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북도 = 心 산사 길없는길

백양사 산내암자인 약사암과 영천굴

백련암 2013. 10. 23. 14:35

약사암과 영천굴

약사암(藥師庵)은 백양사 뒤 백학봉 아래에 있는데, 그 옆에 영천굴이 있다.

약사암은 학바위 중턱에 자리잡고 있어 백양사의 전경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곳으로 예로부터 이름 높은 스님들을

많이 배출한 곳입니다.

 

인근에 영천굴이 있어 백암산의 감로수가 나오는데 만병통치의 약수로서 그 효험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백양사에 대한 전설이 깃든 장소로서 환양선사가 전국의 스님들에게 설법을 베풀 때 흰 양(白羊)이 같이 듣고 환생한 후

정토사가 백양사로 개칭되었다고 합니다.

 

영천굴은 20평 남짓한 천연석굴로 영험하다는 영천이라는 샘이 있으며, 영천굴의 유래로는

옛날에 영천굴에는 수도하는 이가 살았는데 항상 한 사람이 먹을 만큼의 쌀이 나왔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손님이 와서 공양을 대접하기 위해 쌀이 더 많이 나오라고 작대기로 쑤셨더니

그 뒤로는 쌀이 나오지 않고 물이 나왔다고한다

 

현재는 석조 관세음 보살상을 모시고 기도법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수도하는 별채도 3칸지어 기도객이 끊이질 않고 있다.

 

 

약사암에서 내려다 본 백양사 전경 단풍이 물들었다면 얼마나 예뻣을까요

 

 

단풍이 물들었을 것을 생각으로만 해 본다.

 

 

약사암 약수

 

 

백양(白羊)이 설법을 들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백학봉 바위벽 아래 자리잡은 약사암

 

 

 

 

 

 

약사암의 내부 전경

 

 

 

 

신중단

 

 

지장단 대신 나무대성인로왕보살 단이 모셔져있다.

 

 

 

 

 

 

 

 대웅전 벽화 = 나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

 

관세음보살님께 의지합니다.  아름다운 백암산 성스러운곳 약사암

흰옷의 관세음보살 몸을 나퉜네  천의 손 천의 눈 자재한 신통 누구라도 관세음보살 명호 부르면

원하는 바 구하는 바 모두 이루네

 

 

 빈여 일등(貧女一燈)

 

가난한 사람이 밝힌 등불 하나 라는 뜻으로 가난속에서 보인 성의가 부귀한 사람들의 많은 보시보다 가치있다는 것으로 정성의 소중함을 말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사위국의 한 정사에 머물 때의 일이다.  그 마을에 난타라는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여인이 있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공양할 수 없는 처지를 한탄했다.

이튼날 온종일 다니며 구걸한 끝에 한 푼을 얻어 기름을 샀다. 그녀의 한 푼어치의 기름으로 등을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을 바쳤다.

저녁이 되어 별안간 바람이 휘몰아치며 모든 등불이 꺼져 버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유일하게 그녀가 바친 등은 다른 모든 등불이 꺼진 뒤에도 홀로 빛나고 있었으며 바람에도 꺼지지 않았다.

 

 

 귀자모신(鬼子母神)이란 = 출산(出産)과 유아양육(乳兒養育)을 맡은 神이다.

 

이 神은 一千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 중에서 맨 마지막에 낳은 애노(愛奴)를 가장 애지중지하였다.

그럼에도 이 神은 남의 아이를 잡아먹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대로 놔 둘 수가 없어서 어느 날 애노를 데려와서 숨겼다. 그러자 이 神은 애가 달아서 백방으로 찾아다녔다.

그러나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낙담과 상심(傷心)이 이만저만이 아닌 채 7일을 넘기자

자신도 모르게 부처님이 설법하는 곳에 끼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설법을 듣고 자신으로 인해 다른 부모들이 얼마나 해통해 했을까를 깨닫고 그동안 에

저지른 죄악을 반성하였다고 한다.

이 귀신은 앞으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로 맹세를 하자 부처님은 자식을 돌려주었다. 크게 뉘우친 귀자모신은 자식을 돌려받은 기쁨에

앞으로는 善한 일만하겠다고 결심하고 불교에 귀의 했답니다.

