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양생의 사랑/ 제 1장 = 2장으로 연결

백련암 2008. 3. 30. 00:47

 

사적제349호 고려시대 절터였던 만복사지

한땐 수백명의 승려들이 기거했다고한다.

 

석불입상 보물제 43호 

 

석불입상후면=선각한부처상이 선명하게그려져있다. 

 

오층석탑 보물제30호 

 

양생(梁生)의 사랑 /제 1장

 

지금은 폐허만 남아있는 절,

문종(1046~83) 때 지은 남원의 기린산 만복사 동편에 방 한 칸을 얻어 외롭게 살아가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양생(梁生)이었다.

 

양생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나서 외로운 마음을 달래기위해 가끔씩 시를 짓곤 했다.

봄이었다. 배꽃이 피는 싱그러운 봄날 이었다.

그의 방 앞에는 배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꽃이 피어 온 뜰을 은백의 세계로 만들었다.

이 날도 양생은 고독한 마음을 달래면서 배나무 아래를 거닐었다.

저절로 한 수의 시가 떠올라 조용히 읊조렸다.

 

한 그루 배꽃나무 외로움 벗 삼으니

시름도 하그리 많은  달 밝은 이 밤

외로운 창가에 홀로 누웠으니

어드메서 고운 님 퉁소를 부는가.

비취는 외롭게 짝 잃고 날아가고

원앙 한 마리 맑은 물에 노니는데

뉘 집에 마음 붙여 바둑놀이 하나.

등불 가물가물 이내 신세 점치는 듯.

 

 

이렇게 시를 읊고 나니 문득 공중에서 소리가 났다.

그대가 정말 고운 짝을 구하는가.

그렇다면 어찌하여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지 않는가?

양생은 하늘을 쳐다보았으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청아 했다.

 

양생은 부처님을 잊고 있었음을 깨닫고 무슨일이 있어도 내일은 부처님을 찾아 뵈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은 음력으로 삼월 스무나흗날이었다. 매년 이 날은 고을 사람들이 만복사에 올라와

저마다 향불을 피우고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었다. 

 

참으로 좋은 날이었다. 양생은 이른 아침부터 가슴이 설래었다.

<오늘은 꼭 소원을 빌어야지. 부처님이 무심하시지 않으시다면 반드시 내 소원을 이루어 주실거야.> 

 

저녁 예불이 끝나고 양생은 혼자 법당에 남았다.

그는 소매 속에 깊이 감추었던 저포(樗蒲)를 꺼내 들었다.

저포란 당시 중국 사람들이 점을 칠때 쓰는 점대 같은 것이었다. 

 

양생이 말했다.

 

존경하옵는 부처님.

오늘은 제가 부처님을 모시고 저포놀이를 하고자 합니다.

만약  제가 진다면 대중을 모아 설법하는 자리, 즉 법연을 베풀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부처님께서 지신다면 저의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제 소원은 간단 합니다.

저에게 아름다운 여인 하나를 짝으로 주시면 됩니다.

부처님은 온갖 지혜를 갖추시고 능하지 못한 바가 없으십니다.

하물며 이세상의 절반이 여자이온데  그중에서 저의 베필을 점지해 주시는 일이야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 아니겠습니까.

 

부처님이 물론 말씀을 하실리 없었다. 등상불이기 때문에.

그러나 부처님을 가피력을 베풀어 충분히 들어주는 분이라는 것을 양생은 믿고 있었다. 

양생은 혼자 빙긋 웃으며 저포를 던졌다. 

저포는 말 할 것도 없이 양생의 승리로 돌아갔다.

 

양생은 부처님께 말했다.

보십시오, 부처님. 제가 분명히 이겼습니다.

저의 아름다운 인연은 이미 정해졌사오니 자비하신 부처님께서는 저의 소원을 져버리지 마옵소서.

 

그때, 양생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무슨 일이 금방이라도 벌어질 것 같았다.

그는 부처님 탁자 밑으로 숨어 들어 동정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으려니 꽃처럼 아름다운 묘령의 아가씨가 들어왔다.

검은 머리에 깨끗이 단정하고 곱게 차려 입은 옷매무새가 진정 고왔다.

새까만 눈동자에 그 눈이 서글서글하게 생겼으며 날씬한 키에 긴 목을 가졌다.

월궁의 선녀, 바로 그와 같았다.

 

가만히 바라보니 아름다운 고운모습은 형용키 어려웠다. 

