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 대웅보전... 조선 광해군 13년(1621)에 다시 지은 정면3칸 측면3칸의 목조건물로 되어있다
대웅전 네 모서리 기둥 윗 부분에는 벌거벗은 여인상을 조각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절을 짓던 목수의 사랑을 배반하고 도망친 여인을 조각한 것으로
나쁜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위해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고 한다
도편수의 사랑이야기 <첫번째 이야기> / <강화·전등사>
경기도 화성군 소재 전등사를 창건할 때의 이야기다.
아침 저녁으로 목욕을 재계하고 톱질 한 번에도 온 정성을 다하던 도편수는 어느 날 일을 마치고 피곤을 풀기 위해 마을로 내려와
주막을 찾았다. 텁텁한 막걸리로 목이나 축이려던 도편수는 그만 주막집 작부와 눈이 마주쳤다.
『너 참 예쁘게 생겼구나. 자 이리 가까이 와서 너도 한 잔 마셔라.』
작부는 간드러진 웃음과 함께 술잔을 비우고는 다시 도편수에게 권했다.
『암 들구 말구. 잔이 철철 넘치도록 따라라.』 술이 거나해진 도편수의 눈엔 작부가 더없이 예쁘고 아름다워 보였다.
『너 그 손 참 곱기도 하구나. 이 억센 손과는 비교가 안되는구나.』 『나으리의 이 손이야말로 보배 손이 아니옵니까?』
『보배라니? 거 별소릴 다 듣겠구나.』 『이 손으로 성스러운 대웅전을 짓고 계시니 보배스럽지 않습니까?』
작부가 입이 마르도록 극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거친 손을 만져주자 도편수는 그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못할 정도로 기분이 들떴다.
작부는 이때다 싶어 도편수 곁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앉아며 갖은 애교를 다 부렸다.
『정말 나으리의 솜씨는 오묘하옵니다. 나무기둥 조각 하나하나가 어찌 그토록 섬세하고 정교할 수가 있는지요.』
『그래 고맙다. 천하에서 둘째가라면 섭섭할 이 솜씨를 네가 볼 줄 알다니, 오늘밤 내 흠뻑 취할 것이니라. 자 어서 따르거라.』
『나으리, 그 공사는 몇 해나 걸리나요?』 『음, 앞으로 대여섯 해는 족히 걸릴 것이다. 한데 그건 왜 묻느냐?』
『소녀가 나으리를 얼마간 모실 수 있나 알고 싶어서지요.』
『오, 거참 영특하구나. 네가 원한다면 내 매일밤 너를 찾아와서 술을 마실 것이니라.』
『소녀 더이상 아뢸 말씀이 없사옵니다.』 『네 말 한마디가 그저 이쁘기만 하구나. 이리 더 가까이 오너라.』
『나으리 이러심 안돼요. 이 손 놓으시고 오늘밤은 늦으셨으니 그만 돌아가세요. 나으리 모실 날이 오늘만은 아니잖아요.』
『허긴 네 말이 맞다.』
만취하여 주막을 나선 도편수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거르지 않고 주막을 찾아 곤드레가 되도록 술을 마셨다.
그러나 작부는 매일밤 도편수의 애간장만 타게 할 뿐 쉽게 정을 주지 않았다.
『히히 목수 녀석, 오늘밤도 돈만 뿌리고 돌아갔구나.』
주막집 노파는 매일밤 돈을 물쓰듯 하는 도편수가 마치 큰 봉인 듯 작부에게 단단히 일렀다.
『얘야, 절대로 정을 줘서는 안된다. 정을 주는 날이면 그날로 돈 벌기는 틀린 게야.』
이같은 계략을 알지 못하는 도편수는 대웅전 불사가 더디어지는 것도 생각 못하고 매일 술에 취했다.
도편수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초췌해졌다. 작부는 일말의 가책을 느꼈는지, 아니면 연민의 정을 느꼈는지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제 도편수하고 살림을 차려야 할까 봐요.』
『얘, 그 무슨 소리냐. 네 덕분에 내 팔자도 좀 고쳐 볼 참인데…』
『팔자고 뭐고 더이상 그 순진한 어른을 괴롭힐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쯧쯧, 큰소리 탕탕 치더니 어느새 정이 든 모양이구나.』
『아닌 게 아니라 정도 들만치 들었어요.』
『허나 안된다. 돈도 돈이지만, 돌쇠가 알면 널 그냥 둘 것 같으냐?』
작부는 그말에 그만 흠칫했다.
