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금과 이야기 = 나주 신촌리 금동관 (羅州 新村里 金銅冠)
나주 신촌리 금동관 (羅州 新村里 金銅冠) : 국보 제295호 시대 = 백제 <복제품>
나주 반남면 신촌리 9호 무덤에서 발견된 높이 25.5㎝의 금동관이다. 나주 신촌리 9호 무덤은 1917∼1918년에 일본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이 금동관은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외관과 내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관은 나뭇가지 모양의 장식 3개를 머리에 두른 띠 부분인 대륜에 꽂아 세웠으며, 내관은 반원형의 동판 2장을 맞붙여 만들었다.
기본 형태는 신라 금관과 같으나 머리 띠에 꽂은 장식이 신라 관의 ‘山’자 모양이 아닌 복잡한 풀꽃 모양을 하고 있어,
양식상 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내관인 모자는 전북 익산 입점리(사적 제347호)와 일본에서도 비슷한 것이 출토된 바 있어
백제와 일본과의 문화 교류 관계를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금동관의 주인은 당시 이곳을 지배하던 세력의 최고 지도자였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다만 이 금동관이 현지의 토착 세력에 의해 제작된 것인지 백제로부터 하사받은 것인지에 대하여는 알수 없다.
↓ 진품
나주 신촌리 금동관 (羅州 新村里 金銅冠) : 국보 제295호 시대 = 백제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나주 반남면 신촌리 9호 무덤에서 발견된 높이 25.5㎝의 금동관이다. 나주 신촌리 9호 무덤은 1917∼1918년에 일본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이 금동관은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외관과 내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관은 나뭇가지 모양의 장식 3개를 머리에 두른 띠 부분인 대륜에 꽂아 세웠으며, 내관은 반원형의 동판 2장을 맞붙여 만들었다.
기본 형태는 신라 금관과 같으나 머리 띠에 꽂은 장식이 신라 관의 ‘山’자 모양이 아닌 복잡한 풀꽃 모양을 하고 있어,
양식상 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내관인 모자는 전북 익산 입점리(사적 제347호)와 일본에서도 비슷한 것이 출토된 바 있어
백제와 일본과의 문화 교류 관계를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금동관의 주인은 당시 이곳을 지배하던 세력의 최고 지도자였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다만 이 금동관이 현지의 토착 세력에 의해 제작된 것인지 백제로부터 하사받은 것인지에 대하여는 알수 없다.
金銅冠(금동관) : 羅州 新村里 古墳 出土 (나주 신촌리 고분 출토)
金銅冠의 외관(금동관) : 羅州 新村里 古墳 出土 (나주 신촌리 고분 출토)
金銅冠(금동관) 옆면 金銅冠(금동관) 뒷면
金銅冠(금동관) 내관 우측면 金銅冠(금동관) 내관 좌측면
羅州 新村里 古墳 出土 金銅冠(나주 신촌리 고분 출토) : 국보 제 295호(모형) 시대 = 三國時代 5세기경 <복제품> 나주역 홈에 전시되어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