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침과 영혼의 말씀

[스크랩] 이 생에 마치지 못 하면 `밥중`이요, `골동품` 일 뿐/원융스님

백련암 2008. 7. 24. 14:04
***이 생에 마치지 못 하면 ‘밥중’이요 ‘골동품’일 뿐***
    포수 덫에 걸린 맹수가 살려 몸부림치듯 목숨 건 일전으로 화두 들어야 소식있어 8식은 ‘제8마귀’ 여기에 주착하면 착각도인 백척간두 진일보 하듯 오매일여까지 정진해야 중국의 원안 선사는 “화두라야 비로소 탄탄한 관문에 도달한다”고 했습니다. 조사관문은 문 없는 문인 ‘무문관’입니다. 항우 장사가 쇠망치로 때려도 안 부서지는 문이고, 십지보살도 열 수 있는 문이 아닙니다. 오로지 부처님 법을 철저하게 사무쳐 깨달은 묘각지 보살이라야 통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부를 점검할 때 화두 공안으로 점검을 합니다. 구경도리에 요달하는 것도 화두를 깨쳐야만 가능합니다. 화두를 깨치지 않고 팔만대장경과 이론서를 외우고 읽어도 아무런 소용없고 오로지 화두를 깨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조계종은 부정할 수 없는 육조 문하생들입니다. 지금 당장 화두가 없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이미 참선 문중에 들어온 것입니다. 따라서 화두가 없으면 지금이라도 배워서 화두를 생명으로 삼고, 부처님으로 삼아 정진해 가야 합니다. 화두만 제대로 깨쳐 요달하면 부처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불한다는 말은 하면서 진정으로 성불한 것이 무엇인줄 모릅니다. 법당에 부처님 32상 80종을 모셔놨는데 여러분은 부처님하고 똑 같은 상호를 갖춰야만 부처가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냥 중생 그대로 자성을 요달하면 부처가 된 다는 것을 모른다 말입니다. 혹 안다 해도 믿지를 않습니다. 화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원오극근 선사의 이야기 속에 그 답이 있습니다. 원오극근 선사는 “마치 포수들이 놓은 덫에 걸린 맹수처럼 하라”고 했습니다. 덜컥 올가미에 걸린 맹수가 빠져 나가려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덫은 더 조여 옵니다. 다리가 끊어질 정도로 점점 조여 오지만 포기하지 않고 몸부림칩니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어서 끊고 도망을 쳐야 살지 걸렸으니 죽는 수밖에 없다고 포기하면 포수가 바로 잡아버립니다. 바로 그 맹수처럼 화두를 들라고 한 것입니다. 옛 스님들도 생사의 올가미로부터 뛰쳐나와 오로지 살 수 있는 한 가닥 길은 화두를 깨치는 것이라 했습니다. 화두를 깨쳐야만 생사를 해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화두를 타파 하지 못하면 생사해탈을 못한다 하는 것입니까? 증도가에 “법의 재물을 덜고 공덕을 없앰은 심의식으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음이라.”(損法財滅功德 莫不由斯心意識)했습니다. 모두가 심의식의 장난입니다. 여기서 심의식이란 제8식인 ‘아뢰야식’ 을 말합니다. 수행을 통해 이 아뢰야식 경계까지 오면 도인인 줄 착각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미세 망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이것마저도 버리지 못하고 주착해 버리면 마치 자신이 도인 경지에 올라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는 도인행세만 하려 듭니다. 그래서 ‘마삼근’을 말씀하신 동산 선사는 이를 두고 ‘제8 마귀’ 라고 한 것입니다. 바로 이 심의식 경계를 초탈해야만 생사해탈 도리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 8식까지도 초탈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화두타파입니다. 그러니 폼 잡고 좌선해서 호흡 고르고, 앞 뒤 둘러보고, 체면보고 할 겨를이 없습니다. 지금 덜커덕 덫에 걸려서 ‘아차’하는 이 순간을 놓치면 내가 포수한테 잡혀 죽게 돼 있는데 앞 뒤 옆에 돌아볼 겨를이 없단 말입니다. 체면불구하고 거세게 달려들어 이 오랏줄을 끊고 도망쳐야 합니다. ‘화두만 깨치면 성불한다’는 조사 스님들의 말을 믿고 하루라도 빨리 정진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화두가 없으신 분들은 유나 스님께 달려가서 화두 달라고 조르셔야 합니다. 