그녀는 그 고운 손으로 기름을 따르고 등잔에 불을 켰다.

향로에 향불을 지핀 뒤 물러서서 세번 절을 올렸다.

그러고 나서 탄식하듯이 말했다.

인생이 박명하기 어찌 이와 같사오니까.

그녀는 품속에서 축원문을 꺼내어 부처님 탁자 위에 놓고 낭낭한 음성으로 읽어 내려갔다.

아무고을 아무동네에 사는 소녀 아무개는 외람됨을 무릅쓰고 삼가 부처님전에 사뢰옵니다.

요즈음 변방이 허물어져 왜적들이 쳐들어와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따라서 봉화가 해마다 꺼질 날이 없습니다. 건물을 파괴하고 백성을 노략하오매,

친척과 노복들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피난하여 정처 없이 유리걸식하고 있사옵니다.

 

수양버들마냥 갸날푼 소녀의 몸이라 먼길의 피난이 여의치 않사와 깊은 안방에 조용히

틀어박혀 금석같은 굳은 정절을 더럽힘이 없습니다만,

야속하온 우리 부모님은 이 여식의 수절이 마땅치 않다고 하옵니다.

그리하여 궁벽진 곳에 숨겨 두어 초야에 묻혀 살게 된 지 거의 3년 세월이 속절없이 흘렀나이다.

 

밝은 달 아름다운 가을과 꽃 피는 봄날아침에 고단한 영혼입니다.

어이 위무할 수 있사오리까?

흐르는 흰구름의 박명함을 탄식하며 홀로 빈 방을 지키어 기막힌 밤을 보내오니,

님 그리운 이내 정이 채란의 외로운 춤을 오히려 슬프게 여겼나이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서러운 영혼 깃들 곳 없사옵고

그럭저럭 날이 가고 밤이 와서 구곡간장은 다 녹아 없어지옵니다.

어지신 부처님, 자비와 연민을 베푸시옵소서.

인간의 한평생이 이미 정해져 있사옵고 부부의 백년가약 또한 피할 길 없다 하오면,

바라옵건대 하루 속히 꽃다운 인연과 배필을 점지하여 주옵소서. 

 

은쟁반에 옥 굴러가듯 낭낭한 여인의 음성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축원문 낭독을 마친 여인이 가녀린 어깨를 들먹이며 어찌나 슬피 우는지 탁자 밑에 숨어서

보는 양생은 정신을 가늠 할 수 없었다. 

 

누가 여인의 눈물을 무기라 표현했던가.

누가 여인의 눈물에 속지 말라 했던가.

양생은 그런 말을 떠올릴 수 조차 없었다.

 

앵생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외모에서 부터 낭낭한 음성,

들먹이는 어깨, 양볼에 흐르는 두 줄기 눈물,  그 아름다움이 황홀하기 그지 없었다.

 

그는 스스로 그 정을 이기지 못해 탁자 밑에서 펄쩍 뛰어나왔다.

탁자 위에 다시 가지런히 놓인 글을  옆눈으로 보며 여인에게 물었다.

 

낭자는 누구이기에 이 만복사 부처님에게 와서 그토록 진한 감동의 축원문을 봉독하십니까?

양생의 물음에 여인은 다소곳하게 숙였던 고개를 들어 양생을 바라본 뒤

고개를 약간 옆으로 틀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에 놀라움이나 수줍음은 없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소녀도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의심이 있은시다면 던져 두셔도 좋습니다.

 

양생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뭐 자길 귀신이라고 생각했다는 건가. 아니야,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이야.

여인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당신은 베필을 구하고 있는 중이지요.

당신 이름은 무엇입니까?

 

양생이 대답하려는 찰나 그녀의 말이 앞서서 이어졌다.

하기야 구태여  이름 석자는 알아 무엇하겠습니까?

서로 마음이 맞고 끌리면 그만이지요.

 

양생은 겨우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그그그, 그렇고 말고요.

만복사는 오래 된 절이었다.

당우가 퇴락하여 스님네는 절 한 모퉁이에 움막을 얽어 살았는데

법당 앞에는  쓸쓸한 요사채가 하나 남아 있었다.

 

이 요사채는 객스님이나 오면 묵고 가는 곳이었고 스님네가 모여 살아가는 얘기들을 나누는

판도방(瓣道房)이었다. 일명 지댓방이라고 했다. 

 

양생은 여인에게 그곳을 가리키면서 한 손으로 여인의 손을 잡아끌었다.

여인은 거절하지 않았다.

