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가 있는 그곳

= 나 무 =

백련암 2008. 7. 5. 21:48

 

= 나 무 =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 주었다

내 집 뒤에
나무가 하나 있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 주고

세상의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때
그 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다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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