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양생(梁生)의 사랑 /제 3장

백련암 2008. 3. 31. 03:03

 

 

 

양생(梁生)의 사랑 /제 3장

 

 

주인이 말했다.

필히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니, 함부로 나서지 않는게 좋겠구나.

 

주인은 말을 세우고 수레에서 내려 양생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은잔을 얻게 된 연유를 물었다. 양생은 보고 들은 대로 낱낱이 말했다.

얘기를 다 듣고 난  주인은 한참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다가 양생에게 탄식조로 말했다.

 

내 일찍이 슬하에 여식 하나를 두었네. 아들 하나없이 그 아이만을 길렀지.

나이가 차서 시집보낼 때가 되었는데 그만 난리가 나서 왜구들이 쳐들어와  그 애를 죽였다네.

해서 정식으로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개령동 길가에 묻었다네.

그렇게 한 후 머뭇머뭇하다가 어느새 3 년이 지나 대상날이 되었다네.

해서 그 애의 왕생극락을 위해 재라도 베풀까 하여 지금 보련사로 가는 길이라네. 

자네가 진정 그 애의 약속대로 하려거든 조금도 의심치 말고 기다렸다가 나의 여식과 함께 오게.

내 먼저 감세.

 

양생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떠나는 일행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여인을 기다리기로 했다.

과연 약속 시간에서 한 점의 오차도 없이 시녀를 대동하고  여인이 나타났다.

양생은 반가웠다.

낭자, 낭자가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오?

낭자, 낭자의 부모님도 만나뵈었소.

먼저 보련사로 가시면서 낭지와 함께 그리로 오라 하셨소.

고맙습니다. 낭군님.

자 가시지요.

 

둘은 서로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보련사로 향했다.

절 문에 이르러 여인이 먼저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절하고 곧 흰 위장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스님들과 친척들 중 아무도 그녀를 본 사람은 없었다.

오직 양생이 그녀를 보고 그 뒤를 따를 뿐이었다.

 

함께 드시지요.

양생이 보니 여인이 따라 하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양생이 여인의 말 그대로 옮겼다.

함께 드시지요.

 

여인의 부모는 양생의 말에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럼세.  우리 함께 드세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여인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달그락 거리는 수저 소리만 있을 따름이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식사하면서 수저질을 하는 것과 꼭 같았다.

부모와 친척들은 여식이 식사에 함께 참여 했음을 느꼈다.

 

그들은 마침내 장 속에 신방을 마련하고 양생으로 하여금 들어가 자게 하였다.

한밤중쯤 되어 안으로부터 냉랭한음성이 들려왔다.

이제부터 재가 신세타령을 하겠나이다.

제가 예법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였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시경>에서는 남녀의 중한 예법을 풍자하여 건상(蹇裳)이라 하고 상서(相鼠)라 하였지요.

제가 그 두서의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도 오랫동안 들판의 다북 속에 묻혀 있다 보니 풍정이 한번 발하매 마침내 능히 이를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뜻밖에도 삼세의 인연을 만나 그대의 동정을 얻게 되었고,

백년의 높은 절개를 바쳐 술 빚고 옷 기워 평생 동안 지어미의 길을 닦으려 하였나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숙명적인 것은 어찌 할 수 없습니다.

이별을 해야 하고 한시 바삐  저승길을 떠나야만 하옵니다.

운우의 정은 중국의 종양왕이 미인을 꿈꾸던 양대에서 개이고

오작의 한은 은하의 세계에서 흩어졌나이다.

님이여!

이 서럽고 도 아득한 정회를 무엇으로 표현해야 하겠나이까.

이 말을 마치고 여인은 슬피 울었다.

마침내 혼백을 전송하는 스님들의 의식이 집전되었다.

이른바 봉송(奉送) 이었다.

영혼이 문밖으로 나가는지 모습은 보이지 않고,

슬피우는 소리가 법당 문을 넘어 밖으로 이어지면서 이별의 시를 읊는 소리가 들려 왔다.

 

저승길이 바쁘기에  괴로운 이별을 하오마는

바라건대 내 님이여!  나를 저 버리지 마소서.

애닯구나 어머니여!  슬프구나 아버지여!

내 신세 어이하랴  고운 님 여의도다.

아득해라 저승길이여!

이 원한을 어이할꼬.

 

 

사라져 가는 가녀린 슬픈 노랫소리를 들으며 양생은 비로서 그녀가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었음을

확연히 깨달았다.