둘은 행여 남이 볼세라 조심스레 판도방으로 들어가서 사랑을 나누었다.

 

이윽고 달이 동산에 솟아오르며 그 그림자가 창가에 비추는 데

문득 어디선가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 왔다.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누가 왔느뇨? 혹 아무개 아니냐?  밖에서 앳된 소녀의 음성이 들려 왔다.

그렇습니다. 소녀이옵니다. 

낭자께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문밖을 벗어나지 않으셨는데

오늘은 어찌하여 이런 곳에 와 계시옵니까?

 

창 밖에 소녀의 그림자가 밝은 달빛을 받아 선명함 그대로 투영되었다.

소녀는 문고리를 잡는 것으로 보아 안으로 들어오려는 듯 싶었다.

양생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때 여인이 말했다. 들어올 것 까지는 없느니라.

예.

여인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나는 오늘 아름다운 인연을 만나서 짝을 이루었다.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니라.

실로 자비로우신 부처님의 가피력이다.

 

이제 고운님을 베필로 맞아 백년해로를 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비록 부모님께 말씀은 드리지 못하고 정식으로 귀밑머리를 올리지는 못하여 예의에 어긋나는 일인 줄은 안다. 

그러나 이처럼 아름다운 연을 맺었으니 한평생의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너는 이 길로 곧장 가서 주안상을 준비해 오너라

 

시녀가 명을 받고 돌아갔다.

그 동안  둘은 방안을 정돈했다. 얼마 후 시녀가 주안상을 보아 왔다.

 

두 사람은 합환의 잔을 부딪쳤다. 참으로 꿈 같은 순간이었다. 그 들은 행복했다.

이 행복이 영원히 끝나지 말고 계속되기를 빌었다.

 

어느새 자정을 넘었다. 적어도 4 경(四更: 새벽 2 시 전후)은 됨 직했다.

양생은 문득 주안상에 차려온 그릇들을 보니 거기에는 아무런 무늬도 없었다.

그러나 술잔에서는 기이한 향내가 풍겨 왔다.

양생은 이것이 인간의 평범한  그릇들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심이 일기 시작하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어찌하여 그릇에 무늬도 글씨도 들어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잔에서 풍기는 이 기이한 향내는 무슨 조화일까?>

그는 의심을 접어 두기로 했다.

 

여인의 예의바른 몸가짐이며 맑고 고운음성으로 보아 그럴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 어느 명문대가의 따님이겠지.

한때의 정을 가눌길 없어 이 어둠 속에 집을 뛰쳐나와 나를 만나게 되었을거야.>

 

여인은 양생을 바라보며 뭔가 의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색을  하고 말했다.

도련님, 의심하지 마옵소서. 의심은 싫사옵니다. 

 

양생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르다 들킨 것처럼 당황했다.

그러나 역시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슨 말습이신지?

아, 아니옵니다. 되었사옵니다.

여인은 양생에게 술잔을 권했다. 그리고 시녀를 돌아보며 한가락 시를 짓게 했다.

그녀가 말했다. 

얘는 옛 가락밖에 모릅니다.

청컨대 당신이 시 한 수를 지어주시면 더 없는 기쁨이겠고,

이 아이가 당신의 시를 가락에 실어 부를 것입니다.

 

양생은 쾌히 승락했다.

그리고 만강홍(滿江紅) 가락으로 한곡조 시를 지어 시녀로 하여금 부르게 했다.

 

봄 추위 쌀쌀한 바람에

명주 적삼 펄럭이고

애닯다,

몇 번이나 향로에 불 꺼졌던고

저문 뫼 눈썹인 양 가물거리고

저녁구름은 양산처럼 펼쳐졌는데

비단 장막 원앙 이불

뉘로 더불어 노닐런고

 

금비녀 반쯤 꽂은 채

한 가락의 퉁소 불어 보니

덧 없는 제 세월

어이하여 그리 흘러만 가느뇨

봄 밤 깊은 수심 둘 곳 없는데

타오르는 등불은 가물거리고

병풍,

나지막이 둘러

한갖 헛되이 흐르는 눈물

뉘로 더불어 위로받으랴.

 

기쁠시고 오늘 이 밤

봄바람이 소식 전하여

중중첩첩 쌓인 정한(情恨)

봄 눈 녹 듯 녹았어라.

금주곡 한 가락 술잔에 기울여

한 많은 옛일 느껴워 하노매라.

 

 

*양생의 사랑이야기 제 2장으로넘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