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율사
자장율사
활동년대 : 삼국
신라후기의 스님. 중국 구법승, 남산율종(南山律宗)의 개조. 이름은 김선종(金善宗). 신라 진골 출신으로 소판(蘇判) 김무림(金茂林)의 아들이다. 김무림이 늦도록 자식이 없자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축원하여 4월8일 그가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의자 처자를 버리고 원녕사(元 寧寺:또는 寧光寺)를 짓고, 636년(선덕여왕 5)왕명으로 제자 실(實)등 10여명을 데리고 당나라에 가서 종남산 운제사의 원향(圓香)을 만났다. 643년(선덕여왕 12) 장경 4백 함과 당번(幢幡)· 화개(花蓋)등을 가지고 서해로 배를 타고 돌아왔다. 654년(선덕여왕 14) 황룡사 9층탑을 세웠고, 영취서산 아래 독룡이 사는 연못으로 가서 설법하여 독룡을 조복받고, 연못을 메우고는 통도사를 창건하여 금강계단을 설치했다. 전국 각처에 10여개의 사탑을 건립했고, 649년(진덕여왕 3) 중국의 제도에 따라 신라에서 처음으로 관복(冠服)을 입게 했으며, 650년(진덕여왕 4) 당나라의 연호사용을 건의하여 실행하게 했다. 당나라의 연호사용을 건의하여 실행하게 했다. 만년에는 강릉군에 수다사(水多寺)를 짓고, 뒤에 태백산에 석남원(石南院; 淨巖寺)을 세워 그곳에서 입적했다. 우리나라 남산율종의 개조가 되었다. 저술로는《아미타경의기(阿彌陀經義記)》《사분율갈마사기(四分律?磨私記)》《관행법(觀行法)》제경계본(諸經戒本)》등이 있었으나 전하지 않는다.
*경북 영천시 수도사 창건:"수도사는 647년(진덕왕 1) 자장과 원효 두 스님이 금당사(金堂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한다."(전국사찰총서14,수도사편)
*경북 경주시 분황사에 주석하심(전통사찰총서15,분황사편,151page)
*경북 군위군 신흥암(新興庵) 안내판에 810년(헌덕왕 2) 자장(慈藏)스님이 신흥암을 창건했다고하나 자장 스님의 활동년대와 맞지 않아 그대로 믿기가 어렵다.(전통사찰총서16,신흥암편,126page)
*경북 봉화군 홍제사 창건관련:"절의 창건은 전설로 전하는데 신라 진평왕 때 자장 율사, 또는 문무왕 때의 원효 대사가 창건주라고 한다."(전통사찰총서16,홍제사편,381page)
*경북 포항시 오어사 창건:"오어사는 『삼국유사』에도 그 이름이 나오는데, 신라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1) 때 자장 율사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항사사(恒沙寺)라고 하였다."(전통사찰총서16,오어사편,429page)
*경북 포항시 자장암(오어사 산내암자) 창건(전통사찰총서16,오어사편,439page)
*경북 포항시 천곡사 창건:"천곡사는 신라시대에 자장 율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임금은 여왕인 선덕왕이었는데, 평소 원인을 모르는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다가 지금의 천곡사가 자리한 천곡령(泉谷嶺)을 찾아가 약수로 며칠 간 목욕하였더니 피부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이에 감동한 선덕왕은 경주로 돌아가자 마자 자장 율사에게 명하여 천곡령에 사찰을 짓게 하였고, 자장 율사는 창건 불사를 마치고 천곡사라 했다고 전한다."(전통사찰총서16,천곡사편,452page)
*경북 영덕군 유금사 창건:"유금사는 637년(신라 선덕왕 6) 자장(慈藏)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전통사찰총서16,유금사편,458page)
*경북 김천시 봉곡사 창건:"1698년(숙종 24)에 지은 「봉곡사중수사적비명」에 의하면 644년(신라 선덕왕 13) 자장(慈藏) 율사가 창건하였다고 적혀 있다."(전통사찰총서17,봉곡사편,86page)
*전북 완주군 안심사 창건?:"안심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제기되어 있다. 조구(祖求)라는 스님이 창건했다는 설과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했다는 설이 그것인데, 이 두 가지 설이 모두 〈안심사사적비〉라는 동일한 자료에 수록된 내용이어서 약간의 혼돈이 따른다. 즉 〈안심사사적비〉는 처음 김석주(金錫胄, 1634∼1684)에 의해 비문 내용이 편찬되었으나, 비가 세워지지 못하고 있다가 1759년(영조 35)에 이르러서야 경내에 건립되었는데, 이 때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므로써 창건 역사에 대한 혼돈이 초래되었던 것이다."(전통사찰총서8,안심사편,300page)
*전북 고창군 문수사 창건:"문수사는, 사적기에 의하면 643년(백제 의자왕 3)에 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문수산에는 여러 가지 명칭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우리산(牛利山)’, 《동국여지지》에는 ‘문수산’, 《대동지지》에서는 ‘축령산(鷲嶺山)’ 또는 ‘청량산’ 등으로 부르고 있다. 그리고 ‘문수산’, ‘청량산’ 등은 절이름에서 뜻하는 것처럼 문수문수보살과 인연이 있는 이름이다.
문수사의 창건설화에 의하면, 자장율사가 당나라의 청량산에 들어가 삼칠일 기도를 거듭한 끝에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깨닫고 귀국하여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가만히 보니 산세와 수세(水勢)가 중국의 청량산(淸凉山)과 너무도 흡사한 것을 기이하게 여긴 자장율사는 문수산 기슭의 암굴(岩窟)을 찾아 7일 기도를 올렸는데, 그때 문수보살이 땅속에서 솟아나는 꿈을 꾸게 되어 땅을 파보니 화강석의 장대한 문수보살입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곳에 절을 세우고 문수사라 이름하였다. 이로부터 축령산을 문수산·청량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문수보살상에 얽힌 전설적 의미와 문수도량의 창건 연기에 의해서 대웅전 보다는 문수전에 주전(主殿)의 비중을 더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 건너간 것은 636년(선덕왕 5)이며, 그로부터 8년 후에 귀국했다. 백제·신라 두 나라가 정치적으로 심하게 대립되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보아 과연 자장율사가 이곳을 통과하였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신라 고승이 백제 땅에 와서 절을 세웠다는 기록은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있기는하나 당시 불교의 사세를 보면 수긍이 가는 일면도 있다. 그러나 사적기에도 그같은 창건 설화를 예로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어 어쨌든 이를 감안해야 할 듯하다."(전통사찰총서9,문수사편,242~243page)
[자료제공 : 사찰문화연구원, 현대불교미디어센터]
'깨침과 영혼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산대사 시서비 (0) | 2008.01.25 |
---|---|
[스크랩] 사명대사 (0) | 2008.01.17 |
[스크랩] 퇴옹당 성철큰스님 사리 (0) | 2008.01.13 |
[스크랩] 경허 선사의 처절한 토굴수행과 깨침의 순간 (0) | 2008.01.09 |
[스크랩] 밀라래빠 동굴 수행기 (0) | 2008.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