돌쇠와는 오래 전부터 정을 통해온 사이로 돈만 벌면 육지로 나가 잘살아 보자고 약속한 터였다.
세월은 흘러 대웅전 불사도 어느덧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공사비로 많은 돈을 받았건만 목수에겐 동전 한 닢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도편수는 마음속으로 다집했다. 「오늘은 약속을 받아내야지. 곧 새살림을 내자고.」
주막에 이르러 막걸리를 마시며 색시를 찾았으나 보이질 않았다.
『할멈, 색시는 어디 갔기에 이렇게 늦도록 오지를 않소.』
『도편수 어른 뵈러 간다고 나갔는데 웬일일까?』
『나를 만나러요?』
『아니 그럼, 이년이 혹시 그 돌쇠 녀석하고 줄행랑을 친 게 아닌가?』
이미 나룻배를 마련하여 돌쇠와 육지로 도망간 줄 뻔히 알면서 노파는 딴전을 펴고 있었다.
『아니 줄행랑이라뇨? 나를 두고요.』
『글쎄 고것이 사나흘 전부터 어째 수상쩍다 싶더니, 아마 돌쇠 녀석하고….』
『이런 빌어먹을….』
도편수는 술상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하늘엔 별들이 어제와 다름없이 여전히 반짝였고, 바닷바람 역시 무심히 스쳐갔다.
오직 도편수의 마음만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질 듯 했다. 몇날 몇밤을 지새운 도편수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지난날의 사랑이 증오로 변하면서 그는 복수를 생각했다.
어느 날 무슨 묘책이 떠올랐는지 목수는 여인상을 깎기 시작했다.
여자의 형체 4개를 조성한 도편수는 법당 네 귀퉁이 추녀 밑에 여인상을 넣고는 무거운 지붕을 받들게 했다.
『나를 배신하다니… 어디 세세생생 고통을 받아보거라.』
장식수법이 화려한 전등사 대웅전(보물 제178호) 네 귀퉁이 용마루 밑에는 지금도 4개의 여인상 마치 벌을 서는 형상으로 무거운
추녀를 이고 있다.
이 인물형 조각은 많은 참배객과 관광객 등 보는 이로 하여금 도편수의 우매한 사랑과 복수심이 담긴 전설을 음미케 한다.
두 그루의 은행나무<두번째 이야기>
『스님-.』
『…….』
『노스님-.』
동승은 백발이 성성한 노스님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며 목청을 높였다.
노스님은 마치 천년 고목인 양 눈을 감은 채 말이 없다.
하늘을 덮은 두 그루 은행나무가 서 있는 일주문 밖에 노스님은 아침부터 그렇게 앉아 있었다.
『노스님!』 사미승은 염주가 들린 노스님의 팔을 잡아 흔들었다.
『스님, 관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또 무슨 일로?』
『상감께 진상할 은행을 작년의 두 배인 20가마를 내라는 전갈입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산까치 울음소리가 고요한 가을 산사의 적막을 깬다. 노스님은 육환장을 짚고 일어나 동승과 함께 일주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선재야, 너 벼슬아치 성화가 무서우냐?』
『아뇨. 다만 해마다 은행은 10가마 정도밖에 열리지 않는데…』
『그래도 바쳐야지.』
『소승은 벼슬아치들이 부처님 도량에 와서 행패를 부릴 때면 그들이 측은하게 생각됐는데 이제는 그들이 미워집니다.
스님, 어찌하면 남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선재야.』
『네, 스님.』 그들은 걸음을 멈추고 바라봤다.
노승과 동승은 마치 자신들의 전생과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자기를 아끼기 때문이니라. 자기를 아끼는 마음은 남을 미워하기도 사랑하기도 한단다.
이는 모두 인연따라 일어나는 일이니 나의 업연으로 인해 남을 미워함은 곧 나를 미워함과 같느니라. 출가한 사문은 이런 마음을
버려야 한다.』
『오늘날 조정은 물론 사대부까지도 불법을 욕되게 하나 그렇다고 그들을 미워해서는 안된다. 부처님 법은 결코 더럽혀지는 것이
아니니 자비로써 대해야 하느니라.』 동승은 노스님 앞에 머리 숙여 합장했다.
불교 탄압이 심했던 조선조 시절.
나라에 공물을 바치고 사역을 해야 했던 스님들은 깊은 산으로 들어가 은거했다. 따라서 많은 절이 폐사 또는 퇴락해 갔다.
이럴 즈음 강화도 전등사에도 벼슬아치와 토호들의 토색질이 심했다.