물론 그의 부모도 그녀가 3년상에  참려하였다가 혼령이 다시 떠나감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슬픔은 더욱 고조되었고 함께 붙들고 통곡하였다.

그녀의 부모가 슬픔을 누르며 양생에세 말했다.

우리 딸애의 은잔은 자네의 소용에 맡기니 알아서 사용하게.

그리고 내 딸 앞으로 되어 있던 밭 두 두럭과 여비 몇 사람도 자네에게 맡기니,

꼭 조건이랄 것은 없네만 내 딸을 잊지 말아주게나.

양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튼날 양생은 고기와 술을 장만하여 여인과 처음 만났던 장소를 찾아가니 과연 거기에는

하나의 쓸쓸한 무덤만 있을 뿐이었다. 

 

양생은 무덤앞에 가지고간 술과 고기 등을 차려 놓고 지전을 불사르며 조문을 지어 낭독했다.

오오, 그리운 님이시여.

님은 어릴적부터 자태가 아름답고 천품이 온순하기가 월나라의 미인 서시보다 나았나이다.

또한 당신의 문장은 선녀의 한 사람인 숙진보다 뛰어나 아무도 당신을 능가할 사람이 없었소이다.

규문 밖에 나가지 않았으며 항상어머니의 교훈을 잘 받았습니다.

난을 겪으면서도 굳은 정조를  온전히 하더니 그만 왜적을 만나 목숨을 잃으셨구려.

황량한 쑥대밭에 몸을  의지하고 피는 꽃 돋는 달에 마음만이 슬펐소이다.

봄바람에 귀척도는 구슬피 울고 가을철 비단부채  어디에 쓰리까.

지난날 밤 님을 만나 기쁨을 얻었으니, 비록 유명은 다르나 운우의 즐거움을 님과 함께 하였구려.

장차 백년을 해로 하려 하였더니,

어찌 몇칠 밤의 기쁨으로 이별이 닥칠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고운님이시여, 그대는 응당 달나라의 난새를 타시옵고 익산의 비가 되오리다.

땅이 암암하여 돌아올길 바이 없고 하늘은 아득하여 그대의 발길 끊겼소이다.

다만 아득하고 아득한 가운데서도 그대 만날 날을 가만히 기다리겠습니다.

님의 영혼이 속삭이는 말 듣고 내  구슬피 울었으며 구곡간장 갈갈이 찢기며 마음 아팠소이다. 

총명한 그대여! 아, 고운 그대여!

그 음성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고 그 모습 상기도 눈에 삼삼합니다.

아아! 이 설움 어이 하오리까.

그대의 삼혼이 비록 없어졌다 할지라도 하나의 영혼은 길이 남을 지니,

여기에 잠시 고운 자태 나타내구려.

비록 나고 죽음이 다르다 하더라도  그대의 총명함은 여전하리니,

어찌 나의 글월에 대하여 느낌이 없을 수 있겠소이까.

아아! 이몸은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있을 따름이외다.

조문을 마치고 그는 만복사 거처로 돌아왔다.

 

양생은 여인의 부모가 남겨 준 집과 농토를 모두 매각하여 매일 같이 재를 올리고

음식을 베풀었다. 

 

그에게 있어서 재산은 한낱 허명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여인이 없는 삶은 무의미했다.여인이 없는 돈과 재물은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하루는 그 여인이 공중에 모습을 드러내고 양생에게 말했다.

당신의 정성은 참으로 지극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의 은덕으로 다른 몸으로 환생 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당신이 나를 알아보지 못할까 저어하여 예전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냈을 뿐입니다.

지금 저는 남자로 태어났습니다. 

양생은 여인의 모습을 보고 그 음성을 들으며 너무나도 기쁘고 반가워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당신이었구려. 인간의 몸을 받아 났다니 참으로 잘 된 일이외다.

고맙고도 반갑소.

여인이 말했다.

비록 유명의 한계는 더욱더 멀어졌다 할지라도 당신의 두터운 은정을 어이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대도 마땅히 정업(淨業)을 닦고 정업을 맞으십시오.

저처럼 영원히 윤회를 벗어나는 일은 오로지 부처님께 의지하고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일일 뿐입니다.

부디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양생은 빈 하늘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고맙소.

내 반드시 당신의 뜻을 따라 부처님의 가피를 기원 하겠소.

 

양생은 그 후 남은 생을 독신으로 보내며 지리산에 들어가서 약초를 캐어 생계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그 뒷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