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이 난 고자대감
앞의 이야기에서 왕자를 정성껏 모셨던 내시 유겸지 또한 기도를 통하여 문수보살의 가피를 입은 사람입니다.
유겸지는 왕자의 병환이 나아 왕궁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지난날의 고생을 인정받아 내시감이라는 높은 벼슬과 부귀가
더 해갈수록 그의 마음 에는 부모에 대한 원망스러움이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아내의 가시 돋친 말은 그의 폐부를 찔렀습니다.
"자기들이 잘살기 위해 멀쩡한 자식을 고자로 만들어 내시에게 양자로 보낸 당신 부모나,
딸자식을 병신에게 준 나의 부모! 모두가 천벌을 받아야 마땅해요."
아내의 짜증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날아다니는 새들도 밤이 되면 잠자리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웅덩이의 송사리도 새끼를 치느라 세월을 잊고 사는데 우리는 무엇입니까?
멀쩡한 겉모습에 남의 존경을 받고 살면서도 부부의 정은 식은 재맛 같으니...
차라리 함께 죽어 다음 생이나 기약합시다."
한숨 짓는 아내의 말을 들을 때마다 아랫도리가 더욱 움츠러드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고
세상 살 맛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는 생각다 못해 왕자를 찾아가서 하소연하고 허락을 청했습니다.
"왕자님, 지금의 저는 죽어 내세를 기약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하오나 부처님께서 '주어진 업을 억지로 회피하려 하면 더 큰 업만이 쌓인다.'고 하셨으니,
지금 제가 죽는다 한들 어찌 내생의 올바른 삶을 기약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와 저도 왕자님처럼 오대산에 들어가 마지막 기도나 한번 드려 볼까 하옵니다.
부디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알았소. 유대관. 불보살님의 신통은 통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하루빨리 오대산으로 가서 정성을 다 하시오.
나처럼 불보살의 큰 은혜를 입을 수 있을 것이오."
유겸지는 곧바로 오대산으로 가서 1천일을 작정하고 사찰의 스님과 함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천일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문득 신심이 복받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속세의 큰 죄업으로 병신이 된 내가 하루 몇 시간씩 스님들의 염불에 의지하여 불보살의 가피가 내려지기를 바라고 있었던가?
아니다.
나의 진정한 신심을 보이자.'
그날부터 물 외에는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고 삼칠일(21일)동안 끊임없이 '문수대성'을 부르며 지성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21일이 지나 세수를 하기 위해 절 옆 개울로 나가 허리를 굽혔던 그는 깜짝 놀라 일어섰습니다.
턱 밑으로 까끌까끌한 수염이 자라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이상하다. 고자인 나에게 수염이 나다니...."
그는 곧 절로 달려가 주지스님을 불렀습니다.
"스님, 주지스님!"
"아니, 유대관. 음성이 어찌 그렇게 굵어졌습니까?"
주지스님은 오히려 유대관보다 더 놀라면서 뛰어나왔습니다.
"스님, 제 턱에 수염이 났습니다. 수염이!"
"정말 그렇군요. 진정 문수대성의 가피를 입었음이 틀림없는 듯합니다.
빨리 아래쪽도 확인해 보세요."
가만히 아랫도리를 만져 보던 유겸지는 정말 믿어지지 않는 현실을 접하고 눈물을 주르르 흘렸습니다.
감자씨 같은 것이 그것 밑에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부처님, 문수대성님.
이제 저도 사람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몇 년 후, 유대관은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아 평생의 소원을 풀게 되었고,
불보살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화엄경소 華嚴經疏> 60권을 정성껏 필사한 다음 경판에 새겨 세상에 유포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예상 밖의 불행이 많습니다.
특히 뜻하지 않은 불치병이 찾아 들어 죽음 앞에 서게 되면 일순간에 이 세상이 암흑으로 뒤덮이고 맙니다.
그러나 그 암흑은 우리의 업(業)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며,
그 업을 만들어낸 것이 있으면 그 업을 푸는 방법도 있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기도 등의 수행법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삼매 속에 빠져 들면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部淨)의 불보살과 하나가 되어
모든업이 녹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업병과 불치병과 시달린다 하여 암흑 속에서 살지 마십시오.
절대로 스스로를 방치하지 마십시오.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진정 마지막 각오로 불보살님께 매달려 기도하십시오.
몸도 마음도 함께 해탈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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