젊은 스님들은 강화성을 쌓는 데 사역나갔고 나이든 스님들은 절에서 종이를 만들어 바쳐야 했다.
스님들은 이런 어려움을 수행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10가마 이상은 열리지 않는 은행을 20가마나 공물로 바치라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종이를 만들던 한 스님이 동승과 함께
다가오는 노스님을 향해 합장하며 말했다.
『스님, 스무 가마의 은행을 어떻게 바치겠습니까?』 『글쎄 어찌하면 좋을꼬?』
『상소? 소용없는 노릇이야.』
『그럼 탁발을 해서 바쳐야 할까요?』
『그것도 안될 일. 만약 그 사실이 알려지면 우리가 좋은 은행은 다 먹고 탁발한 은행을 진상했다고 트집잡을 것이다.』
노스님 주변으로 경내 대중들이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하나 둘 모여들었다.
『너희들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어여 가서 열심히 공부나 하여라. 불법의 길은 각자가 하는 일 속에 있으니 소임에 충실하거라.』
노스님은 다시 동승에게 일렀다. 『선재야. 너는 곧 백련사에 가서 추송 스님을 모셔오너라.』
말을 마친 노스님은 육환장을 끌면서 선실로 들어갔다.
『그렇지! 그 스님이면 될거야.
바람과 비를 몰아오는 신통력을 지녔으니 은행 20가마 열리게 하기란 어렵지 않을거야.』
땅거미가 질 무렵, 추송 스님은 동승을 앞세우고 전등사에 도착했다.
추송 스님은 곧장 주지실로 들어갔다. 수인사를 마친 두 스님은 한동안 무엇인가 의논했다.
이윽고 노스님이 동승을 불렀다.
『선재야, 모든 대중을 일주문 밖 은행나무 아래로 모이도록 일러라. 그리고 별좌 스님은 은행나무 아래 제단을 마련하고 3일 기도
올릴 준비를 하도록 해라.』
『스님, 은행을 많이 열리게 하는 기도인가요?』 『그렇다. 어서 전하기나 해라.』
노스님은 동승을 재촉했다.
이튿날 아침부터 은행을 더 열리게 하는 3일 기도가 시작되었다. 이 소문은 곧 인근 마을에서 마을로 알려져 강화섬 전역에 퍼졌다.
구경꾼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구경 나온 아낙들도 추송 스님을 따라 절을 하면서 함께 기도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올리는 재는 그 열기가 점점 고조되어 갔다.
당대의 도승 추송 스님이 친히 3일 기도를 올린다 하니 강화섬 벼슬아치들도 호기심을 갖고 기도장에 나타났다.
『노인, 당신이 주지요?』
『그렇소.』
포졸 서너 명과 함께 나온 군관이 노스님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 재는 왜 올리는 거요? 나라에 공물을 바치기 싫어서 상감마마와 백성을 저주하는 기도가 아니오?』
『어찌 그런 무엄한 말을… 우리는 상감마마에게 진상할 은행이 많이 열리기를 기원하고 있을 뿐이오.』
『하하하, 은행이 어디 사람 맘대로 더 열리고 덜 열릴 수 있단 말인가. 정말 어리석은 소리로군.』
군관은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비웃었다.
그때였다.
웃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군관은 얼굴을 감싸고 땅 위에 나둥그러졌다. 새파랗게 질린 군관이 정신차리고 일어섰을 때
군관의 한쪽 눈은 부은 채 멀어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구경꾼은 자꾸만 늘어났다.
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목탁과 바라소리, 그리고 염불소리가 일시에 멎었다.
신비로운 적막이 천지를 뒤덮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추송선사의 낭랑한 음성이 적막을 깨뜨렸다.
『… 오늘 남섬부주 해동 조선국 강화도 전등사에서 3일 기도를 지성 봉행하여 마치는 대중들은 두 그루 은행나무에 열매가 맺지 않게
해주기를 축원하나이다. 백년이고 천년이고…』
모였던 대중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선사의 축원이 끝나자 마자 바람이 일고 뇌성이 치더니 때아닌 먹구름이 일면서 우박과 비가 퍼부었다. 그 위로 은행 열매가 우수수 떨어졌고, 육환장을 짚고 선 노승과 동승이 마주서서 크게 웃고 있었다.
이날 이후 노승과 동승은 물론 추송선사도 보이지 않았으며 관가의 탄압도 없어졌다.
또한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오늘날까지도 열매를 맺지 않는데 사람들은 이 은행나무 하나를 노승나무, 다른 하나를 동승나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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