님을 친견하고 또 성약(聖藥)을 얻어 잡수셨으니, 묵은 병이 구름 걷히듯 사라질 것입니다."
왕자는 무릎을 치며 크게 안타까워했습니다. "내 어찌 이토록 어리석은가?

문수보살님을 친견하고도 보살님인 줄 깨닫지 못하고 은혜만 입었으니...."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방으로 들어간 왕자는
곧바로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산삼의 기운에 취해 하루 반 동안 죽은 듯이 잔 다음 깨어났습니다.
이렇게 문수보살의 가피를 입어 건강한 몸을 회복한 왕자는 궁중으로 돌아와 왕위를
계승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한 인왕(仁王)의 정치를 행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