수좌 사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화두만 한 공덕 갖고도 염라대왕한테 안 끌려간다.”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원오극근 선사 법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평생 총림에서 이가 누렇고 머리가 허옇도록 살면서 이 도리를 모르면 총림의 골동품일 뿐이다.” 골동품은 가치는 있지만 용처가 없습니다. 또한 선가에서 일컫기를 ‘총림의 뒷방승’이요, 뒷방승이 ‘총림의 밥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도리 끝내 못해 마치면 밥중이라 이 말입니다. 저도 내일 모레 칠십인데 ‘밥 중’소리 안들을 수 없을 것 같아 참 걱정입니다. 선방에서 참선한다고 면죄부 있다 생각하면 절대 안 됩니다. 화두를 든 이상 목숨 걸고 열심히 하라는 얘기입니다. 제 변명 같긴 하지만 이 공부에도 시절인연이 있습니다. 대혜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불성이 뜻을 알고자 할진대 마땅히 시절인연을 관찰하라. 시절이 당도하면 그 뜻은 저절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금생에 저도 숨넘어가기 전에 한 소식 할 스님이 있을 것이라는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중국 원나라 고봉 스님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15살에 머리카락을 깎는데 머리카락 떨어진 자리에 하얀 좁쌀 같은 것이 잔뜩 떨어지는데 가만히 보니까 모두 사리인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도인이었던 것입니다. 고봉 스님처럼 선근 공덕이 아무리 많아도 시절이 있어야 익는 법입니다. 15살에 출가한 고봉 스님은 21살에 선방에 들어가 설암 스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화두를 드는데 잠이 하도 와 몸 하나도 주체를 못한데 이르자 3년 동안 해 마치지 못하면 죽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서서 참선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고봉 스님은 오조 법연 선사의 사구게 말후구인 “백년 삼만 육천 날에 되풀이하고 되풀이한 놈은 바로 이 놈”을 보고 한 소식 얻었습니다. 고봉 스님은 그 때 이른 경계가 어떤 경계인지도 모르면서 누구한테 점검도 받지 않고 구경각에 이른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몇 해가 흘러 설암 스님이 점검해 볼 마음을 먹고 물었습니다. 저 놈이 한 소식 하긴 했는데 어떤 살림살이인지 모르겠거든요. 설암스님이 “일간호호시(日間浩浩時)적에도 일여(一如)하냐? “예.” “그럼 꿈에서도 일여하냐?” “예.” “그러면 잠에 푹 들어서 꿈도 없을 때도 일여하냐?” 그땐 캄캄하거든! 고봉 스님은 “아무것도 없습니다”했습니다. 설암 스님은 이에 “아직 깨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몽중일여엔 이르렀지만 오매일여에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고봉 스님은 여기서 더 정진해 인가를 받았습니다. 간화선은 분명 최상승법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는 불성이 있습니다. 지금 화두를 드시기 바랍니다. 나태한 마음으로 드는 것이 아니라 간절하게 화두를 들면 분명코 시절인연이 닿아 한 소식 얻을 것입니다. 옛 조사 스님들이 걸어 온 길입니다. 여러분들도 그 장정에 올라 생사를 해탈하시기 바랍니다. 글·사진=주영미 기자 /법보신문 원융 스님은 원융 스님은 1938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스님은 1972년 해인사에서 성철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74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성철 스님의 법맥을 이어 받은 스님은 지금까지 30년 넘게 해인사 선방에서 참선수행 중이다. 스님은 2004년까지 7년간 조계종 기본선원의 교선사를 맡았으며, 서장 강의로도 유명하다.
티끌같은 이마음/국악명상
출처 : 나누는 기쁨 실천회
글쓴이 : 은빛물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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