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성도재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처님이 매우 행복한 일생을 살다가 열반에 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일생은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비극적이고 불행한 조건이었습니다.
싯다르타가 왕자로 태어난 카필라국은 약소국이었습니다. 강대국들 때문에 늘 불안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어머니는 싯다르타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제자 데바닷타는 교단의 통치권을 넘겨달라는 요구가 거절당하자 세 번씩이나 부처님을 살해하려고 했습니다. 또 부처님을 존경하며 후원하던 어느 임금은 그의 아들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감옥에 갇힌 뒤, 살해당했습니다. 끝으로 당신의 국가와 민족이 멸망하는 큰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보다 더 비극적인 상황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이렇듯 시비와 살상이 소용돌이치는 역사 현장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부처님은 늘 갈등과 대립의 소용돌이 속에 살았지만 분노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문제를 풀었습니다. 부처님은 언제나 문제를 평화롭게 다뤘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처님의 일생이 평화로웠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카필라국과 콜리야국의 국경에 로히니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양국 모두에게 소중한 농업용수였죠. 싯다르타가 28살이 되던 해, 가뭄으로 인해 두 나라 농부들은 대규모 충돌을 일으켜 양쪽에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샤카 족은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가 회의를 소집합니다. 지금의 의회 같은 것이죠. 이 회의에서 싯다르타는 “전쟁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양 쪽 대표단을 뽑아 이들이 분쟁을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싯다르타의 안건은 압도적으로 부결되고, 사령관은 병력동원 심의회의를 엽니다. 싯다르타는 “나는 여러분이 조직하는 군대는 물론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상가의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회원은 그 누구라도 교수형을 당하거나 추방되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가족들이 사회적 배척 대상이 되어 재산을 몰수당하게 됩니다. 이런 상가법을 모르지 않는 싯다르타는 자칫 자신뿐 아니라 부왕을 비롯한 가족들의 생명까지도 담보한 채로, 전쟁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은 사람의 생명을 담보하고 살상을 하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결국 싯다르타는 “양친의 허락을 얻지 못하더라도 출가하여 이 나라를 떠나겠다.”는 선언을 하고, 출가를 합니다. (암베드카르 저 ‘인도로 간 붓다’에서····)
이것이 싯다르타의 첫 번째 위대한 결정입니다.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게 됐습니까? 싯다르타의 인류에 대한 대비심 즉 큰 사랑 때문입니다. 그는 따르는 군중들에게 말합니다. “저는 샤카 족과 콜리야 족의 분쟁 해결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화해의 방향으로 여론을 돌려주신다면, 양국 간에는 전쟁 대신 평화가 유지될 겁니다. 그러므로 부디 돌아가 주십시오.” 29세의 나이로 위대한 결정을 내린 싯다르타는 출가합니다. 물싸움은 어떻게 됐냐고요? 싯다르타의 간곡한 부탁에 양국의 대표를 뽑아 화해를 합니다.
이렇게 폭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비폭력 정신을 바탕에서 나온 고뇌에 찬 결정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불교는 없었을 겁니다.
출가한 싯다르타는 사람들을 고통의 바다에서 구해내겠다는 일념으로 두 선인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타를 찾아가 정진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싯다르타가 원하는 궁극의 깨달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행을 선택했습니다. 고행의 길은 스승도 없이 홀로 깨달아야 하는 무사독오舞師獨悟의 길이었습니다.
