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북도 = 心 산사 길없는길

미황사(美黃寺) = 일주문, 삼성각, 후원, 달마상, 부도암, 부도군, 석조,

백련암 2012. 10. 20. 03:40

미황사는 위도상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해 있는 절입니다. 1692년(숙종 18)에 건립된 <미황사사적비(美黃寺事迹碑)>에 기록된 창건 연기 설화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 8년(749)에 사찰이 창건되었다고 하니 천년고찰(千年古刹)이라 할 수 있는 매우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또한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수려한 달마산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사찰입니다.

 

 

미황사 일주문

 

삼성각(三聖閣)

전각은 1998년에 새로 지은 것으로 내부에는 뒷벽에 일자형 불단을 조성하여 중앙에 칠성탱(七星幀)을 중심으로 산신탱(山神幀)과 독성탱(獨聖幀)을

봉안하였다.

 

 

 

산신탱(山神幀)

 산신탱의 앞에 노란 호랑이를 탄 산신상을 함께 모셨다. 그림의 구도를 보면, 화면 왼쪽에 포효하는 호랑이의 등에 걸터앉은 산신과

그 좌우에 동자와 천녀가 배치되어 있다.

동자와 천녀는 함께 봉안되어 있는 독성탱과 모습이 흡사하다. 배경으로는 근경에 소나무, 원경에 폭포가 표현되었다.

 

 

칠성탱(七星幀)

내부에는 뒷벽에 ‘一’자형 불단을 조성하여 중앙에 칠성탱(七星幀)을 중심으로 산신탱(山神幀)과 독성탱(獨聖幀)을 봉안하였다.

3폭의 불화는 모두 불기 2970년 계미년(癸未年, 1943)에 조성하였다.

 

칠성탱은 본래 중국의 도교사상과 불교가 융합되어 생긴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으로 일컬어지는 북두칠성을 표현한 것으로

화면 중앙에 치성광여래를 그 좌우에 일광 월광보살과 칠성을 묘사한다.

가로로 긴 폭의 이 칠성탱은 본존의 광배 뒤쪽으로 협시보살을 배치하고 좌우로 길게 태상노군(太士老君),

좌보필성(左補弼星), 우보필성(右補弼星) 등의 권속을 배치하고, 화면 좌우 상단에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칠성(七星)을 묘사하였다.

 

 

독성탱(獨聖幀)

 일반적으로 독성탱의 독성은 천태산(天台山)에서 홀로 수선(修禪)하여 독성(獨聖), 독수성(獨修聖)이라 불리는 나반존자(那般尊者)를 일컫는다.

이 독성탱은 크기는 물론 제작시기도 산신탱과 같다. 근경에 소나무, 원경에는 천태산을 배경으로 희고 긴 눈썹을 가진 독성이 왼손에 염주를 들고

중앙에 앉아 있고, 차를 달이는 동자와 여인이 좌우에 작게 등장한다.

 

 

 

2001년 이후 계속해서 후원채인 안심료를 신축하였음  공양간(후원)

  

공양간(후원)

  

달마상  

 

부도암(浮屠庵)

 

부도암(浮屠庵)부처님

 

 

 부도군(浮屠群)

부도밭은 대웅보전에서 남서쪽으로 동백나무 숲길을 따라 도보 10여분 거리에 자리 잡았다. 여기에서 부도밭은 다시 남쪽과 서쪽 두 구역으로 나뉘어

남부도밭에 21기, 서부도밭에 6기 등 제법 많은 다양한 형식의 부도를 모시고 있다. 이들 부도의 조성 시기는 대부분 18~19세기로 추정된다.