 

그럼에도 이 귀신의 자식들 일천명은 반씩 갈렸다 5백 명은 천상계(天上界)에 들었지만 5백명은 인간계(人間界)에서 여전히 황당한

광기를 저질렀다. 그러나 나중에는 부처님의 교화를 받아 모두가 선신이 되었다고 한다.

 

 

 동자공양(童子供養) = 모래 공양을 올린 소년 (아쇼카 왕의 전생이야기)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와 함께 성안으로 탁발하러 가시는 길에 소꿉 장난을 하는 아이들을 만나셨다. 

 아이들은 모래와 흙으로 집과 창고를 만들고 또 신발에다 모래를 담아 밥이라고 하며 놀고 있었다.

그 아이들 중에 키가 작은 아이 하나가 부처님께서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부처님께 무엇이든지 공양을 올리면

큰 복을 받는다고 하던데 이렇게 생각한 아이는 신발에 밥이라며 담아 놓은 모래를 동생을 엎드리게하고는 그 위에 올라가

부처님께 정성스레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모래 밥을 받으시고는 빙그레 웃으시며 아난에게 건네 주셨다

 이 모래를 가지고 가서 내 방의 허물어진 곳에 바르도록 하여라  정사로 돌아온 아난이 말씀대로 방의 허물어진 곳에 바르고 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린 두 아이가 환희심으로 모래를 보시하였으니 그 공덕으로 다음에는 국왕이 되어 삼보를 받들고 여래를 위하여

팔만사천 보탑을 세울 것이다. 

이 말씀을 들은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찌 한 줌의 흙의 공덕으로 그와 같이 큰 공덕을 성취할수 있습니까 ? ”  

과거에 한 국왕이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출현하시니 임금과 신하들이 모두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법을 청하여 들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왕은 마음의 문이 열리고 깨닫는 바가 참으로 많았다 왕은 이 기쁜 마음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부처님의 형상을 팔만사천 장을 그려 보시하였으며 그 공덕으로 팔만 사천의 탑을 건립할 수가 있는 괴보를 얻을수 있었다

그 국왕이 바로 오늘 모래를 공양한 소년이다.

 

 

노모의 소도(老母의 所導)

 

 달마대사와 혜가(達磨大師와 慧可)

 

혜가가 물었다 "제 마음이 불편합니다. 스님께서 편안하게 하여 주십시오."

이에 달마대사 말씀하셨다. " 그 마음을 가지고 오라. 그러면 편안하게 해 주리라."

혜가는 말하였다. " 마음을 찾으나 얻을 수가 없습니다."

마침내 달마가 "내가 이미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라고 말하셨습니다.

달마와 혜가의 유명한 문답입니다.

 

난타의 출가(難陀의 出家)

 

난타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배다른 동생이다.

 

 

 

 

 

 

 

 

 

 

즉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정반왕의 아들이지만 부처님은 마야부인을 어머니로 하고 난타는 마하파자파티 부인을 어머니로 하였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고국인 카필라에 돌아왔을 때 마침 난타에게는 세 가지 경사스러운 일이 겹쳐 있었다.

 

 

 

 

 

그것은 새 궁전이 완성되어 그곳으로 들어가는것, 신부를 맞아 결혼식을 올리는 것, 그리고 카필라국의 태자로 책립된다는 것등의 일이었다. 

  

 

 

 

 

특히 새로 맞이하는 신부는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로 이름을 순다리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아우되는 난타를 제도(濟度)할 때가 되었음을 알고 성 안에 들어가 난타의 집으로 가셨다.

 

 

 

 

 

난타가 나와서 보니 부처님께서는 걸식을 하러 와서 빈 바루를 들고 서 계셨다.

 

 

 

 

 

그래서 바루를 받아 음식을 담아 부처님께 드리려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받지 않고 되돌아서 가는 것이었다.

 

 

 

 

 

난타는 하는 수 없어 어디선가 바루를 건네줄 생각으로 뒤를 따라 가다가 마침내 니그로다 정사에까지 오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난타를 의자에 앉게하고 “착하다, 비구여 ! ” 하고 말씀하시자 저절로 머리가 깎이고 몸에는 가사가 입혀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난타의 생각은 집에 두고 온 부인의 모습이 생각나서 도망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처님이 언제나 그를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탈주의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이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는 정사의 당번을 서라는 명령을 받았다. 낮시간에 부처님과 비구들이 걸식하기 위하여 밖에 나가면

 

  

 

 

 

한사람은 남아서 당번을 서는 것이다.

