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쌍계사
논산 8경중 5경인 쌍계사 입니다. 나즈막한 불명산 자락에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는 쌍계사는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여러 전설을 품고 있었습니다.
논산 雙溪寺(쌍계사) 현판이 걸려 있는 입구
논산 雙溪寺(쌍계사) 현판 안에서 보면 법고가 있다.
저 멀리 경내안으로 삼존상이 보인다.
아마도 예전에 이곳은 범종각이 아니였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법고만이 있다.
法鼓(법고)
冥府殿(명부전)
지장보살(地藏菩薩)의 대원력이 살아 숨쉬는 전각으로서 명부전(冥府殿)이라고도 하며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시기 때문에 지장전(地藏殿)이라고 합니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의 좌우에는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협시로 봉안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우리나라 사찰은 유명계(幽冥界)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좌우로 모시기 때문에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합니다.
시왕(十王)은 지옥에서 죄의 경중을 정하는 10위의 왕으로 진관대왕, 초강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태산대왕,
평등대왕, 도시대왕, 오도전륜대왕을 말합니다.
무독귀왕(無毒鬼王) 과 지장보살(地藏菩薩) 그리고 도명존자(道明尊者)
지장보살은 대비원력을 상징하는 보살로서 스님과 같은 모습으로 삭발한 머리에 두건을 둘렀으며 육환장을 들고 있는데,
육환장의 정수리 부분에는 아미타불의 화현을 모시고 있습니다.
지장보살 권속들인 십왕들
시왕(十王)은 지옥에서 죄의 경중을 정하는 10위의 왕으로 진관대왕, 초강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태산대왕,
평등대왕, 도시대왕, 오도전륜대왕을 말합니다.
지장보살 권속들인 십왕들
시왕(十王)은 지옥에서 죄의 경중을 정하는 10위의 왕으로 진관대왕, 초강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태산대왕,
평등대왕, 도시대왕, 오도전륜대왕을 말합니다.
논산 쌍계사 대웅전 (論山 雙溪寺 大雄殿) : 보물 제408호 시대 = 조선시대
쌍계사는 언제 세웠는지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현재 남아있는 유적으로 미루어 보면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영조 15년(1739)에 세운 비가 남아있어 그 당시 절을 고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절의 중심 법당이라 할 수 있는 대웅전은 건축 형식으로 보면 조선 후기 건물로 1972년 보수공사가 있었고 1973년에 단청을 다시 하였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정면의 문은 앞면 5칸을 모두 같은 간격으로 2짝씩 달아 문살에 화려한 꽃새김을 하고 있다.
꽃무늬는 연꽃, 모란을 비롯해 6가지 무늬로 새겨 색을 칠하였는데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 솜씨를 엿보게 한다.
건물 안쪽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으며, 석가여래삼존불을 모신 불단 위쪽으로 불상마다 지붕 모형의 닫집을 만들어
엄숙한 분위기를 더해 주고 있다.
예술 가치가 높은 문살 조각을 볼 수 있고 조선 후기 건축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어 잘 보존해야 할 문화재이다.
<문화재청의 글>
쌍계사 대웅전 (論山 雙溪寺 大雄殿) : 보물 제408호 옆면
쌍계사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지금의 대웅전은 영조 14년(1738년)에 다시 건립하였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양식이며,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다. 돌을 쌓은 기단 위에 덤벙초석을 놓고, 큰 원 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外四出目(외4출목) 內五出目(내5출목)으로
구성하여 우리나라 佛殿(불전)으로 출목 수가 가장 많은 공포의 하나이다.
내부에는 석가여래를 主佛(주불)로 좌우에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를 모셨으며, 불상 위에는 화려하게 꾸며진 운궁 형식의 닫집(天蓋, 천개)라고 한다.
대웅전의 문살에는 국화, 작약, 목단, 무궁화등 6가지의 무늬를 새겨 색을 칠하였는데 섬세하고 정교한 꽃살문으로서 예술적 가치가 높다.
현재 공주 "甲寺(갑사)"에 보관 중인 "月印釋譜板刻(월인석 보판각)"은 원래 이곳에서 보관하던 것을 옮겨갔다 한다.
이 건물은 장대함과 더불어 공포의 장식적인 세부 구성 그리고 문살 조각에서 조선 후기 건축의 특색을 보여주는 훌륭한 건물이다.
<쌍계사 글>
논산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論山 雙溪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 충남 시대 = 조선시대
논산 쌍계사의 대웅전은 1738(영조14)년에 재건립 된 건물로서 현재 보물 제 408호로 지정되어 있음.
대웅전에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로 이루어진 삼세불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불상 안에서 조성발원문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경전 및 복장물 등이 출토됨
삼세불상은 가운데 석가불이 좌우 약사불과 아미타불보다 약간 크게 조성되었으며, 앙련과 복련으로 구성된 타원형의 대좌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음.
