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불갑사 = 대웅전, 백제불교의 첫 절집
예로부터 영광군은 산세가 아름답고 인심이 좋아 살기좋은 고장이라 하였으며 어염자초(魚鹽紫草)풍부하여
쌀, 소금, 목화, 눈이 많아 4백(白)의 고장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또한 영광에는 백제불교의 첫 절집인 불갑사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불법이 들어온 고장 깨달음의 빛 영광(靈光)이라고 부른단다.
불갑사의 역사
불갑사(佛甲寺)는 인도 간다라 출신의 고승 마라난타존자께서 남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 침류왕 원年(384年)에 영광 법성포로 들어와
모악산 자락에 최초로 창건한 백제불교 초전성지이다.
불교가 전해진 이후 처음 건립되어 모든 사찰의 으뜸이며 근원이 된다고해서 부처 불(佛), 첫 째 갑(甲)자를 써서 불갑사(佛甲寺)라고 하였다.
고려 말(1349年) 각진국사가 주석하면서 1000여명의 수행승이 이 산중에 모여들자 가람을 대규모로 중창하여 본사에 40여동
500여칸 규모의 가람을 갖추고, 산내에 31암자를 건립하여 마치 불국세계를 연상시키는 도량이 되었으며,
이 때 호남 서쪽의 불교가 흥기하는 근본 터전이 되었으니. 이로부터 불갑사를 불지종가(佛之宗家)로 부르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법릉, 연화, 해릉, 채은, 청봉, 용암, 원담, 설두 대선사께서 차례로 주석하며 가람을 중창 · 중수하고 조계 선풍을 드날렸으며,
근세에는 금화, 학명, 만암대종사가 주석하며 법풍을 선양하던 대도량이다.
불갑산은 식물분포학적 연구가치가 높은 참식나무 자생 북한지대이며, 9월 중순이면 피안화(일명= 상사화)로 장엄되는 연화 불국세계가 펼쳐진다.
불갑사는 영구히 향화가 끊이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어머니 품안처럼 안락하게 하고 마음따라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만년향화부절길상복지(萬年香花不絶吉祥福地)에 자리잡고 있다.
↓↓ 천연기념물 112호 참식나무를 병풍삼아 자리 잡은 대웅전
영광 불갑사 대웅전 (靈光 佛甲寺 大雄殿) : 보물 제830호 시대 = 조선
삼존불상의 시선의 방향이 특이하게 스님들의 출입문 방향을 향해 보고 계시다는 것이 다른 사찰과 다르다는 것이고
대웅전 정면에 있지 않고 측면인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영주 부석사의 아미타불도 측면인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공주 마곡사에 가서 들은것도 같은데 생각이 안 난다.
국내 사찰중 공주 마곡사, 부석사 무량수전이 이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불갑사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에 인도승 마라난타가 세웠다는 설과 무왕 때 행은 스님이 세웠다는 설이 있으나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석가모니 불상을 모셔 놓은 법당인 대웅전은 18세기 이전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데, 기와 가운데 ‘건륭 29년(乾隆二十九年)’이라고 쓴 것이 발견되어
조선 영조 40년(1764)에 고친 것으로 짐작한다. 그 뒤 융희 3년(1909)에 수리하였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지붕 위부분에서 작은 석탑과 보리수를 조각한 장식을 볼 수 있으며, 가운데 칸 좌우의 기둥 위에는 용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또한 가운데 칸에 달린 문은 연꽃과 국화 모양으로 꾸며 뛰어난 창살 조각 솜씨를 엿보게 한다.
건물 안쪽의 모서리 공포 부분에도 용머리를 장식하고 있고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몄다.
화려한 무늬와 조각을 새긴 조선 후기 목조 불전 건축으로 시대적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어 중요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연꽃문향
문살은 삼분합 소슬 빗살문으로 연꽃, 국화꽃, 보리수 나무 무늬를 섬세하게 조각해 우리 조상들의 예술성이 표현된 건축물이다.
다양한 꽃문살
신중단
삼존불과 천장의 모양
영광 불갑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靈光 佛甲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 보물 제1377호 시대 = 조선
불갑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나무로 만든 삼세불좌상으로,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하여 왼쪽에는 약사불이 배치되고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이 자리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주존불로서 삼불 가운데 가장 크고 건장한 신체에 무릎이 넓어 안정되어 보인다.
육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머리에는 정상계주와 중앙계주를 큼직하게 묘사하였으며 네모꼴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엿보인다.
두 귀는 길어서 어깨까지 늘어졌고, 약간 굵어진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옷은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형식으로 오른팔을 드러냈으며, 옷주름은 두 다리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수인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데, 양손 모두 마치 실제 인물의 손처럼 표현하여 사실성이 돋보인다.
약사불과 아미타불 또한 불명확한 육계, 팽창된 얼굴, 분명한 이목구비, 부피감 있고 편안한 자세, 사실적으로 표현된 양 손,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주름 등의 세부 표현에서 본존인 석가모니불과 공통적인 특징을 보인다.