소식으로 인하여 마치 가지에서 바로 따서 만든 표주박이 바람이나 열로 인해 쭈글쭈글해지고 줄어들듯이 머리가죽도 주름지고 쭈글쭈글해지고 말았다. 뱃가죽을 만지려 하니 척추가 만져졌고, 척추를 만지려 하니 뱃가죽이 만져졌다. <마지마 니카야>
싯다르타는 고행을 자그마치 6년 동안이나 지속했습니다. 그러나 고행의 길은 열반을 향한 길이 되지 못했습니다. 비로소 몸은 깨달음의 토대이기 때문에 몸을 괴롭히는 고행으로는 평온한 경지인 열반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알아차린 싯다르타는 고행을 포기하기로 결정합니다. 후대에 이것을 두고 위대한 포기라고 합니다. 그가 고행을 포기하자 그와 함께 수행하던 다섯 명의 동료들이 싯다르타에게 온갖 비난과 욕설을 퍼부으며 그의 곁을 떠납니다. 고행을 푼 싯다르타는 나이란자나강가 우루빌바 마을 보리수 아래 앉아 깊은 선정 삼매에 든 끝에 12월 8일 샛별이 뜰 무렵, 존재의 참모습을 깨닫고서 부처가 되었습니다. 결국 부처님의 고행 포기는 위대한 결정이 된 것입니다. 싯다르타가 고행을 계속했다면 이 땅에 부처님이 오시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흘렀을 지도 모릅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고서 그 때 심정을 이렇게 시로 읊었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삼매에 든 바라문에게 연기의 법이 선명하게 드러날 때 모든 의혹이 사라졌다. 모든 현상에는 그 원인이 있음을 환히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두려워할 아무 것도 없다. 모든 이치가 그 앞에 밝게 드러났다. 태어나고 죽는 일까지도 환히 깨닫게 되었다. 온갖 집착과 고뇌가 자취도 없이 풀렸다. 우주가 곧 나 자신이고 나 자신이 우주임을 알게 된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이 깨달음을 나누기로 결정을 합니다. 그리곤 자신이 출가해서 공부했던 두 스승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타를 떠올리지만 그들이 이미 세상을 하직 한 후인 것을 알아차린 부처님은 당신이 고행을 포기하자 타락했다는 비난과 욕설을 퍼붓고 떠난 다섯 동료를 떠올립니다. 그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다섯비구가 사는 녹야원까지 240km를 걸어서 찾아가기로 결정합니다. 이 결정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제대로 배우려면 지금 2008년에 2,600여 년 전의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내가 2,600여 년 전 바로 그때 부처님이 계시는 그곳에 있다고 생각해야만 합니다. 2,600여 년 전의 그 길은 사람이 사는 집들도 별로 없는 울창한 정글이 무성한 무서운 독사와 맹수들이 들끓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더구나 맨발로 그것도 빌어먹으면서 가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미치지 않고서는 감행할 수 없는 무모한 짓이었죠. 죽기를 각오하기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깨달음의 법을 꼭 전해서, 필경에 온 인류가 이 깨달음의 장엄에 동참하게 하겠다는 부처님의 대 자비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결정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출가를 결심하게 된 물싸움에서도 보듯이 문제를 회피하는 법이 없이 정면에서 대면하여 처리하는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부처님은 신을 믿는 사회에서 신을 부정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니 천민이니 하는 신분이 정해진 사회에 살면서 계급제도를 부정했습니다. 여성의 인권이 철저하게 무시하던 사회에서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고 여성이 수행자가 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사상과 제도를 근본적으로 부정해 버린 것입니다. 맞아 죽거나, 빌어먹던 처지인 만큼 굶어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을 당당하게 실천했습니다.
부처님은 인도의 브라만교의 사상과 정신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연기 무아 사상을 천명했습니다. 인도의 민중이 믿는 신을 부정해 버린 것은 북한에 가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부정하는 것과 같고, 이스라엘에 가서 유일신 여호와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목숨을 걸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투철한 혁명정신으로 살아간 인물입니다. 부처님에게는 법의 길만이 희망의 길이었습니다. 다른 길은 끝없는 고통과 불행의 길이었습니다.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진리를 왜곡하고 희망을 짓밟아 결국 인간을 고통 속에 빠뜨리는 기성의 틀을 부숴버리는 혁명을 실천한 겁니다.
이렇듯 우리는 문제를 회피하는 나약하고 안일한 삶의 방식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어떤 문제와도 정면으로 마주하되 언제나 법의 정신에 입각한 실천 태도와 인내와 자애로움을 잃지 않고 해결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성도재일에 나약하게 살아가는 내 모습에 안쓰러움을 깊이 느끼며 몇 자 올립니다.
-참고서적; 도법스님의 <내가 본 부처> 암베드카르의 <인도로 간 붓다> 와타나베 쇼코 저 법정스님 옮김 <불타 석가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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