삼세불 가운데 본존인 석가불은 오른손을 무릎 밑으로 내려 항마촉지인을, 왼손은 앞으로 내밀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는데
커다란 신체에 비해 작고 섬세하여 대조를 이루며 착의법은 오른쪽 어깨를 덮은 변형편단우견식으로 대의를 걸치고,
드러난 가슴에는 수평의 승각기가 보임.
어깨와 가슴부분에 사선과 수직의 옷주름이 흘러내리며, 오른쪽 팔꿈치 부분에 맞주름이 표현되어 있음.
무릎을 덮은 대의자락도 규칙적인 간격을 이루며 사선으로 표현되었으며, 무릎 사이로 자연스럽게 흘러 부채꼴 형으로 펴지게 처리함.
약사불과 아미타불은 석가불과 상호와 신체 비례 등이 거의 동일하며, 존상에 따라 아미타불은 오른손을 든 설법인을 하고,
약사불은 왼손을 든 설법인을 하고 있으며 착의법도 변형편단우견이 아니라 편삼을 입고 그 위에 대의를 걸쳐 석가불과 차별화함
불상내에서는 복장물이 발견되었는데 전체적으로 완전하지는 않은 상태이지만 후령통과 복장발원문을 비롯한 주요 물목이 발견되었으며
발원문에는 제작시기와 목적, 조각승의 이름 등이 묵서로 기록되어 있음
아미타불(阿彌陀佛)
雙溪寺 塑造釋迦如來三佛坐像(쌍계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 보물 제1851호 지정등록일 = 2015.03.04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논산 쌍계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조선후기 17세기 초에 활약했던 조각승 元悟비구가 만력 33년(1605)에 수조각승을 맡아
信玄, 淸虛, 神釰, 希春이라는 네 명의 보조조각승과 함께 제작한 상이다.
당시는 임진왜란 중에 피해가 컸던 여러 사찰들의 중창이 곳곳에서 일어나던 시기였으므로 이 때 쌍계사도 2층의 불전을 세우고
그 안에 석가, 아미타, 약사로 구성된 삼불상을 봉안했던 듯하다.
삼불상의 어깨가 넓고 허리가 긴 장대한 체구는 고려후기에서 조선전기로 이어진 불교조각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살이 많은 풍만한 얼굴과 부푼 눈두덩, 오뚝한 콧날, 넓은 인중,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미소 띤 자비로운 표정은 위봉사 북암 보살입상
(현재 익산 관음사와 혜봉원에 각각 1구씩 봉안)의 사실적인 얼굴과 거의 흡사하여 원오의 독특한 작품을 드러낸다.
논산 쌍계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1605년이라는 제작시기가 분명하고 조각승 원오의 대작으로서 조형적으로 우수하다.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
대웅전 문살에는 화려한 꽃새김을 하고 있는데 꽃무늬는 연꽃, 모란을 비롯해 6가지 무늬로 새겨 색을 칠하였는데
섬세하고 정교한 솜씨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대웅전 문의 꽃무늬 문양에 도력이 가미되어 법당 안쪽으로 빛이 잘 투과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논산 쌍계사 대웅전은 기둥 하나하나가 굵고 희귀한 나무로 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기둥 하나가 칡넝쿨나무로 되어있는데
특히 이 기둥을 윤달이 든 해에 안고 돌면 죽을 때 고통을 면하게 된다고 합니다.
대웅전에 들어가서 좌측 2번째 기둥을 한 번을 안고 돌면 하루를 앓다가 가고, 두 번을 안고 돌면 이틀을
그래서 3일은 앓다가 가야 서운하지 않는다고하여 오시는 분들마다 세번을 안고 돈답니다.
대웅전 (論山 雙溪寺 大雄殿) : 보물 제408호 현판
응진전(應眞殿) 현판이 없음
영산회상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하여 영산전이라 하며, 석가모니부처님의 제자로 아라한과를 성취한 성인인 나한을 모신 건물이라 하여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하고, 응진전(應眞殿)이라고도 합니다.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좌우에 10대 제자 혹은 16대 아라한을 모신 법당입니다. 500나한전도 있습니다.
부처님 사진이 사라짐
응진전에 모셔진 석가모니 불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좌우에 10대 제자 혹은 16대 아라한을 모신 법당입니다.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좌우에 10대 제자 혹은 16대 아라한을 모신 법당입니다.
三聖閣(삼성각) = 七星閣 및 山神堂(칠성각 및 산신당)이라고 쓰여 있음
산신(山神)·칠성(七星)·독성(獨聖)님을 모신 곳으로 사찰에 따라 각각 따로 모시기도 합니다.