 

 

 

 

 

그는 드디어 탈주의 기회가 왔다 생각하고 부처님이 다니시는 큰 길을 피해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을 빠짐없이 아시고 오솔길 맞은 편에서 오고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가까이 다가가서 자비스럽게 말씀하셨다.

 

 

 

 

 

 

“난타 ! 너는 아직까지도 집에 두고 온 부인 생각만을 하고 있구나.”   “예, 그렇습니다. 부처님 ”

 

 

 

 

 

부처님께서는 난타를 데리고 히말라야 깊은 산으로 가셨다. 그 산 속에는 한 마리의 늙은 원숭이가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원숭이를 가리키며 "부인은 미인이라는데 이 눈 먼 원숭이와 비기면 어떠냐" 

 

 

 

 

 

“제 아내 순다라는 미인으로서는 인간 중에서도 겨룰 자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찌하여 그녀를 눈먼 원숭이 따위와 비교하십니까?"

 

 

 

 

 

 

 

그 다음 부처님께서는 난타를 데리고 천상계 (天上界)에 올라가 천상의 궁전을 구경시켰다.

 

 

 

 

 

궁전 속에는 500명이나 되는  아름다운 천녀가 미묘한 악기를 울리며 누구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궁금해진 난타가 천녀들에게 물었다. 누구를 맞이 하기 위해 그토록 준비를 하십니까?"

 

 

 

 

 

 

 

“염부제라는 나라에 부처님의 동생으로 난타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출가하여, 계율을 지키고 수행한 공덕으로 다음 생에

 

 

 

 

 

이곳에 출생하여 저희들의 천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난타는 뛸 듯이 기뻐하였다. 

 

 

 

 

 

“그 난타라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이대로 여기서 살게 해 주십시요.”

 

 

 

 

 

“안됩니다. 우리들은 천녀입니다만 당신은 인간입니다. 인간의 일생을 마치고 와 주셔요.”

 

 

 

 

 

난타도 이에는 답할 말이 없어 그대로 부처님에게 돌아와서 천녀들에게 들은 것을 부처님에게 이야기 하였다.

 

 

 

 

 

 

 

 

 

“네 아내는 미인이라고 하지만 그 천녀들과 비교하면 어떻냐.”

 

 

 

 

 

“제 아내와 천녀의 차이는 늙은 원숭이와 제 아내의 차이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난타를 데리고 염부제로 돌아왔는데 그 이래 난타의 수행은 비상한 것이었다.

 

 

 

 

 

 

 

 

 

 

그 후 부처님께서는 다시 난타를 데라고 지옥을 구경하였다.

 

 

 

 

 

 

지옥에는 큰 가마솥이 여러개 있고 그중의 솥 하나는 펄펄 끓는 데도 옥졸들은 계속 나무를 집어넣고 있는 것이었다.

 

  

 

 

 

 

난타는 옥졸들에게 물어 보았다.

 

 

 

 

 

 

“여보시오 다른 가마엔 모두 죄인이 벌을 받고 있는 모양인데, 이 가마는 계속 끓이고 있으니 어떤 까닭입니까?”

 

 

 

 

 

 

“염부제에 부처님의 동생으로 난타란 자가 있지요. 그는 출가했으니 다음 생에는 천상에 태어나겠지만 천상의 수명이 다 하면 

 

 

 

 

 

 

다시 이 지옥에 떨어지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 가마솥을 끓이며 기다리고 있소이다.”

 

 

 

 

 

난타는 두려워 떨면서 부처님께 다가와서 어서 염부제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너는 천상의 세계에 태어나고 싶어서 계율을 지키고 정진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저는 천상에 살고 싶지 않읍니다. 제발 지옥에만 떨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렇게 해서 더욱 수행에 전념하게 된 난타는 17일 만에 아라한과를 성취하였다.

 

 

염화의 미소(拈花의 微笑) = 꽃을 들자 미소 짓다.

 

부처님이 왕사성 근처 영취산에서 설법하시기 위해 모습을 보이셨다. 대중들은 평소처럼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데

 

부처님은 아무말도 없이 옆에 있는 연꽃 한 송이 만을 들어 보였습니다. 

