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도반道伴이어라 - 이준엽 님
같은 길을 서로 도우면서 함께 가는 좋은 벗’을 일러 도반이라 한다.
친구나 후배는 물론 가끔은 부모나 스승과도 도반이고 싶다.
언제, 어느 곳에 있더라도 수행자이고 싶다
1. 아난다가 하루는 생각에 잠겼다.
“좋은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만일 좋은 친구가 있고,
함께 수행할 수 있다면 내 수행의 절반은 이루어진 것이다.”
아난다는 기쁜 마음에 부처님께 자신의 생각을 말씀드렸다.
그러나 부처님은 뜻밖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수행의 절반이 아니라
전부를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순수하고 원만하며 깨끗하고 바른 행동은 언제나 좋은 벗을 따라다니지만
나쁜 벗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잡아함경》
2. 나에게 좋은 벗(善友)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혼자서 흠모하는 도반(道伴)이다.
세속 나이는 한참 아래지만,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본받고 싶은 벗이다.
하루는 그 벗과 다담을 나눴다. 대화의 요지는‘재가불자의 수행’이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위에 있는 불자들을 보면 마치 수행은 출가자 몫이고,
재가자는 부처님의 좋은 이야기에 취해 있는 듯하다.
나 자신부터가 그렇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부처님 말씀을 인용하게 되고,
상대방은 감탄하곤 한다.
어쩌다가 불자가 아닌 일반인에게 불교 기초상식만 들려줘도 귀를‘쫑긋’
세우고 이야기에 빠진다.
물론 혼자만의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그 벗과 다담을 나눌 때도 우쭐하는 마음이 있었다.
마침 개인적으로 백일기도를 마친 지 얼마되지 않은 때였다.
대화가 기도로 옮겨졌다.
“글쎄, 매일 천수다라니를 108독씩 하다보니 언제부턴가 한 호흡지간에
일독을 하게 되던….”
“말로만 들었는데 그것이 가능하나 보네요.”
“기도해서 안 되는 것은 없잖아.
그래도 한 번을 하더라도 참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호흡 한번에 다라니 한 번 독송했다는 것도 망상일텐데….”
“백일간 빠지지 않고 하는 것이 중요하죠. 저도 백일기도를 한적이있어요.”
그러면서 들려준 그벗의 백일 기도담은 참으로 대단했다.
몇 년 전, 그 벗은 식량난으로 고생하는 북한 어린이를 돕고자 발원했다.
수차례 벼르다가 마침내‘북한 어린이돕기 모금 백일기도’에 들어갔다.
일과를 마치고 매일 한 시간씩
광주의 중심지 금남로와 충장로에서 거리 모금을 했다.
거리에서 굶주리는 북한의 어린이를 돕자는 피켓과 모금함을 들고 외쳤다.
날씨가 궂어도 하루를 거르지 않았다.
물론 위기의 날도 있었다.
하루는 사업상 거래처 담당자와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고,
곡차로 이어졌다. 결국 자정을 넘기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술기운에도 모금은 중단할 수 없었다.
굶주리는 아이들 생각에 그냥 집으로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새벽녘, 모금함을 들고 충장로로 나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평상시보다 모금함에는 더 많은 성금이 쌓였다.
대부분 얼큰하게 취한 주당들이
이웃돕기 모금함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것이다.
기도한다며 다라니를 빨리 독송하는 이는 백일을 채우는 데 급급했고,
굶주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이는 기도내내 자비심이 충만했다.
3. 흔히 산을 좋아하는 이는 그곳에 산이 있어 오른다고 한다.
그렇지만 큰 산에는 큰스님이 계시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등산하는 이는 산의 정상을 향해 오르고,
마음을 찾아 나선 이는 깨침의 산을 오른다.
나 역시 가끔 큰 스님을 찾아 산으로 향하곤 한다.
산에서 스님을 만나면 궁금한 것이 많다.
‘ 삶의 지혜’를 묻기보다,
겉으로 보여진 모습에 더 관심이간다.‘ 어떤 연유로 출가 했을까?
고향은 어디일까?’등등.
하루는 노스님을 뵈었다.
종단의 어른이신 스님은 동진출가童眞出家하여
평생 흐트러짐 없이 정진해 오셨다.
스님은 이런저런 물음에도 자상하게 답해주셨다.
그 모습이 마치 친할아버지를 뵙는 듯했다.
결국 마음이 풀렸는 지대화의 수준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말았다.
“스님, 욕심 중에 재물욕, 식욕, 성욕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성욕을 이기기가 참으로 어려운데, 젊었을때 어떻게 넘기셨나요?”
질문을 하고 보니 ‘무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당장 나가라’고 호통을 치지 않을까 가슴이 움츠러졌다.
“나도 남자인데 왜 이성에 대한 생각이 없겠어. 그런데 그것은 별것 아냐.
수행 잘하면 그정도는 다스릴 수 있어.
그렇지만 성욕 보다 더 무서운 것이있어.” 의외였다.
어른을 놀리느냐고 혼낼 줄 알았는데,
노스님은 다정한 친구에게 덕담을 들려주는 듯했다.
더구나 성욕 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니 궁금했다.
“그것은 남이 나를 알아주는 명예욕이야.
나이가 들수록 성욕은 줄어들지만 명예욕은 더 지독해져.
숨 떨어지는 순간까지 떨쳐버릴 수 있을지 몰라.”
학창시절 친구끼리 나누던 대화 같았다.
더구나 걸림없이 들려주는 대답도 고마운데‘명예욕’은 의외였다.
지금은 열반하셨지만 당시만 해도 불교계뿐 아니라 타종교인들도 존경하던
스님이셨다.
명예로 치면 대통령이 부럽지 않아 보였고,
더 이상 누가 알아주지 않은들 어떠랴싶었다.
그 뒤《금강경》을 보게 되었다.
경전에서 부처님이 제자 수보리에게 고구정녕 들려주시는 말씀은
‘나라는 존재가 있고,
나라는 존재가 했다는 상相을 놓으라’라는 것이었다.
문득‘명예욕이 무섭다’던 스님이 생각났다.
그 후, 혹여 아상(我相)에 빠지지는 않는지 늘상 자신을 추스르곤 한다.
평생 정진으로 얻은 수행의 골수를 게으르고 무례한 젊은이에게 스스럼
없이 일러준 친구 같은 노스님이 생각난다.
4. ‘같은 길을 서로 도우면서 함께 가는 좋은 벗’을 일러 도반이라 한다.
친구나 후배는 물론 가끔은 부모나 스승과도 도반이고 싶다.
언제, 어느곳에 있더라도 수행자이고 싶다.
월간해인 3월호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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