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호로병의 신비<부산시 동래·원효대>

백련암 2008. 3. 14. 23:46

 

 

 원효대사

 

호로병의 신비 /<부산시 동래·원효대>


멀리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 자욱하던 안개가 걷히면서 들판과 동해가 내려다 보였다.

원효대사는 멀리 금빛 물결로 반짝이는 고요한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면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의 주름살 깊은 이마엔 근심 걱정이 역력했다. '도대체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그는 자문했다. '출가한 사문이 살생의 계를 범한다면···'

원효대사는 살생을 저질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놈이 미리 손을 쓰지 않는다면 더 큰 살생의 업이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사문이 자기를 위해 계율에 충실함은 소승(小乘)이 아닌가?

대승(大乘)이라 면 마땅히 자기를 버려야 할 것이 아니가?

남이 악업을 짓는 것을 수수방관하는 것을 분병 사문의 도리가 아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것을 막아야만 한다.'

출가(出家), 그것은 이미 자기를 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원효대사의 심정은 석연치 않았다.

'우매한 그들이 깨닫지 못해서 이 몸의 손에 피가 묻게 한다면···?'   원효대사는 다시 생각에 사로잡혔다.

'사문이 계율을 파함은 다른 어느누가 살생하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아닐까?

사문의 파계는 사문이 아닌 사람들의 어떤 죄업보다 크다. 하지만 이 모두가 자기에게 집착해 있기 때문이 아닌가?

나를 버리자!'

결정을 내린 듯 원효대사는 암자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정좌를 하고서 사미승을 불렀다.

『대선아.』

『네, 스님.』

『너 아랫마을에 내려가 호로병 다섯 개만 구해 오너라.』

『갑자기 호로병은 뭐 하실려구요?』 암자에도 너댓개는 있는데요?

『쓸 데가 있느니라. 그러니 떠나도록 하라. 서둘러서 사시(四時)마지 올리기 전에 돌아오너라' 어서 다녀오너라.』

 분부를 받는  대선 사미가 마을로 내려가자 원효 스님은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큰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선정에 들었다.

가끔 멀리 동해를 바라보곤 하는 원효대사의 눈은 형형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주위의 산과 암자는 쥐죽은 듯이 조용하기만 했다. 바람 한 점 없고,

날짐승의 푸득득거리는 날갯짓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禪에 들었던 원효대사는 문득 눈을 뜨고 귀를 기울였다. 얼마 동안 그렇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그럼 목전에 박두했단 말인가?' 하고 중얼거렸다.

원효대사의 시선이 머문 수평선에 까만 점이 하나 둘 나타났다.

『어떻게 할까?』

지그시 눈을 내려감은 원효 스님은 수차의 자문자답 끝에 자기 희생쪽을 택했다.

스님은 왜구들이 말을 듣지 않을 경우 5만 왜구를 살생키로 각오했다.

그것은 무고히 짓밟힐 신라 백성을 구하면서 적군 마저도 살생죄를 범치 않게 하려는 보살심이었다.

5만 명 살생이란 큰 죄를 스스로 짊어지려는 결심이 서자 원효 스님은 자기 집착에서 벗어나 후련한 듯 눈을 크게 떴다.

이때 저 멀리 수평선에 하나 둘 까만 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배들이 동해를 까맣게 덮었다.

왜구의 대병선들이었다.

때는 신라 신문왕 원년(681). 지금으로부터 약 1천3백년 전이었다.

대마도를 거점으로 일본 해적들은 해마다 신라의 함대와 동해안 지방을 침입하여 약탈과 방화, 살인을 자행했다.

그럴 때마다 태평세월을 보내던 신라인들은 막심한 피해를 입곤 했다.

이를 막기 위해 신라 조정에서는 배를 만들고 군사를 길렀다.

그러자 왜구는 몇 년간 뜸했다. 왜구의 침입이 뜸해지자 신라는 다시 안일해졌다.

이 틈을 노려 왜구의 대병선단이 물밀듯 밀어닥친 것이었다. 5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왜구는 일로 서라벌을 향해 진격할

채비를 차렸다.

