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착선사(無着禪師)이야기
경기도 영원사 문수보살
무착거사와 문수보살 벽화이야기
무착선사(無着禪師)이야기 : 성 안내는 그 얼굴이...
그 스님은 어려서 출가하여 무착(無着)이라는 법명을 받고 계율과 교학을 공부하였는데, 문수보살의 영지(靈地)인 오대산을
참배하고 문수보살을 직접 친견하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양식이 떨어져 산아래 마을에서 탁발을 하고 오는 길에 소를 몰고 가는 한 노인을 만났는데
노인이 묻기를, "자네는 어떤 사람인데 오대산에 왔는가?"
"예,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왔습니다." "문수보살을 친견할 수 있을까?․․․․ 자네 밥 먹었나?" "안 먹었습니다"
노인이 그냥 지나가자 노인의 모습이 범상치 않음을 느낀 무착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노인의 뒤를 따라가다 보니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웅장한 절 한 채가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노인이 문 앞에 서서 "균제야!" 하고 부르니 한 동자가 뛰어나와 소 고삐를 잡고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무착스님도 뒤따라 들어가 노인에게 인사를 드리자, 그때 동자가 아주 향기로운 차를 한 잔 가져왔습니다.
다완(茶椀)이 파려( ;七寶의 하나)로 되어 있었고, 차가 제호(醍 )였습니다.
향기로운 냄새와 상쾌한 분위기에서 얼떨떨해 있는데 노인이 무착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어디서 왔는가?" "남방에서 왔습니다"
노인이 찻잔을 들어 보이며 "남방에는 이런 것이 있는가?" "없습니다"
"이런 것이 없으면 무엇으로 차를 마시지?"
무착스님이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는 방안에 가득찬 순금장식물들에 눈을 주고 있었습니다.
"남방 불법은 어떻게 주지(住持)하는가?" "말법(末法) 비구가 계율을 지켜 겨우 유지합니다"
"대중은?" "혹 300명도 되고 혹 500명도 됩니다"
"여기 불법은 어떻게 주지(住持)합니까?"
"용과 뱀이 혼잡해 있고 범인과 성인이 동거하고 있다네(龍蛇混雜 凡聖同居)."
"대중 수효는 얼마나 됩니까?"
"전삼삼(前三三)․후삼삼(後三三)이지"
무착스님은 노인의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새 날이 어두워져 무착은 노인에게 하룻밤 쉬어가게 해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노인이 곧 바로 "염착(染着)이 있는 자는 자고 갈 수가 없지"라고 해 놓고는 조금 후에 다시 묻기를,
"자네 계율을 잘 지키는가?" "아, 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지켰습니다"
"그건 염착(染着)이 아니고 무엇이지?"
또 무착스님은 대답을 못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스님의 이마 위에는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동자를 불러 배웅하게 한 뒤에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미 어둑해진 길가로 나와서 무착은 동자에게 물었습니다.
"아까 노인에게 이곳에 사는 대중의 수효를 물었더니 전삼삼 후삼삼이라 하시던데 도대체 무슨 뜻인 가?"
그러자 동자가 갑자기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무착아!"
그 소리에 무착은 엉겁결에 대답하였습니다. "네!" "그 수효가 얼마나 되는가?"
동자가 다그쳐 물었습니다. 무착은 또 다시 말문이 막혀 동자를 보고 말하였습니다.
"이 절의 이름이 무엇이냐?" "반야사라고 한다네."
동자가 말하며 가리키는 곳을 보니, 웅장했던 절은 어느새 간 곳이 없었습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동자도 사라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과 절이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 허공에서 게송 한 구절이 들려왔습니다.
면상무진공양구(面上無瞋供養具)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구리무진토묘향(口裡無瞋吐妙香)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심리무진시진실(心裡無瞋是眞實) 깨끗해 티 없이 진실한 그 마음이
무염무구시진상(無染無垢是眞常)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문수보살을 직접 뵙고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무착은 수행에 더욱 힘썼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앙산선사의 법을 이어받아 무엇에도 거리낄 바가 없는 대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어느 해 겨울, 무착이 동짓날이 되어 팥죽을 쑤고 있는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죽 속에서 문수 보살의 거룩한 모습이 장엄하게 나타났습니다.
문수보살이 옛날 오대산에서 있었던 일을 상기시키며 먼저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무착은 그동안 무고한가?
그러자 무착스님이 갑자기 팥죽 젓던 주걱을 들어 문수보살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습니다.
문수보살은 깜짝 놀라서, "이보게, 무착, 내가 바로 자네가 그리도 만나고 싶어하던 문수라네, 문수!"
무착스님이 이 말을 받아서 대꾸했습니다.
"문수는 문수고 무착은 무착이다. 문수가 아니라 석가나 미륵이 나타날지라도 내 주걱맛을 보여주겠다."하자
爾三大劫修行 내가 삼대겁(三大劫)을 수행해 오는 동안
還被老僧嫌疑 오늘에야 노승의 괄세를 받아보는구나
苦호連根苦 쓴 호박은 뿌리까지 쓰고 (호박 호)
甘苽徹체甘 단 참외는 꼭지까지 달구나 (꼭지 체)
문수보살은 이 말을 남기고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문수보살을 친히 뵈려고 오대산 금강굴에서 삼 년 동안이나 기도하며 문수보살을 원불로 모셨던 무착인데,
그런데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문수보살이 몸소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호령을 하며 주걱으로 얼굴을 갈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체득한 선사들의 서슬 푸른 기백인 것입니다.
* 문수보살: 보현보살과 함께 짝하여 부처를 좌우하고 있는 보살로, 왼쪽에 있으며 지혜를 맡고 있다,
바른 손에는 지혜의 칼을 들고 왼손에는 꽃 위에 지혜의 그림이 들어 있는 청련화를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