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동행
인간은 행복할 수 없는 존재로 보인다.
행복은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 나라 저 나라, 이 시대 저 시대의 무수한 사람들이 불행했고,
점점 더 불행의 나락 속으로 빠져들고
평생 고통 속에서 살다가 죽었는데,
어떻게 붓다나 크리슈나,
예수와 같은 소수의 사람들은 행복을 성취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이 불행하다 보니까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다.
행복한 사람에게는 종교가 필요 없다.
행복한 사람에게는 온 우주가 신전이요,
온 존재계가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행복으로 하는 것은 모두 기도가 된다.
그대의 일은 예배가 된다.
그대의 호흡은 찬란한 영광이 된다.
찬란한 은총이 된다.
사람들은 모두 끌려다니고 조종당하면서도
자신의 운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대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것을 잊어먹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모두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불행하다.
자신의 삶과 하나되어 살 때,
삶 속에서 물 흐르듯 흐를 때
그대가 하는 것은 무엇이나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된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면,
자신의 삶을 사랑하면 그대의 삶은 명상이 된다.
그대는 항상 밖의 것을 구하려고 내면의 것을 희생한다.
전 세계를 얻는다 해도 자기 자신을 잃으면,
온 세상의 부를 몽땅 차지한다 해도,
내면의 보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대의 불행은 바로 여기에서 온다.
어느 누구도 그대를 대신하여 그대의 삶을 결정해 줄 수 없다.
세상의 계율과 도덕과 윤리는 모두 그대를 죽일뿐이다.
그대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자신의 천성과 본질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대는 행복할 수 없다.
강제적으로 주입된 모든 패턴들을 버리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불꽃을 찾아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면 온 세상과 삶이 저절로 흘러간다.
고요히 앉아 느껴보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자기 자신이 되지 않는 한, 그대는 정녕코 행복할 수 없다.
그대는 자기 자신 외에 다른 어떤 존재도 될 수 없다.
그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라.
그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감지하고
그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라즈니쉬 - 행복한동행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