다만, 석가모니불에 비하여 크기가 다소 작아지고 양어깨를 모두 덮은 옷에 오른팔을 드러내지 않고
아미타인(阿彌陀印)의 손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불상 조성기에 의하여 1635년 무염(無染)스님을 비롯한 승일 · 도우 · 성수 등
10인의 화승들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무염비구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초기의 것으로, 전라도 · 충청도 · 강원도지역을 거쳐
폭 넓게 활약하던 무염일파의 작품과 경향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천정에 연꽃과 용의 조화 벽화는 나한이 그려져 있다.
대웅전 안팎에는 나한을 그린 나한도를 비롯해 까치와 학등을 표현한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또 다른쪽의 용과 연
용과 연꽃의 연밥에 연자를 봉긋이 품고있는 모습이 선명하다.
대웅전 불좌상과 연꽃, 상벽의 판목에는 수묵으로 나한을 그려 도량을 장엄했다. 비교적 간략하지만 기량이 돋보이는 필치로 평가된다.
17세기 말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벽화는 당시 일반화단의 보편적 경향이었던 중국화보류의 수용에 영향을 받아 조성됐다.
이러한 경향은 여천(여수) 흥국사 16 나한도로 이어졌다.
이 밖에도 모서리 공포 부분을 용머리로 장식하고 우물정자(井字)모양으로 천정을 꾸며 벽화를 보는 재미를 더해 준다.
법당 범종
법당범종의 용뉴
대웅전 뒤의 벽화 백의 관세음보살이 연꽃잎에 타고 있다.
대웅전 내 백의관음 벽화
불단 뒤를 백의관음이 그려져 있다. 최근에 그려진 것이나. 원래 이 자리에는 백의 수월관음도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백의관음도의 명품은 월출산 무위사에 가면 볼 수 있다.
백의 관음도
대웅전 내부 벽화는 여느사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까치가 졸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숙작(宿鵲)의 모습을 띤 벽화는 불교미술이 갖고 있는
다채로움을 더 해준다. 원래 부처님을 모신 좌우 벽면에 매화도가 그려져있고 그 안에 졸고 있는까치의 모습이 표현돼 있었는데 현재는 훼손이 심해
까치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벽화와 관련된 설화는 아직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설화에 따르면 어느 화사(畵師)가 대웅전에 벽화를 그리면서 절대 안을 들여다 보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주위에서는 그림 그리는 모습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화사(畵師)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안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그러자 벽화를 그리던 화사는 그만 피를 흘리며 죽었고, 그 피가 까치가 되어 날아갔다는 이야기다.
대웅전 뒷문 벽화가 있는 쪽문
주존불인 석가모니불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의 좌대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 좌대
화려함과 용의 기상이 느껴지는 닷집
닷집의 다양 용의 모습들
1985년 보물 제830호로 지정된 불갑사 대웅전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주존불로 모시는 건물이다. 이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자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다포계(기둥머리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사이에도 공포를 배치한 형태)모양의
건물로 매우 화려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불갑사는 백제 무왕(600~ 640년)때 행은 스님이 세웠다는 설과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에 인도승 마라난타가 진나라를 거쳐
백제로 들어올때 영광에 상륙하여 세웠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한 근거는 알 수가 없다.
이 건물은 1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순종 융희 3년(1909년)에 보수 하였다.
대웅전 정면 문
대웅전 앞의 당간지주를 잘 살펴보세요 안쪽으로 방향을 틀어 세워져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대웅전 용마루 보탑(寶塔) = 대웅전에 말풍선 걸어놓은 것
대웅전 용마루 중앙에는 보탑형의 장식물이 얹혀져 있다. 양쪽의 용두(龍頭) 조각위에 탑형의 탑신과 사각 모임지붕의 보개 · 복발 · 보주
등으로 이루어져 점토로 구워낸 기와지붕 장엄이다.
양측면에는 "甲申 五月"과 盡○手 陟敏"이라는 명문이 있어 1764년 5월 척민이라는 와공에 의해 대웅전을 중수하면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각이 해학적이어서 민중에서 나타난 벽사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용의 얼굴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은 대웅전의 권위와 위상을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붕의 장식적인 장엄은 동남아시아와 중국남방의 사원에서 나타나는 양식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장엄이다
불갑사만세루 (佛甲寺萬歲樓)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6호 시대 =
불갑사는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불교를 전파한 마라난타가 세웠다는 설과 각진국사가 세웠다는 설이 전한다.
만세루는 교육을 위한 강당 건물이다. 대개 절의 중심 공간으로 들어갈 때 누(樓) 아래로 드나드는 문루인 경우가 많은데,
화엄사의 보제루와 이곳 만세루가 낮은 중층을 이루어 건물의 모서리로 돌아가게 하였다.
절의 강당은 초기에는 대웅전 뒤에 있었으나 고려 이후부터는 대웅전 앞뜰에 설치하였는데 불갑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건축 수법이 기본 틀에서 벗어난 후기 양식을 보이고 있다.
또한 건물에 기교를 부리지 않은 웅건한 미를 간직한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불갑사만세루 (佛甲寺萬歲樓) 뒷면
중층형 문루건물로서 법회장소및 스님들의 여름철 강학(講學)공간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불갑사만세루 (佛甲寺萬歲樓) : 옆에서 본 만세루 옆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