이들은 동래와 울산 앞바다에 배를 대고 첩자를 풀어 놓았다. 원효 스님은 이러한 왜구의 계략을 이미 다 헤아리고 있었다.

스님은 눈을 감았다 이미 그의 나이 60여 세.

이제 자신의 생애에 마지막 보살행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파란 많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20세 젊은 나이에 구도의 길에 올라 중국으로 가던 중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을 마시고 홀연 자성을 깨달은 지 어언 40여 년.

공주와의 사랑, 도둑떼와의 생활 등 온갖 만행과 행각을 겪었으나 지금처럼 어려운 경계는 일찍이 없었다.

원효 스님은 대선 사미가 가져온 호로병 다섯개를 탑 앞에 나란히 세웠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 눈에 가장 잘 띄는 높직한 바위 위에 신라 장군기를 바위에 세워 꽂았다.

바람을 받아 돛폭처럼 나부끼는 신라 장군기 앞에서 원효대사는 합장을 하고 암자로 돌아왔다

『5만의 목숨을 살릴 길은 없을까?』

'이것이 금생에 있어서 이 몸의 마지막 죄업이 될 것이다.' 

다시 정좌한 원효대사의 눈은 형형하게 빛났다.

'대선아 하고 부르자, 예 하고 곁에 모시고 있던 대선 사미가 대답하며 곧 앞으로 나왔다.

『대선아, 너 지금 산을 내려 저 아랫마을 어구에 가면 낯선 길손 두 사람이 있을 테니 가보아라.』

『가서 어떻게 할까요, 스님?』

『그냥 가보면 자연 알게 될 것이니라.』

마을 어구에 당도한 대선 사미는 뱃사람들을 발견했다.

등을 보이고 있는 그들이 스님께서 말한 길손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니 그들은 왜말을 하고 있었다.

『장군기가 펄럭이는 걸 보니 필시 신라 대군이 있을 걸세. 그냥 돌아가세.』

『이봐, 저 성벽 안에 신라 군사가 있다면 저렇게 조용할 수가 있을까?

   길에 군사가 지나간 흔적도 없고, 마을 사람들 얼굴이 평안하기만하니 성벽 안에 군사는 있을 리 없네.

   저 장군기는 무슨 곡절이 있을테니 올라가 알아보세.』 둘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미승은 뒤를 따랐다.

산 중턱쯤 오르자 그들은 길을 잃었다. 주위를 살피던 그들은 저만치 서 있는 사미승을 보고 손짓해 불렀다.

사미가 다가가자 그들은, '너는 이 산속을 잘 아느냐?, "예" 하고 말하자

『그들은 우리는 동래 뱃사람들인데 길을 잃었구나. 우리에게 길을 좀 가르쳐 주려므나. 그들은 이렇게 속이며 길을 물었다.

이에 대선은 '가르쳐 드려야죠. 그런데 어디로 가시는 중인데요? 하자, 그들은 '저기 무슨 장군기가 펄럭이고 있는데

그쪽으로 가보고 싶구나.'안내 좀 해주겠느냐?』 
『그들은 원효대사가 장군기를 꽂아 둔 바위께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아, 예, 미륵암을 말씀하시는 건군요.』

『그러구 말구요. 저 절은 제가 사는 미륵암이에요. 함께 가시죠.'하자 '마침 잘되었구나.』

『고맙다. 그런데 저 깃발은 무슨 깃발이지? 저 근처에 군사들이 있니?』

『아뇨.』

이들이 왜국의 첩자라고 생각한 대선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저 뒷산 성벽 안에도 없니?』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아마 없을 거예요.』

『봐라, 내가 없다고 했잖아. 이제 그만 돌아가자.』

 그러면서 그것 보라는 듯이 슬며시 동료의 옆구리를 찔렀다. '내 말을 들었으면 좋았을 걸. 그래 내가 뭐라든?

그럼 저기까지 갈 필요도 없겠네. 우리 이제 그만 돌아가세. 그러세' 수군거리다가 그들이 오던 길로 되돌아서려 했을 때였다.

