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도둑놈이제? ”
백련암 성철스님 방에 군불을 넣고 있던 열일곱 살의 행자는
갑자기 나타나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묻는 성철스님의 물음 앞에 가슴이 덜컹합니다.
'도둑놈이라구? 내가 뭘 훔쳤더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절의 물건을 훔친 게 없어 항변을 하려고 하는데 이미 큰스님은 문을 휙 닫고
나가버린 후였습니다.
큰스님의 니 도둑놈이제? 라는 물음은 그 후 로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공양 준비를 하고 있을
때도 불쑥, 해인사 본절 강원에 내려가 공부를 하고 저녁 공양을 지으려고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으면 입구에 서 계시다가도 불쑥,
그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행자는 억울해서 항변합니다.
"큰스님 제가 뭘 훔쳤다고 그러세요? 억울합니다."
그러면 큰스님이 한결같이 그러셨답니다.
“잘 생각해봐라 이놈아!!” 네 놈이 뭘 훔쳤는지..“
어쨌든 행자는 큰스님의 공양을 담당하고 있어서 있는 정성을 다해서
밥을 짓고 찬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생전에 성철스님은 음식에 소금간을 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은
함께 먿을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 행자는 자신의 것을 따로 마련하기 귀찮아서 그냥 무염식의 음식을 먹습니다.
그러면서 늘 생각했다고 합니다. 나는 절집에 들어와서 먼지 하나도 남의 물건에 손을 댄 적이 없는데,
왜 큰스님은 날더러 도눅놈이라고 하시는 걸까? 어느덧 그게 화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행자님은 도둑이라는 누명을 자신만 쓴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답니다.
자신보다 훨씬 먼저 출가해서 선방에 앉아 정진하는 스님들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야! 이 도눅놈들아!!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말씀에 아무도 항변하는 스님이 없는 거였습니다.
어쨌든 그제서야 행자는 안심을 합니다. 아.. 큰스님이 나만 의심하는 것이 아니구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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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암 염화실. 성철큰스님이 머물렀던 염화실엔 지금 원택스님이 머물고 계십니다.
어릴 적부터 마을에 큰 유학자가 살고 있던 덕분에 중학교 때까지 사서를 익혔던 탓에
한문 실력이 어지간했던 터라
‘내가 한번 팔만대장경을 번역해보리라’ 하는 마음에 해인사로 들어온 순박한 행자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뭔지, 불교가 뭔지 하나도 몰랐습니다.
심지어는 선방에 스님들이 왜 앉아만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래도 마을에서 자신의 스승이었던 대학자도 모르는 ‘반야심경’을 절에 와서 외우고,
장차는 자신의 손으로 장경각 안에 있는 한문 장경을 다 우리 말로 옮기리라는 포부 때문에
절집 생활 모든 게 즐겁기만 했습니다.
스님이 뭐하는 사람들인지도 몰랐으니 성철스님이 산중에 얼마나 큰 어른이라는 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해서 묻고 싶은 말을 망설임 없이 털어놓기도 합니다.
"스님은 도인, 아니세요?"
추운 겨울날, 포행하고 돌아오신 큰스님께서 아궁이에 앉아 불을 쬐고 있는 것을 보고
물어본 것이었습니다.
"뭐라카노, 이 놈?"
"아니.. 도인은 춥고 더운 것도 모른다는데 왜 스님은 춥다고 아궁이 앞에 앉아 계십니까?"
그러던 어느 날, 행자시절이 끝나갈 무렵 행자님은 '도둑놈'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성철스님께서 선방 문을 드르륵 열어 제치고 벽력같이 소리를 지른 것이었습니다.
“야.. 이 도눅놈들아! 밥값 내놔라!!
시주물로 살아가면서 밤낮 이렇게 졸기나 하고 앉아 있고 공부를 제대로 안하는 네놈들이 도눅놈이
아니고 무엇이더냐? 당장 밥값 내놔라 이 도둑놈들아!!“
그리곤 몽둥이를 휘둘렀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 당시를 회상하면서 원오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도들의 피같은 시주물로 살아가면서 공부를 잘 하지 않으면 그게 도둑놈이라는 말씀이었죠.
그러니까 밥값을 하지 않으면 우리들 수행자는 도둑놈이라는 말씀이었어요.
출가자라면 간담이 서늘해지는 말씀이죠. ”
스님은 그 이후 ‘내가 밥값을 하고 있는가 항상 살피면서 살게 되었다'고 하시는데,
대장경 번역을 미뤄두고 군법사(대령 계급의 군종감)로 살아가면서 그래도 몇 번은
'밥값은 했구나‘라고 생각하셨다고 했습니다.
듣기론 성철스님께서 단 한 번 ‘ 내가 밥값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하는데,
역대조사들의 어록을 발췌 번역한 ‘선문정로 禪門正路’를 번역하시고 나서였다고 하는군요.
어제 대전 계룡대에 살고 계신 원오스님을 뵙고 돌아오면서 ‘밥값’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일생에 몇 번쯤은 이런 말을 할 수 있어야죠..“
원오스님의 말씀이 귓전을 때립니다.
부모님께 받은 하해와 같은 은혜, 이웃과 세상이 준 무한한 은혜, 부처님께 받은 은혜에
얼마나 밥값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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