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북도 = 천년!.. 감동..그리고.

양산 통도사 = 중로전 구역(대광명전, 관음전, 세존비각, 해장보각, 용화전,) 설법전, 개산조당.

백련암 2011. 10. 4. 20:59

통도사의 역사는 곧 이 불사리(佛舍利)를 지켜온 투쟁의 역사이기도 한데, 고려 말부터 왜구들이 침범하여 수차례에 걸쳐 불사리를 가져가려 함에 서울까지 피신시켰고, 조선시대에는 왜구에게 약탈당하였다가 동래에 사는 한 거사가 이를 극적으로 찾아서 탈출하기도 하였다.

이후 사명대사(四溟大師)는 불사리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금강산의 휴정대사(休靜大師)에게 보내어, 전운이 다소 후에야 비로소 황폐한 금강계단을

정리하고 다시 본 자리에 봉안하였던 것이다.  

또한 통도사에는 유서깊은 거찰답게 현재 총 65동 580여 칸에 달하는 대규모의 전각과 많은 문화재들을 간직하고 있다. 국보 제290호인 대웅전 및 금강계단

을 비롯하여 은입사동제향로(銀入絲銅製香爐, 보물 제334호),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 보물 제74호) 및 봉발탑(奉鉢塔, 보물 제471호) 등 수십 종의 보물급 석탑ㆍ석등ㆍ불화ㆍ불구(佛具) 등이 보존되어 있다.

 

*그 뒤 고려시대인 1085년(고려 선종 2) 통도사의 경내임을 나타낸 사지석표(四至石標), 즉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를 세울 만큼 사세가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1377년(우왕 3)에 이르러서는 왜적이 침입하여 불사리를 가져가려 하자 당시 주지였던 월송대사(月松大師)가 깊이 감추는 일이 있었고, 다시 1379년에 왜적이 쳐들어오자 월송대사는 불사리를 모시고 서울(개경)까지 피신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때의 전후사정은 이색(李穡)이 지은 「양주통도사석가여래사리기(梁州通度寺釋迦如來舍利記)」에 자세히 전한다.

이처럼 왜구에 의한 약탈로부터 불사리를 지키려는 통도사 스님들의 끈질긴 투쟁도 역사 속에서 살펴볼 수 있다.

 

조선시대 들어와서도 불사리와 금강계단은 더욱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영남지방에 자주 출몰하던 왜구들은 임진왜란과 함께 본격적인 약탈행위를 감행,

불사리와 계단도 피해를 입어 왜적에게 불사리를 약탈당하기에 이르고 말았다. 이때 동래에 사는 백옥거사(白玉居士)가 왜적에게 잡혀 있다가 사리와 영골을

찾아 극적으로 탈출해왔다. 그러자 의승장 사명대사(四溟大師)는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크고 작은 사리함 두 개를 금강산의 휴정대사(休靜大師)에게 보내었고, 그 후 사명대사는 전운이 다소 걷힌 1603년(선조 36)에야 비로소 황폐한 금강계단을 정리하고 다시 사리를 본 자리에 봉안하였다.

 

*그 후 춘파(春波)ㆍ우운(友雲)ㆍ용암(龍岩)ㆍ청성(淸性)ㆍ덕명(德溟)ㆍ탄해(坦亥) 등의 스님이 각 시대에 여러 건물들을 중건, 중수하였다. 근대에 들어서는 구하(九河) 스님이 1911년 금강계단을 중수하였음

 

통도사는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의 3개의 로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로전이 3개라는것은 통도사가 3개의 가람이 합해진 복합사찰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1. 상로전 =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응진전, 명부전, 삼성각, 산령각,등이고

2. 중로전 = 해장보각(자장율사의 진영을 모신곳>, 대광명전, 용화전, 관음전, 이고

3. 하로전 = 극락보전, 영산전, 약사전, 가람각, 범종루 등이다

 

 

대광명전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94호

 

 

대광명전 좌측 처마의 용의 얼굴

 

*우측의 용의 얼굴 혀를 빼고 있다.  대광명전▲                                      *뒷쪽의 처마 잍에 물고기를 잡아먹는 용▲ 대광명전

 

비로자나 부처님

 

 

대광명전 신중단

 

 

관음전 관세음보살 : 관음전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251호

 

 

관음전 앞 석등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70호

 

 

세존비각

 

 

開山祖堂

 

 

개산조당 안쪽

 

해장보각<창건주 자장율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음>▲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94호>

 

慈藏律師의 영정

 

 

 

해장보각의 벽화 호랑이의 미소<까치와 호랑이>

 

용화전 : 창건주 미상

 

미륵부처님

 

 

봉발탑 = 고려시대 보물 제 471호

석가모니의 발우(鉢盂)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석조물이다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전하는 전법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새로지은 설법전(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