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후**
노환으로 누워 계시는 스님께 시자가 여쭈었다. "스님. 30년 후에 누가 스님의 소식을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
"말씀 안 해 주시겠습니까?" 스님께서 고개를 가로 저으셨다.
"말씀 해 주시는 겁니까?" 스님께서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그때 저도 그냥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됩니까?" 스님께서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병노(病老)의 생각**
"스님. 누워 계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아무 것도 안 한다."
"목석(木石)도 아니신데 무슨 생각이라도 하실 것 아닙니까?" "......"
"법을 아끼시지 말고 말씀 좀 해 주십시오."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고 있다."
"본래면목을 아직도 못 찾으셨습니까?" "찾기는 벌써 찾았지. 하지만 찾고 또 찾고 자꾸 찾는다. 너도 자기 면목을 부지런히 찾거라."
**검박(儉薄)**
하루는 떡이 너무 많아서 시자가 여기저기 나누어 준 적이 있었다. "절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은 좋지만, 수행자가 배만 부르면 되는 것이니 두고두고 밥 삼아서 먹으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쉽게 음식을 처리하느냐?" 고 꾸짖으신 일도 있었다.
동지 때에는 팥죽이 많아 걱정을 하면, "원적사에 혼자 살 때에는 한 달 동안 팥죽만 먹은 일도 있었다. 그래도 아무 탈 없이 공부만 잘 했다."고 하시어 팥죽이 바닥날 때까지 그것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나물 반찬 남은 것을 몰래 파묻었다가 스님이 아시고는 다시 파다가 씻어서 같이 드신 적도 있었다.
거제도 토굴에 계실 때, 시자가 잠간 외출을 하고 오니 스님께서 몹시 노한 모습으로 계셨다. 누가 다녀가면서 냉장고를 정리하다가 음식을 내다버렸는지, 무엇을 한참 찾고 계셨는데 아무리 찾아도 못 찾으신 모양이다. "너 또 음식을 함부로 버렸구나?" "아닙니다. 스님. 제가 한 번 찾아 보겠습니다." 그러나 역시 찾을 수가 없었다. "누가 상한 음식으로 알고 어디 파묻었나 봅니다." 결국 그 넓은 토굴 주위를 몇 시간 동안 여기저기 스님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삽질하면서 땀을 흘려야만 했다.
한번은 누가 우유를 많이 갖다 놓은 것을 시자가 스님께서 잘 안 드신다고 한쪽에 미루어 두었던 것이 상하였다. 시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것을 보시고, "우유가 상했구나. 상한 음식도 끓여 먹으면 괜찮다. 끓여서 같이 먹자" 고 하셨다. 시자가 상한 음식을 차마 스님께는 드릴 수 없어서 혼자서 몰래 끓여 먹은 적도 있었다.
일력(日曆) 종이로는 메모지로도 쓰시고 화장실에서도 쓰셨다.
편지를 받으시면 겉봉투를 뜯어 안쪽 면은 메모지로 쓰셨다. 코를 풀고 난 화장지는 바닥에 잘 펴서 말렸다가, 화장실에서도 쓰시고 붓글씨 쓰시다가 바닥에 묻은 먹을 닦아내는 데에도 쓰셨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양말 젖는다고 맨발로 다니시곤 했다고 한다.
여름철에 모시옷을 입고 외출하셨다가 비에 젖어 돌아오시면, 웬만하면 다시 빨아서 풀을 할 텐데 극구 "그럴 필요 없다." 시며 방바닥에 깔아 말려서 입으셨다.
하루는 풀먹이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고 하셨다. 보통 옷에 풀을 먹일 때에는 풀을 쑤어서 대야에 담은 옷에 부어넣고 치대는데, 그것이 잘못 되었다고 가르쳐 주시는 것이었다. 우선 대야에 옷을 넣으시고는 작은 찻잔을 가져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찻잔에 조금씩 풀을 담아 옷에 부어 치대시고, 다시 조금 부어 치대시고, 끝내 그렇게 조금씩 부어 옷을 다 풀 먹이시는 것이었다. 냄비에 남은 풀이 조금 있었는데, 방에서 쓰시던 좌복피를 가져오라고 하시어 남김없이 풀을 사용하셨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시자들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혹 빈방에 전등이라도 켜놓은 것을 발견하시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너희 아버지가 한전 사장이라도 되느냐? 모든 게 다 시주의 은혜로 충당하는 것인데, 시주가 절에 아까운 돈 갖다 주는 것은 스님들이 공부하라고 하는 것이거늘 왜 필요 없이 낭비하느냐 이 말이야?"
늘 스님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셨다. 누가 차를 사드리려고 하면 다른 말씀을 하신다. "나에게는 이미 좋은 차가 있다. 기름도 필요 없고 어디 주차시킬 걱정도 없다. 이 두 다리만 있으면 다른 차들이 못 가는 산이며 강이며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라도 갈 수 있다. 게다가 서울 가면 늙은이라고 해서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도 공짜로 타고 다닌다. 우리나라가 그래도 살기 좋은 나라이긴 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회자되는 시님의 몸에 밴 검박한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소리 없는 소리]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