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성의 기틀을 마련한 백용성 스님
용탑선원과 용성스님의 사라탑과 행적비
3*1운동 당시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백용성(白龍城) 스님도 천수대비주를 외워 큰 경지를 이룬 고승입니다.
유교 집안에서 태어난 스님이 불교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877년 14 세 때의 일입니다.
꿈속에서 부처님의 수기(授記)를 받고 불경을 보기 시작하였고, 남원 덕밀암(德密庵)으로 출가하였으나
부모님의 강한 만류로 집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후 2년이 지난 16세 때 해인사로 찾아가 화월(華月)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정식으로 출가하였으며,
17세 때 의성 고운사의 수월스님을 찾아가서 소년답지 않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고 죽음은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일입니다. 모든 것은 무상하여 날로 변합니다.
어떻게 해야 생사도 없고 변하지도 않는 '나'의 성품을 볼 수 있습니까?"
그러나 수월스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않고, 먼저 천수대비주 를 외울 것을 권했습니다.
"지금은 숙업(宿業)이 무겁고 장애가 많아 견성법(見性法)을 너에게 일러주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대비주(大悲呪)를 부지런히 외우면 업장도 소멸되고 마음도 맑아져서 저절로 길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얼마 동안은 아무 생각 말고 대비주만 외우도록 하여라."
수월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스님은 대비주를 10만번 외우기로 스스로 다짐하고 부지런히 외웠습니다.
9개월에 걸쳐 대비주를 10만번 외워 마쳤을 때 스님은 양주 보광사 도솔암(도率庵)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현듯이 한 가지 의문이 솟아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산하대지와 삼라만상에는 모두 근원이 있다. 그렇다면 사람의 근원은 무엇인가?
듣고 보고 깨닫고 아는 근원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서 오는것인가?"
이 의문을 일념으로 생각한 지 엿새가 되었을 때,
마치 깜깜한 방에 등불이 밝혀지듯 그 근원을 확연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뒤 용성스님은 '무(無)'자 화두를 꾸준히 탐구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하였으며,
일제의 대처불교에 대응하여 대각교운동(大覺敎運動)을 전개하고 역경 사업에도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우리는 스님의 깨달음과 모든 활동에 10만 독(讀)의 대비주가 힘의 원천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대비주'도 좋고 '관세음보살'도 좋습니다. '나무아미타불'도 좋고 '마하반야바라밀'도 좋습니다.
무엇이든 한 가지를 택하여 부지런히 염하십시오.
특히 지금 불법의 문턱에 들어선 사람은 한 차례 깊이 기도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정하여 열심히 기도하기를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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