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논산 개태사 철확의 영험

백련암 2009. 11. 10. 23:24


▲개태사철확 (開泰寺鐵鑊) :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호    시대 = 고려시대



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論山 開泰寺址 石造如來三尊立像) : 보물  제219호  시대 = 고려시대


논산 개태사 철확의 영험

개태사에 보관돼 있는 철솥.

 

고려 개국조인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세운 왕실사찰인 논산 개태사에는 수많은 설화가 전한다. 왕실의 비호를 받은

만큼 사찰도 흥성해서가 아닌가 싶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사찰 경내에 남아 있는 철로 만든 솥인 철확(鐵)이다.

 

한때 스님들의 수가 3000여 명에 달할 정도가 돼 공양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철확은 왜적이 침입했을 때

많은 군사들과 승병들이 이것을 사용했다고 하며 가뭄과 홍수를 이겨낸 신이한 이야기도 있다.

 

이 솥은 충남도지정 민속자료 1호로 지정돼 있다. 직경이 3m나 되고 높이가 1m, 두께가 3cm인 철확에 깃든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대홍수 일어나자 물길 막아 삼존불 보호

 

 철솥은 떠내려가 묻힌 후 일제시대때 발견  솥뚜껑은 아직 묻혀 국란 때 ‘웅’ 소리 내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개창한 뒤 한동안 태평성대가 유지됐다.

여기에는 왕실사찰이었던 개태사의 철솥도 큰 역할을 했다. 이 철솥은 가뭄이 들면 비를 내리게 해 주고,

홍수가 나면 그치게 해 주는 신비한 힘을 발휘했다. 어느 해에는 무척 심한 가뭄이 들었다.

 

왕실에서는 재물을 준비해 개태사까지 와서 기우제를 올렸다. “부처님, 이 나라 고려는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세운 나라이옵니다.

 

하오나 올해는 가뭄이 심하게 들어 온 백성들이 굶주림으로 고통 받고 있으니 제석천왕에게 명하여 큰 비를 내려 주소서….”

 

솥뚜껑이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개태사 앞 둠벙배미. 

 

기우제를 올린 그날 밤은 어김없이 장대비가 내려 가뭄이 해소되었다.


큰 비가 내릴 때에도 개태사에 와서 제사를 올리면 큰 비는 그쳐 주었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이던가. 왕실사찰 개태사에도 큰 재앙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사찰을 방문한 한 스님이 개태사에 하룻밤을 머물며 이상한 예언을 했다. “몇 년 후 이곳에 큰 홍수가 날 터이니 미리 대비를 하셔야 합니다.”

난데없는 스님의 말에 개태사 주지스님은 깜짝 놀랐다. “‘아닌 밤 중에 홍두깨’라더니 큰 물난리가 난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스님은 그저 입을 다문 체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고 다음날 길을 나서려고 일주문을 나섰다.

 

그때 주지스님이 달려와 스님의 발길을 돌려 세웠다. “스님. 어제 무슨 근거로 우리 개태사에 홍수가 난다고 말씀하신지 몰라도

어디 그 물난리를 피할 방법이라도 일러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자 스님은 “어허, 부처님 제자로 하룻밤 신세를 졌으니 그냥 가기도 뭣하니 소승이 하라는 대로 조치를 취해 화를 면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는 그 비책을 일러 주었다.

 

“몇 년 후 홍수가 일어나면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 절의 철솥으로 큰 법당에 계시는

삼존불(아미타불,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을 향해 내려오는 물길을 막으세요.

 

그러면 부처님을 떠내려 보내는 화는 면할 수 있을 겁니다.” 스님은 이렇게 말하고 휑하니 절을 떠나 버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구나. 난데없이 물난리는 무엇이고, 철솥으로 삼존불로 향하는 물길을 막으라는 말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일이 있는 지 몇 해가 지났다.