이 때 대중들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쳐다보기만 하는데 마하가섭만 그 뜻을 알아치리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부처님은 가섭의 미소를 보고 "나의 정법안장, 열반묘심, 실상무상, 미묘법문 등은 교리 밖에 따로 전해지는 것인데

이것을 가섭에게 부촉한다." 하셨습니다.

 

이런 이심전심은 禪의 생명입니다. 언어나 문자에 의하지 않고 대법을 전할 수 있는 것이며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부모은중(父母恩重)

 

어버이 살아계실제 섬기기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닮다 어리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 뿐이가 아노라.

 

1. 회탐수호은(懷耽守護恩) = 나를 잉태하시고 지켜 주신 은혜

 

2.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 출산의 고통을 감내한 은혜

 

3. 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 = 자식을 낳고서야 근심을 잊으신 은혜

 

4. 연고토감은(嚥苦土甘恩) = 쓴것을 삼키고 단것을 뱉아 먹여준 은혜

 

5. 회건취습은(廻乾就濕恩) =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누이신 은혜

 

6.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 젖먹이고 사랑으로 길러 주시는 은혜

 

7. 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 = 손발이 다 닳도록 목욕과 세탁 더러움을 씻어 주시는 은혜

 

8. 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 = 먼 길 떠날 때 근심 걱정하시는 은혜

 

9. 위호악업은(爲浩惡業恩) = 자식을 위해서는 모진 일까지 서슴치 않는 은혜

 

10. 구경연민은(究竟憐愍銀) =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시는 은혜

 

 백양사 약사암 설화(白羊寺 藥師庵 설화)

 

우리나라에서 양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는 사찰로 백양사가 있다. 조선 선조때 환성(喚醒) 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산에서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사라졌다.

 

7일간 계속된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태어났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천상으로 가게 되었다"고 하면서 절을 했다고 한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고,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약사암 장독대.  일반 가정집 장독대 처럼 정겹다. 저 아래 내려다 보이는 곳이 백양사 단풍이 그립다.

 

 영천굴 석조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기도법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지금은 공사중이라 들어가지를 못한다.

 

약사암(藥師庵)은 백양사 뒤 백학봉 아래에 있는데, 그 옆에 영천굴이 있다.
영천굴은 20평 남짓한 천연석굴로 영험하다는 영천이라는 샘이 있으며,

영천굴의 유래로는 옛날에 영천은 수도하는 이가 살았는데 항상 한 사람이 먹을 만큼의 쌀이 나왔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손님이 와서 공양을 대접하기 위해 쌀이 더 많이 나오라고 작대기로 쑤셨더니 그 뒤로는 쌀이 나오지 않고 물이 나왔다고한다.

현재는 석조 관세음 보살상을 모시고 기도법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수도하는 별채도 3칸 지어 기도객이 끊이질 않고 있다.

 

 

약사암가는 길은 오솔길을 닮은 가파른 길이다  너무 좁고 작은 돌이 많아 미끄러지기 쉽상이며 한 줄로 갈 수 밖에 없는 길

 

 운문암과 약사암으로 갈리는 곳

 

 백학봉

 

 

 

 

 

 

 

백학봉

 

백양사에서 약사암[460m]까지 가려면 경사진데다 자갈길이라 미끄러우니 특히 노보살님들이나 40~50대도 꼭 등산화신고 올라가시고

약사암에서 영천굴까지는 얼마 안됩니다. 거리는 얼마안되지만 경사로에다 길이 좁아서 조심해야합니다.

이길로 가면 백학봉도 상왕봉 밑에있는 운문암도 갈수있고 중간에서 빠져 구암사로도 갈수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 기차. 버스

 

기차 = 용산역에서 익산역까지 KTX 이동 = 익산역에서 무궁화열차 환승을하고  백양사역 하차 <4 정거장>=

             백양사 역에서 직진하다보면 작은 사거리 통과 직진 소규모의 버스터미널이 나온다.

             이곳에서 백양사(종점)까지 버스 승차 버스비 \ 1300원 <한 20분소요>

             기차는 용산에서 늦어도 7시20분차는 타야 됨(당일)

 

택시 = 백양사까지 \15000원 정도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