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칫타라파바타의 티싸 노스님 이야기

백련암 2008. 3. 21. 13:29

 

 

해인사 장경각

 

 

칫타라파바타의 티싸 노스님 이야기

 

 

수 백년 전 옛날에 타싸 대림원 에 타싸라는 사미승이 은사스님을 모시고 살고 있었다.

 

그는 언제가부턴가 왠지 모르게 중 노릇이 불만스러워져서 속가생활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혀 번민하고 있었다.

 

한 동안은 이 망상을 지워보려고 일부러 일거리를 만들어서, 승복을 빨고, 물들이고,

 

발우에 기름을 올리고, 헌옷을 고치는 등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마침내 스승 앞으로 나아가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게 되었다.

 

한데, 연만하고 덕 높으신 스승은 이미 제자의 마음을 환히 읽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장차 크게 정신적 성장을 거둘 가능성이 있으며,

 

지금의 불만도 분위기만 개선시켜 주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래라 저래라 훈계를 해서는 소용이 없고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으므로

 

그가 스스로 깨치고 소질을 발견해 내도록 도와주는 것이 낫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장스님은 단지 이렇게만 말했다.


"티싸야, 우리도 점점 나이를 먹어 가는 구나.
그런데 여기 티싸 대원림은 비구들이 공동으로

 

거처하는 곳이어서 우리가 늙어서 편안히 죽을 수 있는 곳이 못 되는구나.

 

그러니 네가 칫타라파바타에 가서 우리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거처를 율(律)의 규정에 맞춰

 

한 곳 마련해 보지 않겠느냐?"

 

사미승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좋아라 하고 곧 떠나려고 서둘렀다.

 

스승이 일렀다.


"그런데 티싸야, 거기 가서 집짓는 일을 하는 동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평소에 배운대로

 

명상 수행을 규칙적으로 하여 거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니라."

 

사미승은 스승님 말씀대로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는 스승을 떠나서 70리 길이나 떨어진 칫타라파바타를 향해 숲속 길을 걸어갔다.

 

그곳에 도착하자 그는 먼저 숲속에 있는 절에 가서 기도부터 드렸다.

 

그리고는 스승의 거처를 짓기에 알맞은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지붕감으로 알맞게 튀어나온 바위 하나를 찾아냈다.

 

그는 근처에 거주하고 있는 스님들의 동의를 받은 후,

 

다른 동물들의 둥우리나 심지어 개미집이 파괴되는 일이 없는지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주의를 말끔히 정돈하고 바위 아래 땅을 고르기 시작했다.

 

바위를 지붕으로 삼고 그 밑으로 벽을 쌓은 다음, 문과 창을 달았다.

 

그리고 나서 방에다 마루를 깔고, 문 앞에는 디딤돌을 놓았다.

 

또 바깥에는 경행대 를 길게 닦아서 왔다 갔다 걸으며 경행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가구로는 침대 하나와 의자를 만들었다.

 

이 모든 일을 하는데 힘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렸지만 그래도 일하는 동안에 줄곧

 

상응부 경전을 익히고 또 하루도 빠짐없이 일정한 시간을 명상주제[念處]를 참구하는데

 

바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가 토굴을 완성한 같은 날에 상응부 경의 공부도 마치게 되었고

 

또 상당한 정도의 정(定)을 이루는 데도 성공했다.

 

세 가지 일이 모두 동시에 결실을 맺게 되자 흡족한 마음이 되어 그 다음 날 티싸 대원림

 

으로 돌아갔다. 

 

스승을 뵙자 티싸는 의기양양해서 말씀드렸다.

 

"스님, 토굴 작업이 끝났습니다.

 

이제 가서 사실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졌습니다."

 

노장스님은 눈을 감은 채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조용히 말씀하셨다.


"티싸, 일이 너에게는 매우 힘들었지? 그런데도 열심히 잘 해냈다.

 

허나 너는 지금 이 길로 되돌아가서 오늘밤을 그 토굴에서 혼자 나도록 해라."

 

사미승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두 말 않고 스승이 시키는 대로 선걸음으로 칫타라파바타를

 

 향해 먼길을 되돌아갔다.

 

도착했을 때는 피곤했다. 그러나 발을 씻고 토굴 속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들고 앉았다.

 

해는 이미 지고 밤의 정적이 주위를 에워쌌다.

 

그 해맑은 고요 속에서 그는 자신이 해 낸 일을 차근차근히 되돌아보았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나는 참으로 이 일을 다른 생각 없이 오로지 스승님을 향한
사랑만으로 해냈구나.'


이런 생각이 그의 마음속에 오래 지속되더니 갑자기 희열이 솟구쳐
마침 대양의

 

파도가 와서 부서지듯 그의 온 몸을 휩쌌다.

 

이 상서로운 순간, 모든 조건이 그를 받쳐주었으며, 그 힘에 의해서 희열을 넘어서

 

관(觀)을 이룰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경험이 어떠한 조건들에 기인하여 이처럼 전개되는 지를

 

환히 볼 수 있었고, 이 통찰력을 뻗치어 삼계 를 두루 빠짐없이 관할 수 있었다.

 

그는 일체의 존재에서 무상(無想)과 고(苦)와 무아(無我)의 법칙에 따르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보았다.

 

즉, 모든 生하는 것은 반드시 멸(滅)한다는 것을 본 것이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밤을 세워 관을 힘차게 밀어 부친 끝에 마침내 모든 갈애를

 

소멸하였다.

 

일체의 번뇌가 사라지면서 그는 아라한 자리에 도달한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스승은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사미 티싸는 장로 티싸가 되어

 

바로 그 토굴에서 생을 마치고 무여의 열반(無餘衣涅槃)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그를 칫타라파바타의 티싸 노스님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탑묘를 세우고 그의 사리를 안치한 다음 이를 티싸의 탑묘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