삼성은 각각 재물과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존재로서 전통신앙인 삼신신앙과의 습합현상을 살필 수 있습니다.
七星閣 및 山神堂(칠성각 및 산신당)이라고 쓰여 있음
七星撑畵(칠성탱)
칠성은 북두칠성을 말하는데 별나라의 주군(主君)으로 인간의 수명을 담당한다고 합니다.
獨聖撑(독성탱)
십이인연의 이치를 홀로 깨달아서 성인의 위치에 올라 말세 중생에게 복을 내린다고 합니다.
山神撑(산신탱)
산신은 일반적으로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착신으로서, 불교가 이 땅에 뿌리내리는 토착화 과정에서 호법신중(護法神衆)으로 불교에 흡수되었습니다.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
야트막한 산으로 사방이 둘러쌓인 곳에 위치한 부처님은 비가 내려도 얼굴부분이 젖지 않는 신비한 관세음보살이라고
누군가 설명을 해준다.
관세음보살님 뒤로 두 보살상이 합장을 하고 기원을 하고 계신다.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立像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의 좌측모습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 너무도 당당해 보이시는 보살 상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 우측모습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 우측모습
주변경관과 너무도 잘 어울리시는 보살님 상
공양간과 종무실입니다.
明月堂(종무소)
요사채
법당 아래에 있는 甘露水(감로수)
전경
連理根(연리근)= 천년의 인연
천년고찰 쌍계사 도량의 연리근 괴목나무는 그 오랜 세월동안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연리()란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서로 만나 합쳐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뿌리가 만나면 連理根(연리근). 줄기가 겹치면連理木(연리목),
가지가 하나되면 連理枝(연리지)라고 부릅니다.
『삼국사기』와『고려사』에도 연리나무에 관한 기록이 전하는데, 우리 조상들은 연리나무가 나타나면 희귀하고 경사스러운 吉兆(길조)로 여겼습니다.
꿈이 이루어지는 불명산 쌍계사에서는 연리근(連理根)이 지금까지 수 많은 이야기를 담아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마음속의 바라는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소중한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오늘 등불하나 밝혔으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 속 깊은 사랑 변치 않도록, 꺼지지 않는 등불 하나
참 고운 등불 하나 밝혔으면 좋겠습니다.
대한 불교조계종 불명산 쌍계사 = <연리근 목 안내글>
요사채
쌍계사부도 (雙溪寺浮屠)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 80호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둔다. 쌍계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마련된 이 부도밭에는 모두 9기의 부도가 자리잡고 있다.
이 절에서 돌아가신 아홉 승려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는데, 6기는 종모양을 하고 있고, 나머지 3기는 지붕돌을 갖춘 4각 부도이다.
종모양의 탑몸돌을 하고 있는 부도들은 4각 또는 6각의 바닥돌 위에 놓여 있다. 바닥돌은 연꽃무늬를 둘렀으며,
탑몸돌 꼭대기에는 꽃봉오리 모양의 돌을 얹어 머리장식을 하였다.
지붕돌을 올린 부도들은 기단(基壇) 위로 동그란 탑몸돌을 얹고 지붕돌을 덮은 모습이다.
기단에는 연꽃무늬나 구슬을 이어놓은 듯한 무늬들을 조각하여 장식해 두었다. 탑몸돌에는 읽기 힘든 상태의 글씨가 보이는데,
그 중에는 ‘혜찬대사’의 이름을 새긴 것도 있다.
모두 조선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측되어 당시의 부도양식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의 글>
쌍계사부도 (雙溪寺浮屠)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 80호
쌍계사부도 (雙溪寺浮屠)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 80호
부도는 승려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하기 위한 墓塔(묘탑)인데, 이곳에는 쌍계사에서 入寂(입적)한 고승들의 舍利(사리)를
안치한 9其의 부도가 현존하고 있다. 그 중 6기의 石鐘形(석종형) 부도들은 사각형, 육각형의 地臺石(지대석)에 연꽃잎 문양을 조각하여
장식하였고 중간에 종 모양의 塔身(탑신)을 놓았으며, 꼭대기에는 구슬모양(寶珠, 보주)으로 만들었다.
3기의 네모난 지붕돌(屋蓋石, 옥개석)을 갖춘 方形(방형)의 부도들은 석종형 부도보다 작고, 원형의 몸돌 표면에 장식이 없으며
지붕 돌 꼭대기에는 구슬 모양을 조각 하였다.
기단부는 下臺(하대), 中臺(중대), 上臺石(상대석)으로 구성되었으며 연꽃문등으로 장식하였다.
일부 부도에는 판독이 어렵지만 銘文(명문)이 남아 있으며, 그중 慧命大師(혜명대사)의 부도가 있다.
이 부도들은 제작 양삭으로 보아 조선시대의 것으로 부도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
<쌍계사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