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침과 영혼의 말씀

[스크랩] 향곡 혜림선사

백련암 2008. 1. 9. 12:48
  
 
향곡 혜림(1912~1978) 스님은 16세에 내원사로 출가하여, 그 곳에서 조실이신 운봉(雲峰) 선사의 법문을 접하고 도무지 그 뜻을 알 수가 없어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 한시도 의심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운봉 선사를 시봉하며 3년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용맹정진하던 중에, 늦가을 어느 날 정진하다가 갑자기 산골짝 돌풍이 몰아쳐서 문짝을 때리는 소리에 홀연히 마음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때가 아직 삭발도 하지 않은 행자시절이었는데, 행자(行者)는 곧장 조실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행자의 거동이 사뭇 다르므로, 운봉 선사께서 간파(看破)하시고 대뜸 목침을 가리키시며,
"한 마디 일러라!"
하시니, 행자는 즉시 발로 목침을 차 버렸습니다.
"다시 한번 일러라."
"천마디 만마디가 모두 꿈 속에 꿈을 설(說)한 것이니, 모든 불조(佛祖)께서 나를 속이신 것입니다."
이에 운봉 선사께서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이때부터 혜림 스님은 줄곧 운봉 선사를 시봉(侍奉)하면서 탁마(琢磨)받으며 정진하셨습니다.
운봉 선사께서는 1944년, 열반에 드시기 전에 혜림 스님에게 향곡(香谷)이라는 법호와 전법게(傳法偈)를 내려서 임제정맥(臨濟正脈)을 부촉하셨습니다.

부향곡혜림장실(付香谷蕙林丈室)
서래무문인(西來無文印)
무전역무수(無傳亦無受)
약리무전수(若離無傳受)
오토부동행(烏兎不同行)

향곡 혜림 장실에 부치노라
서쪽에서 건너온 문자 없는 법인은
전할 것도 받을 것도 없는 것
만일 전하고 받음 없는 것조차 뚝 떠나면
까마귀는 날고 토끼는 달리느니라.

향곡 선사께서는 그 후 1947년에, 문경 봉암사에서 제방의 발심선객(發心禪客)들과 함께 "과거에 안 것은 다 접어두고 참으로 부처님과 조사의 경지에 이르도록 다시 분심(憤心)과 신심(信心)을 내어 멋지게 공부하여 보자."며 용맹정진에 들어가셨습니다.

하루는 도반(道伴) 스님이,
"'죽은 사람을 죽여 다하여야 산 사람을 보고, 죽은 사람을 살려 다하여야 비로소 죽은 사람을 볼 것이다.'하는 법문의 뜻이 무엇인가?"
라고 묻자, 선사께서는 여기에 막혀 몰록 화두일념삼매(話頭一念三昧)에 드셨습니다.
완전히 대사인(大死人)이 되어 삼칠일간(三七日間)을 일념삼매에 빠지셨다가, 하루는 도량을 걷는 중에 문득 자신의 양손이 흔들리는 것을 발견하고 대사각활(大死却活:크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 활연대오(豁然大悟)하셨습니다. 오도송을 읊으시기를,

홀견양수전체활(忽見兩手全體活)     홀연히 두 손 보고 전체가 드러나니
삼세불조안중화(三世佛祖眼中花)     삼세의 불조가 다 눈병에 헛꽃일세
천경만론시하물(千經萬論是何物)     천 경전과 무수 법문, 다 무슨 물건인가
종차불조총상신(從此佛祖總喪身)     이로 좇아 불조사가 다 상신실명 하였도다.

봉암일소천고희(鳳岩一笑千古喜)     봉암사에 한번 웃음 천고에 기쁨이요
희양수곡만겁한(曦陽數曲萬劫閑)     희양산 구비구비 만겁에 한가롭네.
내년갱유일륜월(來年更有一輪月)     내년에도 또 있겠지, 수레같이 둥근 달
금풍취려학려신(金風吹處鶴戾新)     금풍이 부는 곳에 학의 울음 새롭도다.

이로부터 천하 노화상(老和尙)들의 공안(公案) 법문에 속지 않고 걸림없이 임의자재(任意自在)로 대사자후(大獅子吼)를 하셨습니다.

