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전북 완주군 경천면에 있는 화암사(花巖寺)에 얽힌 설화

백련암 2014. 3. 10. 16:16

 

극락전 = 보물 제 663호

 

 

아미타 부처님 삼존상

 

 

화암사(花巖寺)에 얽힌 설화

 

신라의 어느 왕에게 남달리 예쁘고 마음씨 또한 고운 딸 연화(蓮花) 공주가 있었는데, 어느 날 공주가 병에 들어 점점 병세가 심해져만 갔다.

훌륭한 의사와 좋다는 약을 다 써 봤지만 효험이 없어, 왕실은 물론 온백성들의 근심이었다.

얼굴이 야위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연화공주는 한 달이 다 되도록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왕은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 않은 딸의 마지막 소원을 빌기 위해 가까운 절에 나가 정성껏 불공을 드렸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어느 겨울날에 불공을 나간 왕은, 추위에 떨며 대궐로 돌아와서 깊은 잠에 빠졌다가 꿈을 꾸게 되었다.

꿈속에 나타난 것은 왕이 다니던 절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이었다.

얼굴에 연꽃 같은 환한 웃음을 머금은 부처님은 자비로운 모습으로 왕에게 말했다.
“너의 갸륵한 불심에 감동하여 공주의 병을 낫게 할 것을 알려줄 테니 그리 알라.”


부처님은 왕의 앞에 조그마한 연꽃 한 송이를 던져준 뒤 사라졌고, 왕은 조심스럽게 꽃을 받아쥐고 기뻐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왕은 곧 신하들에게 명하여 연꽃을 찾도록 하였으나 추운 겨울에 연꽃을 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전국에 연꽃을 찾으라는 명을 내리고 며칠이 지난 뒤, 지금의 완주군 운주면 깊은 산봉우리 바위 위에 연꽃이 있다는 연락이 궁으로 올라왔다. 겨울에 연꽃이 피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연못이 아닌 산중의 높은 바위에 피어 있다는 것은 더욱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부처님이 내려준 꽃이라 생각한 왕은, 신하들에게 조심하여 꽃을 가져오도록 명령했고, 힘겹게 산으로 올라간 신하들은 꽃을 꺾기 전

잠시 바위 뒤에 숨어서 연꽃을 지켜보았다. 

  
‘아무래도 이런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니 여기 숨어 이곳에서 누가 이 연꽃을 키우고 있는지 알아보자.’

 
한참이 지난 후 산 밑의 연못 속에서 갑자기 용 한 마리가 솟아오르더니, 입으로 연꽃에 물을 뿌려준 뒤 다시 연못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두려움에 떨던 신하 중 담력이 센 몇 명이 연꽃을 꺾어왔고, 이를 먹은 공주는 씻은 듯이 나아 여름아침의 연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왕과 왕비를 비롯한 만백성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으며, 부처님의 은덕에 감화한 왕은 불심이 더욱 깊어져

연꽃이 있던 자리에 커다란 절을 짓고 부처님을 모시게 했다. 절의 이름은 ‘바위 위에 꽃이 피었다’는 뜻에서 ‘화암사(花岩寺)’라 하였다. 

 

 

◈화암사의 역사◈

불명산의 청량한 숲길을 따라 산 중턱에 위차한 화암사는 자연이 준 예술적 운치가 돋보이는 바위와 나무 그리고 단청을 거부한채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국내 유일의 항앙식 구조인 극락전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천년사찰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절벽과 절벽사이의 계곡에 놓여진 계단이 열한번 굽어지면서 암반 위로 흐르는 맑은 물을 발아래 두고

1백 47계단을 오르면 화암사의 정문 격인 우화루(보물 662호)와 극락전(보물 663호)이 남북으로, 불명산과 적묵당이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입구(□)자혛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극락전 왼쪽에는 입을 놀리는 것을 삼가라는 청영제가 있고 적묵당 뒤편에는

산신각, 우화루 옆에 명부전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밖에도 지방문화재인 동종(지방유형문화재 40호)과 중창비(지방유형문화재 94호)가 있으며,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기록이 뚜렷한 곳으로 자연적인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한

건축양식은 선인들의 슬기를 새삼 느끼게 하고 다시 찾아 마음을 다스리는 휴양 장소로 알맞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