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인연
붓다의 말씀 "벗 사비타여, 믿음을 떠나서, 좋아함을 떠나서, 거듭 들어서 얻어진 지식을 떠나서, 그럴싸한 추리를 떠나서, 곰곰이 궁리해낸 견해이기에 그것에 대해 갖게 되는 편견을 떠나서, 나는 이것을 알고 이것을 본다. `태어남에 의해서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상응부 , 인연편, 대품 제8경] "비구들이여, 여기에 한 비구가 눈으로 사물을 보고서 마음 속에 탐욕·분노·어리석음이 있으면 `내 마음속에 탐욕·분노·어리석음이 있구나.' 라고 알고, 마음속에 탐욕·분노·어리석음이 없으면 `내 마음속에 탐욕·분노·어리석음이 없구나.' 라고 안다. 비구들이여, 이런 것들이 믿음을 통해, 좋아함을 통해, 거듭 들어서 얻어진 진리라 해서, 그럴싸한 추리를 통해, 곰곰이 궁리해낸 견해이기에 그것에 대해 갖게 되는 편견을 통해서, 경험되어야 할 것들이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시여!"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이런 것들은 지혜로써 보고 알아야 될 것들이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존자시여!" "비구들이여, 한 비구가 `나는 이제 더이상 다른 몸을 받지 않고, 청정한 삶[梵行]을 이루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쳐서 또 다시 지금과 같은 상태는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안다.'라고 깨달음을 선포하는 것 역시 믿음을 통해, 좋아함을 통해, 거듭 들어서 얻어진 지식이라 해서, 그럴싸한 추리를 통해, 곰곰이 궁리해낸 견해이기에 그것에 대해 갖게 되는 편견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상응부 ,육처편, 신고품 제8경]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고, 근심과 오욕에 물들 것임에도 그들로부터 헤어날 길을 찾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제 이 윤회의 바퀴를 멈추고 불생, 불로, 불멸, 무사(無死), 그리고 근심 없고 오염되지 않을 무상의 평온, 열반을 추구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비구들이여, 나는 숯처럼 검은 머리 쇠 같은 젊음, 생의 절정기에 통곡하는 부모님들을 떠나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걸쳤노라. 평온에 이를 최상의 길을 찾아 나섰노라. [Majjhima Nikaya 중부 26.] 그때 나는 이런 비유를 생각했다. 물에 흠뻑 젖은 나무토막이 있다. 어떤 사람이 여기에 문질러 불을 일으키리라 생각하고 다른 나무토막 하나를 가지고 왔다. 그러나 이 사람이 불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아니다. 왜 그런가? 물에 젖은 나무는 불을 일으킬 수 없다. 따라서 그 사람이 거둘 수 있는 것은 오직 피로와 실망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수행자가 감각적인 쾌락을 버리지 못하고, 욕망과 집착, 열정, 갈애와 감각적인 쾌락을 향한 열병을 진정시키지 않는 한 그는 헛된 노고로 쥐어 틀리고 뚫는 듯한 고통을 느낄 뿐, 어떤 지식도 통찰력도 최상의 깨달음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Majjhima Nikaya. 36,Mahasaccaka-sutta] 사리뿟따. 내가 해골을 베고 묘지에 누워 있으면 목동들이 다가와 얼굴에 침을 뱉거나 오줌을 누고, 먼지를 뒤집어 씌우고 귓구멍에 나뭇가지를 꽂아 넣었소. 그러나 나는 그 아이들에게 어떤 악의도 품어본 적이 없소. 사리뿟따, 그것은 내가 평정 속에 머물었던 까닭이오. [Majjhima Nikaya. 12,Mahasaccaka-sutta] 그때 나는 쌀 한 톨로 생명을 부지했소. 이렇게 쌀 한 톨로 살아가는 동안 내 몸은 극도로 말라, 팔다리는 마치 매듭지어둔 마른 넝쿨과도 같았소. 엉덩이는 물소의 발굽, 마치 실에 꿴 염주 같은 척추에, 갈비뼈는 헐어진 지붕에 드러난 서까레와도 같았소. 안강 깊숙히 들어간 눈알은 깊은 우물 저 아래서 빛나는 물과 같았소. 내 머리는 마치 땡볕에 내놓은 설익은 박처럼 쭈구러들었소. 뱃가죽을 만지려 할 때 잡히는 것은 등뼈였고, 등뼈를 만지고자 하면 뱃가죽이 잡혔소. 배변하러 일어나다 그 자리에 꼬꾸라지고, 손으로 몸을 문지르면 뿌리채 삭은 털이 부스러져 떨어졌소. [Majjhima Nikaya. 12] 그러나, 사리뿟따, 이런 혹심한 고행의 길로도 나는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다고 믿었던 수승한 법과 성스러운 지견을 이루지 못했소. 왜? 그러한 고행으로는 우리의 고뇌를 절멸할 지혜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오. [Majjhima Nikaya.12] 그때 나는 생각했소. "과거, 현재, 미래의 어떤 고행자가 겪었고, 겪을 고통도 내 고행을 능가하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이런 극한의 고행으로도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할 최상의 법과 수승한 지견과 지혜를 이루지 못했다. 깨달음을 위한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라고. [Majjhima Nikaya.36] 내가 보낸 수 없이 많은 생, 백, 천, 수만 생과 수겁(劫)의 생성과 소멸을 거슬러갔다. 거기 어떤 이름으로, 어떤 집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았으며, 어떤 기쁨과 슬픔을 겪고 얼마큼의 수명으로 그 생을 마쳤는가를 알았다. 이렇게 수많은 전생의 각기 다른 특성과 정황을 자세히 기억해냈다. 이것이 그 날밤 초저녁에 성취한 첫 번째 지혜였다. 이것은 곧 방일하지 않으며, 늘 깨어 자제하는 자가 필경 성취할 몫이라. 그러나 나는 그렇게 일어난 기쁨이 내 마음을 압도하게 하지 않았다. [Majjhima Nikaya.36] 나는 청정하여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 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이 어떻게 사라지고 다시 오는지를 보았다. 각기 제 업에 따라 높게 혹은 낮게, 훌륭하게 혹은 미천하게, 좋게 혹은 비참하게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 [Majjhima Nikaya.36] 나는 이렇게 완벽하게 집중된 마음을 번뇌 소멸의 지혜로 향하게 했다. 그리하여 "이것이 고의 근원이다" "이것이 고의 소멸이다" "이것이 고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 라고 아는 지혜, 즉 세계를 있는 바 그대로(yathabhuta) 보는 지혜를 성취하였다. 이 지혜를 성취함으로써 내 마음은 모든 감각적 욕망과 생멸, 무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윤회는 끝났다. 청정한 수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될 일을 마쳤으며 더 이상의 생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Majjhima Nikaya.36] 수많은 생 헤맸어라 찾지 못하고 집 짓는자 찾아 괴로운 생 다시 또다시 오! 집 짓는 자 너 이제 보였나니 다시는 집 짓지 못하리라 서까래는 모두 꺽어지고 마룻대 또한 부러져 갈애를 부수고 마음은 열반에 이르렀다 [Dhammapada. 법구경. 153~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