 

개태사 주지스님은 스님의 예언이 기억에 사라질듯 말듯하며 대중스님들과 열심히 정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 먹구름이 짙게 드리웠다. 순간 개태사 주지스님은 몇 해 전 그 스님이 한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혹시 대홍수가 일어나는 게 아닐까?”

덜컥 겁을 먹은 주지스님은 대중스님들과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큰 철솥으로 삼존불로 향하는 물길을 막았다.

 

 천호산 계곡에서 들이닥친 물은 개태사를 삽시간에 물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객스님이 이야기해 준대로 법당으로 향하는 물길을 철솥으로 막으니 삼존불은 물에 떠내려가지 않았다.

비는 몇 날 동안 하늘이 뚫어진 것처럼 내리 부었다.

 

마을은 물바다로 변했고, 논과 밭도 모조리 유실돼 버렸다. 인명피해도 많이 났다.

 

개태사도 법당만 남긴 체 요사채 등 부속건물은 모조리 물에 쓸려 내려가 버렸다.

피해가 너무 크자 스님들은 임시로 절을 떠나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인근 산 밑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그곳으로 수행처를 옮긴 스님들은 10여 일이 지나 비가 그치자 개태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런데 이게 웬일인가. 큰 법당 삼존불로 향하는 물길을 막기 위해 제방에 올려다 놓은 철솥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객스님의 예언에 따라 삼존불은 보호할 수 있었는데 철솥은 잃어버린 것이다. “하는 수 없질 않습니까.

 

그래도 철솥 덕분에 삼존불은 화를 면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인 셈이지요.”

 

이렇게 위안을 삼은 개태사 스님들은 몇 년에 걸쳐 다시 불사를 진행했다.

과거 홍수로 인한 피해도 복구가 되어 개태사는 평온을 되찾았다.

 

그런데 개태사 인근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흐린 날이면 사찰 인근에서 이상한 쇠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웅~ 우웅~” 마치 타종대로 큰 범종을 두드려 울리는 소리 같았다.

 

개태사 스님들과 마을 사람들은 분명 그 소리가 개태사 철솥이 우는 소리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가 나는 곳을 뒤져봐도 발견되지는 않았다.

 

더욱 이상한 일은 이 고을에 부임하는 수령이 전횡을 하는 등 백성들을 못살게 하면 이 소리는 자주 들렸다.

 

그렇지만 선정을 베푸는 수령이 부임해 고을을 통치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백성들은 철솥 소리가 나는 지 안 나는지에 따라 이 고을 수령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척도로 삼았다.

 

폭정으로 백성들을 괴롭히는 수령은 반드시 들통이 나서 개경으로 압송돼 죄과를 꼭 받았다.

그래서 이곳에 부임하는 수령은 좋든 싫든 개태사로 와서 선정을 베풀겠노라고 발원을 하는게 정례화 되었다.

 

 “부처님, 저는 이 고을에 부임해 오로지 백성들을 위해 일하겠사오니 제게 무한한 지혜를 주옵소서.

” 매번 부임하는 수령이 이런 마음가짐으로 고을을 다스리니 모두가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그래, 분명 마을에 떠내려간 철솥은 부처님의 화신(化身)일 거야.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나쁜 수령인지 착한 수령인지를 가려 낼 수가 있겠어.

 

어찌됐든 그 덕분에 우리 고을에 부임하는 수령은 절대 나쁜 짓을 못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가 말일세.” 

 

땅 속에 묻혀서도 백성들을 이롭게 했던 철솥은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시대때 개태사 아래 다리 근처에 발견되어

연산공원에 비치돼 있다가 1980년대에 개태사로 다시 옮겼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철솥의 뚜껑은 찾지 못해 나라의 변고가 생길 징조가 보이면 흐린 날을 택해 “웅 웅”하며 우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이 쇠 울음소리가 나는 장소는 천호리 개태사 앞 철길 서쪽 약 4000㎡의 논과 밭이 있는 곳으로 논보다 움푹하게 낮아 둠벙처럼 생겼다.

그래서 이지역 사람들은 그곳을 ‘둠벙배미’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