두 녀석이 막 길을 내려가는데 장군기가 세워진 바위 위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여보시오. 두 분 길손은 잠깐 들렀다 가시오.』

'잠깐, 두 분 길손은 발을 멈추시오. 어려운 걸음을 하셨는데 어찌 바로 가시려 하오?'

바위 위에 우뚝 버티어 서서 그들을 제지시킨 것은 다름아닌 원효대사였다.

그들은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랐다.

『저, 스님. 저희들은 바빠서 그냥 돌아가렵니다. 다음날 찾아뵙지요.』

『한 사람이 말을 더듬으며 간신히 발뺌을 하자 원효대사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아니, 어서 오르도록 하시오.』

『어허, 먼길을 모처럼 오셨는데 그냥 가시다뇨. 그런 서운한 데가 어디 있겠소. 대선아, 어서 모셔오너라.』

『야, 그냥 달아나는 게 어때?』

『아냐, 달아나면 의심을 살 테니 구경이나 해보자.』

어쩔 수 없이 암자에 들어선 두 녀석을 두리번거리며 속삭였다.

이런 그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스님이 입을 열었다.

『어디서 오셨소?』

『기장에서 왔습니다.』

『기장? 그럼 왜군을 만났겠군.』

『왜군이라뇨? 못 봤는데요.』

『못 봤다구? 네가 네 자신을 못 봤다고 하다니, 너희가 왜인이 아니고 무엇이냐?』

스님이 호통을 치자 한 녀석이 재빨리 품에서 비수를 꺼내 스님을 향해 찔렀다. 순간,

『네 이놈!』

대갈일성과 함께 선사의 주장자가 허공을 쳤다.

칼을 빼든 왜군은 그 자리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이를 본 한 녀석은 목숨을 빌었다.

이윽고 다른 녀석이 정신을 차리자 스님은 그들 앞에 호로병 다섯 개를 나란히 놓았다.

『너희가 내 말을 들으면 무사할 것이나 만약 어기면 너희들은 물론 5만 대군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니라.』

선사는 붓을 들어 호로병 목에 동그랗게 금을 그었다. 그러자 두 녀석의 목이 아프면서 조여들었다.

그리고 목에는 호로병과 같은 핏멍울진 붉은 동그라미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보았느냐? 너희들이 내 말을 따르지 않을 때는 이 호로병의 목을 깨뜨릴 것이고 그러면 너희들은 피를 토하고 죽고 말리라.'

두 녀석은 공포에 떨면서 엎드려 목숨을 빌었다.

'스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제발··· 정말 몰라 뵈었습니다.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요.'

그들은 애걸복걸하며 목숨을 빌었다.' '정 그렇다면 살려주마. 한데 내 말을 듣거라. 

스님은 다섯 개의 호로병에 동그라미를 그어 그중 세 개를 그들에게 주었다.

『자, 이것을 갖고 너희 대장에게 가서 일러라. 만약 이 밤이 지나도록 돌아가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그들은 기다시피 산을 내려갔다.

두 녀석은 즉시 대장에게 가서 호로병을 내보이면서 보고했다.

『'장군님 말도 마십시오. 조선에는 신술을 부리는 대사가 있습니다. 우리둘은 목숨을 겨우 부지해 가지고 돌아왔나이다.

    그 대사는 우리의 계획을 미리 환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 병을 가지고 우리 군사 오만을 전멸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진중으로 돌아간 그들은 자기들이 당한 일을 대장에게 사실대로 보고를 했다. 그리고 호로병을 대장에게 바쳤다.

   대장은 노발이었다. '맹랑한 소리로고!』

『뭣이? 이 따의 호로병을 갖고 나를 놀리는 거냐!』

화가 치밀어 오른 대장은 칼을 들어 호로병을 쳤다.

병이 깨지는 순간 대장의 목이 꺾이고 피를 토하며 숨졌다. 놀란 왜군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말았다.

지금도 동래 범어사가 있는 금정산 중턱에 가면 원효대 바위가 있고 바위에는 당시 장군기를 세웠던 자리가 움푹 파인 것을

볼 수 있다.

거기서 5리쯤 올라가면 미륵암이 있고 그 뒤로 성벽이 있어 원효 스님의 자재했던 신통력을 재음미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