이렇게 봉암사에서 향상(向上)의 진리를 깨치신 후 제방 선지식들을 두루 참방하여 거량(擧揚)하시니, 비로소 불조(佛祖)의 정문정안(頂門正眼)이 만천하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 선종사에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정안(正眼)의 장(場)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선사께서는 제방 선원의 조실 초청을 받아 각 곳에서 납자를 지도하시고 또, 동해안 월내 묘관음사(妙觀音寺)에 선원을 개설하여 후학들을 지도하는 한편, 조계산 선암사, 경주 불국사, 팔공산 동화사의 조실 및 선학원장(禪學院長)을 역임하시면서 향상일로의 종풍(宗風)을 크게 선양하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선사의 세수 56세이던 1967년, 하안거(夏安居) 해제 법회시에 제자 진제(眞際) 스님과 법거량이 있었습니다.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시어 묵좌(默坐)하고 계시는데 진제 스님이 나와 여쭈었습니다.
"불조(佛祖)께서 아신 곳을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불조께서 아시지 못한 곳을 스님께서 일러 주십시오."
"구구는 팔십일이니라."
"그것은 불조께서 다 아신 곳입니다."
"육육은 삼십육이니라."
이에 진제 스님이 예배드리고 물러가니, 선사께서는 아무 말 없이 법상에서 내려오셨습니다.

다음날 진제 스님이 다시 여쭙기를,
"불안(佛眼)과 혜안(慧眼)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안목입니까?"
하니, 향곡 선사께서 답하셨습니다.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
그러자 진제 스님이,
"오늘에야 비로소 큰스님을 친견하였습니다."
하니, 향곡 선사께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느냐?"
"관(關)!"
"옳고, 옳다."

여기에서 향곡 선사께서, 전법게(傳法偈)를 내려 태고 보우 선사로부터 경허-혜월-운봉-향곡 선사로 이어져온 임제정맥(臨濟正脈)을 진제 스님에게 부촉하셨습니다.

부진제법원장실(付眞際法遠丈室)
불조대활구(佛祖大活句)
무전역무수(無傳亦無受)
금부활구시(今付活句時)
수방임자재(收放任自在)

진제 법원 장실에 부치노라
부처님과 조사의 산 진리는
전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라
지금 그대에게 활구법을 부촉하노니
거두거나 놓거나 그대 뜻에 맡기노라. 
1978년 12월 15일 해운정사(海雲精舍)에서 다음과 같이 열반게(涅槃偈)를 읊으시고, 사흘 후인 1978년 12월 18일 인시(寅時)에 세수67세, 법랍 50세로 입적하셨습니다.

석인영상취옥적(石人嶺上吹玉笛)     목인은 잿마루에서 옥피리를 불고
목녀계변역작무(木女溪邊亦作舞)     석녀는 시냇가에서 춤을 추네
위음나반진일보(威音那畔進一步)     위음왕불 이전으로 한 걸음 나아가니
역겁불매상수용(歷劫不昧常受用)     역겁에 매하지 아니하고 언제나 수용하리.

향곡 선사 영전(靈前)에 제자인 진제 스님은 게송을 지어 바쳤습니다.

밝고 밝은 아침 해가 하늘에 비치는 듯
시원스런 맑은 바람 대지에 깔리는 듯
이렇게 해도 옳고 이렇게 안 해도 옳으니
초목와석은 언제나 광명을 놓고 있네.
이렇게 해도 옳지 않고 이렇게 안 해도 옳지 않으니
삼세제불이 거꾸로 삼천리나 물러감이라.
애닯다!
밝은 해는 수미산을 감돌고 있고
붉은 안개는 푸른 바다를 꿰뚫었도다.

명명고일(明明?日)은 여천(麗天)하고
삽삽청풍(颯颯淸風)은 잡지(?地)로다.
임마야시(恁?也是) 불임마야시(不恁?也是)여
초목와석(草木瓦石)이 방대광명(放大光明)이요
임마야불시(恁?也不是) 불임마야불시(不恁?也不是)여
삼세제불(三世諸佛)이 도퇴삼천리(倒退三千里)로다.
돌(?) 백일(白日)은 요수미(繞須彌)하고
홍하(紅霞)는 천벽해(穿碧海)로다.
출처 : 光明
글쓴이 : 수선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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