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북도 = 心 산사 길없는길

미륵근본도량인 김제 금산사

백련암 2012. 7. 2. 21:14

 

보제루<普濟樓>

 

가람의 중심으로 들어서는 중문(中門) 역할의 건물이 보제루이다.

현재의 건물은 1960년대에 건립되어 1998년에 증축된 바 있으며, 조선 중기에 만세루(萬歲樓)라는 12칸 규모의 누각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어

지금의 보제루는 아마도 이 만세루를 계승한 건물이라 생각된다.

 ‘보제루’라는 편액 외에 ‘개산천사백주년기념관’이라는 편액을 함께 걸고 있다.

 

우리나라 사찰에 누각건물이 등장하기 시작한것은 조선시대부터 인데 잦은 외침에 따라 승병이 조직되고 사찰이 의승군의 집결소가 되고 군사적 필요에 따라

누각으로 번성하였다고 한다. 승병이 사라지면서 법회, 강설, 대중회의 장소로 사용되었고 오늘날에는 이러한 실용적인 기능이 아닌 가람 구성요소의 하나이다.

 

 

보제루에 모셔진 부처님= 최근에 조성된 금동석가여래좌상

 

 

 

노주<露柱> = 보물 제22호

 

어떠한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 불분명하다.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표현하고 그 안에는 아래에 꽃문양을, 위에는 복련(覆蓮)을 조각했다.

고려 초 10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체로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노주란 ‘드러낸 기둥’이란 뜻인데 석조 대좌 위에 보주형 장식을 한 돌기둥이 안치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노주라고 불렀던 것 같으며, 금산사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한 예이다.

 노주란 '노반지주(露盤之柱)'의 줄임말로서 처음에는 전각의 정면 귀퉁이에 세우는 두 개의 장대였다가 나중에 탑의 상륜부를 구성하는 부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탑의 일부인 이 노주가 왜 별도의 조성물로서 만들어졌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사중 기록에 보면 '노주'는 잘못된 명칭이고 '광명대(光明臺)'로서 미륵전 앞에서 미륵불에게 광명을 공양하던 석등이었다고 한다.

이 말이 맞다면 지금의 모습은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이 없어진 상태가 된다.

노주의 구조는 지대석ㆍ하대석ㆍ중대석ㆍ상대석ㆍ상륜부로 이루어져 총 높이가 2.3m이다.

 

 

팔각석등<八角 石燈> = 보물 제828호

 

전체적으로 단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데, 지붕돌의 꽃조각이나 석등 각 부분의 조각수법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어 놓았는데, 꼭대기의 머리장식까지 모두 온전히 남아 있다.

화창에 시설되었던 창문만 제외하면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있으며 높이는 3.9m이다.

아래받침돌은 둥근 평면 위에 여덟 장의 연꽃잎을 새기고, 그 위의 세워진 가운데기둥은 위가 좁고 아래는 넓은 모양이다.

윗받침돌은 아래받침돌보다 크고 무거운데, 역시 둥근 평면 위에 여덟 장의 연꽃잎을 조각하였다.

화사석은 네 면에 창을 만들어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하였고 창 주위에는 구멍이 3개씩 뚫려있는데, 창문을 달기 위한 구멍이었던 듯하다.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작은 꽃조각으로 꾸며 놓았다.

 

 

석련대<石蓮臺>= 보물 제23호

 

이 작품은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화려한 조각 및 장식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석련대는 석조연화대좌(石造蓮花臺座)의 준말로, 불상을 올려놓는 돌로 만든 받침대이다. 대석 전체가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이 연화대좌는 형태가 희귀하고 크기도 매우 거대하며, 하나의 돌로 조각한 것이지만 여러 개의 돌을 사용한 것처럼 상ㆍ중ㆍ하의 구성이 정연하다.

 

 

    

 하대                                                                        상대

 

상대는 윗면이 평평하며 중앙에 불상의 양발을 세워 놓았던 것으로 보이는 네모난 두 개의 구멍이 있다.

밑면에는 윗면을 떠받치는 연꽃이 에워싸고 있으며, 꽃잎 사이에도 작은 잎들이 틈틈이 새겨져 있어 더욱 화려하다.

하대는 엎어놓은 연꽃모양이 출렁이는 물결무늬처럼 전면을 채우고 있다.

 

 

= 나한전<羅漢殿> =

 

1995년에 새로 건립한 건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등계단의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계단을 참배하였기 때문에 계단예배전(戒壇禮拜殿)

이라고도 불렀다.

四聖제<사성제>를 깊이 깨달아 일체의 無明과 愛着을 여의고 모든 괴로움이 消滅된 涅槃<열반>의 경지에 이른 羅漢을 奉安하고 있다.

석가모니불, 미륵보살, 제화가라보살, 그리고 16나한상이 조상되어 있고, 대적광전 화재때 全燒<전소>된 五百羅漢像은 1966년에 새롭게 조상하여

奉安하였다.

 

 

  

나한전 편액                                                                                                 16나한상 

 

나한전 법당

 

석가삼존상<석가모니불, 미륵보살, 제화가라보살> 및 가섭ㆍ아난존자상을 봉안하고 그 좌우에 16나한상을 배치하였으며,

삼존상 뒤로는 계단식의 단을 마련하여 소형의 5백 나한상을 봉안하고 있다.