 

남부도밭은 창건설화에 전하는 통교사 터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탑비 5기, 부도 21기, 부도 부재 1기 총 27기가 모셔져 있는데,

연담 유일(蓮潭 有一) 스님의 부도를 비롯해서 벽하당(碧霞堂), 설봉당(雪峰堂), 정련당(井蓮堂), 미봉당(眉峰堂), 완해당(玩海堂), 정암당(晶岩堂),

송암당(松岩堂), 영월당(靈月堂, 1808), 오봉당(午峰堂, 1788), 송월당(松月堂), 백월당(白月堂, 1841), 죽암당(竹庵堂, 1821), 붕명당(鵬溟堂),

사봉당(師峰堂), 응화탑(應化塔), 혼허당(渾虛堂), 영허당(靈虛堂), 이봉당(?峰堂) 및 당호가 분명하지 않은 2기가 있다. 이러한 남부도밭의 부도는 규칙적

이지는 않지만 대략 5열로 정리되어 있는데, 낭암대사부도가 그의 스승 송암당부도보다 앞 열에 있고, 송월당부도가 그의 제자인 응화당부도 보다 뒤에

있는 점 등을 미루어보아 일관적이지는 않지만 대체로 뒷열의 부도가 연대가 올라가고 앞쪽으로 나올수록 점점 연대가 내려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황사사적비(美黃寺寺迹碑)

미황사사적비는 부도전 앞 오른쪽 축대 아래에 위치하며, 미황사의 창건연혁을 기록한 비로서 조선 1692년(숙종 18) 병조판서를 지낸 민암(1634~1692)이

쓴 이 사적기는 미황사의 창건 설화의 내용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화강암으로 제작된 이 사적비는 본문을 새긴 비신(碑身)의 앞면과 음기를 새긴 뒷면은 잘 연마되어 있지만 양 측면은 거칠게 다듬어졌다.

높고 널찍한 비신의 상단에는 좌서로 ‘미황사비(美黃寺碑)’라 적었는데, 비문은 민암이 짓고 본문과 전서는 이우가 썼다.

 

비개(碑蓋)는 팔작지붕형을 띠고 있는데, 등을 맞댄 두 마리 용이 용마루를 장식하고 있고 중앙에는 타원형의 홈을 팠다. 용의 주변은 도식적인 운문으로

가득 메워져 있어 용마루에 있는 한 쌍의 용이 마치 구름 위를 비상하는 듯 보인다. 이 사적비는 귀부 없이 자연암석 위에 세워져 있다.

 

 

부도암 석조(浮屠庵 石槽)

 

미황사 석조(美黃寺 石槽)

석조(石槽-구유) 2개가 남아 있는데, 하나는 대웅전 앞뜰에 있고, 다른 하나는 사적비가 있는 부도전 건물 옆에 있다.

전자는 장방형인데 현재 음수대로 사용하며,  후자는 주형(舟形)으로 방형이 아닌 타원형으로 이루어 졌으며,  조선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도군(浮屠群)

서부도밭은 남부도밭에서 서쪽으로 난 숲길을 따라 2~3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들어가는 입구부터

영파당(靈坡堂), 창암당(蒼岩堂), 고압당(孤鴨堂, 18세기중엽), 감파당(減坡堂, 1768), 천연당(天然堂), 은곡당(銀谷堂, 19세기후반)의 부도가 있다.

 

 

미황사의 부도는 이 지역이 바다에 가까운 영향 때문인지 부도의 기단부 또는 전면에 물고기, 게, 문어, 거북이 등의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한데,

 이 외에도 학, 물오리는 물론 유교 민간신앙의 소재도 등장하고 있다.

 

 

 

 

 

 

 

 

부처님 나라로 항해하는 배에 승선하기 위한 중생들의 발원과 수행의 흔적이 미황사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대웅보전 4개의 초석을 살펴보십시오.

   게와 거북이, 자라들이 바다 속에서 노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또한 깨달음을 증득하고 적멸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계신 부도전의 세계에 가보십시오. 선지식들이 성취한 깨달음의 세계마다 거북이 자라 가재 게 등

   바다 물고기와 노루 토끼 다람쥐 새 사자 말 같은 동물 그리고 연꽃과 화초들이 장엄하고 있으며, 용은 깨달음의 세계를 호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