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북도 = 나를 찾아서...

부여 궁남지의 연꽃 축제

백련암 2014. 8. 6. 14:46

부여 궁남지 (扶餘 宮南池) : 사적  제135호   시대 = 삼국시대

 

부여 남쪽에 위치한 백제의 별궁 연못이다. 백제 무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궁궐의 남쪽에 연못을 팠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궁남지라 부른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20여 리나 되는 긴 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들였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연못 가운데에 방장선산을 상징하는

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로와 물가 · 연못 속의 섬이 어떤 모양으로 꾸며져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못의 중앙부에 석축과 버드나무가 남아있어 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주변에서 백제 토기와 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연못의 규모 또한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당시에 뱃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크기를 짐작할 뿐이다.

고대 중국사람들은 동해바다 한가운데에 일종의 이상향인 신선이 사는 3개의 섬으로 삼신산이 있다고 생각하여,

정원의 연못 안에 삼신산을 꾸미고 불로장수를 희망했다고 한다. 궁남지는 이것을 본떠 만든 것으로 신선정원이라 불린다.

연못 동쪽에 당시의 별궁으로 보이는 궁궐터가 남아 있다. 현재 연못 주변에는 별궁 안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우물과 주춧돌이 남아있고,

연못 안에는 정자와 목조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수련

 

서동과 선화공주 사랑이야기

 

백제시대 이궁터로 알려진 궁남지 일대에는 아명(兒名)을 서동(薯童)이라 했던 무왕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사비시대에 왕궁 남쪽 못 가에는 궁궐에서 나와 혼자 사는 여인이 궁남지의 용과 교통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백제 제 30대 왕인 무왕 장(璋)이다.

그의 어머니가 용과 교통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하였으나 아마도 그의 아버지는 왕이거나 태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궁궐 밖의 생활이 궁핍하였으므로 생계유지를 위해 그는 마를 캐다 팔았다. 그래서 그의 아명(兒名)이 서동이 되었던 것이다.

 

서동의 어머니는 가난에도 불구하고 그를 정성으로 키웠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효성이 지극한 장부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궁중에서 한 노신이 찾아와 왕의 밀명을 전하였는데 신라의 서라벌에 잠입하여 국정을 탐지하라는 것이었다.

서동은 기꺼이 받아들여 마를 파는 상인으로 위장하여 신라에 잠입, 탐지활동을 충실히 수행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신라 제 26대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사랑이 싹텃다.

 

그러나 서로는 국적과 신분이 달라 맺어질 수 없는 사이임을 알았다.

그러나 헤어질 수 없었던 두사람은 지혜를 짜내 서동요를 만들어 퍼트리기로 했다.

 

서동은 서라벌의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마를 나누어주며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시집가서 서동 도련님을 밤이면 몰래 안고 간다는 노래였다.

 

이 노래를 아이들의 입을 통해 온 나라에 퍼져 나갔다. 결국 대궐에 까지 알려지게 되어 오해를 받게된 선화공주는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미리 알고 있던 서동이 선화공주를 백제로 데려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사랑이야기이다.

 

 

물양귀비

 

 

왜개연

 

 

백련

 

 

 

 

홍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