 

 

삼성각<三聖閣> = 나한, 칠성, 산신등 이 모셔져있음

 

 1940년대 경에 건립되어 방등계단과 오층석탑의 동쪽에 적멸보궁과 나란히 위치해 있었으나, 최근 가람을 정비하면서 지금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소조독성상                                                                                                 산신탱화

 

소조독성상과 함께 칠성ㆍ독성ㆍ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는데, 세 점의 불화 모두 1945년에 퇴운일섭(退耘日燮) 스님이 조성한 것이며,

독성상 또한 이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사전<祖師殿>

 

내부에는 진표율사(眞表律師)를 비롯하여 혜덕왕사, 원명대사, 뇌묵대사 등 역대 조사들의 진영(眞影)을 봉안하고 있다.

 

 

명부전<冥府殿>

 

내부 정면 출입문 위에 있는 ‘금산사시왕전중수기(金山寺十王殿重修記)’ 현판을 통해 1857년(철종 8)에 중건된 사실을 알 수 있을 뿐 그 이전의

연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명부전은 조선시대 가장 유행하던 전각이다.

1857년(철종 8)에 중건했다는 기록만 전할뿐, 1598년(선조 31) 정유재란으로 절이 소실되기 직전의 기록에

"시왕전 9칸"이라는 기록이 보이므로 지금의 명부전은 조선중기의 시왕전이 바뀐 것으로 생각된다.

 

 

명부전 내부

 

불단 중앙에 木造地藏菩薩坐像<목조 지장보살>과 소조 도명존자입상ㆍ무독귀왕 입상의 지장삼존상을 모시고, 그 좌우에 소조十王像 및

기타권속들을 배치하였다.

이들 삼존상 등은 상호가 비교적 각진 모습에 도식화된 느낌으로 보아 조성시기는 명부전이 중건된 무렵으로 생각된다.

1857년 조선 철종 8년 만택비구니스님이 재건한 것을 1972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

宿世<숙세>의 惡業으로 苦痛받고 있는 地獄衆生을 濟度<제도>하기 前에는 成佛하지 않겠다는 誓願<서원>을 세운 大乘菩薩<대승보살>이다.

 

 

 

천왕문<天王門>

금강문과 일직선상에 있는 천왕문은 1994년 가람을 중수하면서 새롭게 조성된 건물이다.

내부에는 좌우 각 2구씩 목조사천왕상이 봉안되어 있다.

 

  

동쪽 = 지국천왕 (칼을 들고 있음)                                                                       남쪽 = 증장천왕 (용, 여의주를 들고 있음)

 

  

서쪽 = 광목천왕 (삼지창, 보탑을 들고 있음)                                                            북쪽 = 다문천왕 (비파를 들고 있음)

 

동쪽에 = 지국천왕은 칼과 부먹을 쥐고 있으며 ▶착한이는 복을 주관하고 악한이는 죄와 벌을 다스린다.

       남쪽에 = 증장천왕은 용과 여의주를 가지고 있으며  ▶만물을 소생시킨다.                                               

       서쪽에 = 광목천왕은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있으며  ▶악한자에게 고통을 주어 불법에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북쪽에 = 다문천왕은 비파를 들고 있으며  ▶어리석음의 어둠속에서 방황하는 중생을 인도한다.     

 

 

당간지주< 幢竿支柱> = 보물 제28호

 

절에 중요한 행사나 법회가 있을 때 깃발이나 쾌불을 걸어서 세울 때 버팀목으로 사용하는 석조물이다.

基壇石<기단석>과 間帶<간대>를 完壁<완벽>하게 具備<구비>하고 있는 국내<國內> 유일<唯一>의 幢竿支柱<당간지주>이다.

양<兩> 支柱의 各面<각면>에 粧飾<장식>된 彫刻<조각> 技法<기법>이 현저하게 두드러지며 한국 당간지주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統一新羅時代<통일신라시대> 全盛期<전성기>인 8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사찰에 행사나 법회가 있을 때 이를 알리는 일종의 안내판이 당간(幢竿)이고, 이를 지탱하는 것이 지주(支柱)이다.

당간지주는 반드시 절의 입구에 놓이게 마련이다. 금산사의 당간지주는 금강문에서 동북쪽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래의 상태 그대로 잘 남아 있다.

 

 

정연한 기단부와 지주의 다양한 조각들은 우리나라 현존하는 당간지주 가운데 가장 뛰어나며, 지주에 세 곳의 홈을 마련한 예는

익산의 미륵사지와 경주 보문리 당간지주에서도 볼 수 있어 이들의 조성시기는 모두 8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절을 중창한 것이 766년(혜공왕 2)의 일이므로 당간지주의 조성시기 역시 이 무렵으로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금산사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

 

보제루 아래 서편으로 최근에 건립된 성보박물관이 있다.

2004년 겨울 현재 개관하지 않았으며, 앞으로 금산사 및 금산사 말사의 성보문화재들을 보관하고 연구하며 전시할 예정이다.

 

 

解脫橋

 

 

해탈교 밑 아치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