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부여 대조사 창건 유래

백련암 2009. 11. 11. 00:25

부여 대조사 창건 유래

大鳥寺 石造彌勒菩薩立像(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 보물 제 217호     시대 = 고려

觀音殿(관음전)


부여 대조사 창건 유래

*황금새 바위에 앉아 관세음보살로 변해*
 
백제 성왕, 5년 佛事…大鳥寺로 명명
 
바위는 고려시대 때 미륵보살로 조각  몸 아픈 사람들 기도하고 가피 입어
 
충남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성흥산(聖興山)에는 대조사(大鳥寺)가 자리하고 있다.
이 사찰에는 보물217호인 미륵보살입상이 유명하다. 고려시대 때 조성된 이 미륵보살입상은 이 사찰의 창건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시대는 백제 성왕 때. 성흥산에서 토굴을 짓고 수행하던 한 노스님이 있었다.
따뜻한 봄날 스님은 여느 때와 같이 방문을 활짝 열고 참선삼매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봄볕이 너무 따스해 자꾸 졸음이 왔다.
“이래서는 안 돼.”
 
노스님은 떨어지는 고개를 세우며 자신을 경책했다. 그것도 잠시. 또 다시 졸음이 밀려오면서 고개는 자꾸 땅으로 떨어졌다.

“어험, 어험. 이래서는 안 된다니까.”

 
너무 졸음이 오자 노스님은 잠시 누워 낮잠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도저히 안 되겠어. 잠시 눈을 붙인 후 정진을 해야겠어.” 자리에 누운 노스님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노스님은 곧바로 신기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대조사 미륵보살입상. 창건 당시 큰 바위였는데 황금색 새가 관세음보살로 화현했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 때 미륵보살로 모습을 바꿔 조각됐다고 전한다. 
 
한 마리의 큰 새가 서쪽에서 훨훨 날아오더니 노스님의 토굴인 성흥산 자락의 큰 바위 위에 앉았다. 날개는 찬란한 황금빛이었다.

 너무 눈이 부신 나머지 올려다 볼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와 신기하다. 황금색 새도 있구나.”
 
노스님은 소리를 지르며 그 새를 다시 한 번 쳐다보자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황금빛 큰 새는 별안간 관세음보살로 변해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났어!” 화들짝 놀라는 순간 노스님은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구나. 하지만 너무 생생한 꿈이었어.”
 
노스님은 꿈 생각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몰랐다.
다음날 같은 시간 또다시 노스님은 졸음이 와서 잠시 눈을 붙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제와 똑같은 꿈이 현실처럼 꾸어졌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동안 같은 꿈이 계속되자 노스님은 보통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임천골 관아로 달려가 성주에게 자신의 꿈을 소상히 아뢰었다.   
“요 며칠 동안 꿈을 꾸는데 아주 큰 황금색의 새가 소납이 사는 토굴 위 바위에 앉았습니다. 그 새는 잠시 후 몸을 바꿔

 관세음보살님으로 화현했어요.

 

이런 꿈이 며칠 동안 계속되니 필시 무슨 상서로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성주님께 사실을 고합니다.”
 
임천골 성주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도 잘 모르겠소.
어디 한번 그 큰 새가 앉았다는 바위에 가 봅시다.” 성주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노스님과 함께 토굴 뒤 바위로 올라가 보았다.
그 순간 꿈이 현실이 된 것처럼 황금빛 찬란한 큰 새가 바위에 앉았다.
 
잠시 후 새는 관세음보살로 화현했다.  “관,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셨다.”
  
소스라치게 놀란 성주와 부하들은 그 자리에 엎드려 절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백제의 수도인 웅진(熊津, 지금의 공주)에까지 펴졌다. 백제 성왕도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구나. 아마도 부처님의 힘으로 나라를 강성하게 하라는 계시가 아닌가 싶구나.
짐은 곧 수도를 이곳 웅진에서 사비성(부여)으로 천도하고 성흥산에 도량도 세울 것이니. 이번 사월 초파일부터 불사를 시작하도록 하라.”
 
이 때가 백제 성왕 5년이었다.
왕실 차원에서 불사(佛事)를 시작했지만 워낙 큰 사업이라 수백명의 장인이 투입되었다. 공사기간은 10년으로 계획했다.
하지만 성왕은 하루빨리 부처님 도량을 보겠다며 밤낮으로 공사를 계속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밤에 횃불을 켜고 공사를 하려고 하자 어디선가 큰 새 여러 마리가 날아와 주변을 밝히는게 아닌

가.  이 황금빛 찬란한 새들은 밤에도 빛을 발해 주변을 대낮같이 밝혔다.

 
“와, 환하다. 이렇게 공사를 하면 일찍 절을 지을 수 있겠다.”
 
그리하여 10년으로 예상됐던 불사의 기간은 5년으로 줄어들었다. 사찰 낙성식이 다가왔다.
성왕은 5년째 되던 음력 사월 초파일을 낙성일로 정하고 온 나라에 통보했다.
 
백제 땅 곳곳에 방이 나붙자 백성들의 마음도 부풀어 올랐다. “이번 초파일에는 꼭 성흥산에 가 보자.
거기 가면 부처님이 큰 가피를 내려주실 거야.”
 
낙성식에 동참하려는 사람들 가운데는 특히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은 부처님이 병을 꼭 낫게 해 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드디어 사찰 낙성일인 사월 초파일이 되었다. 왕실에서는 갖가지 공양물을 성흥산으로 날랐다.
낙성법회에는 백제 성왕도 동참했다. 백제의 고승대덕과 고관대작들이 모두 참석한 낙성법회는 성대했다.
 
“오늘 저희 백제의 백성들은 부처님의 가피로 국운을 융창시키기로 발원하였사오니 감응하소서.”
 
발원문이 낭독되고 축원이 이어졌다. 인산인해를 이룬 백성들은 멀리서 합장을 하며 저 마다의 소원을 빌었다.
낙성법회가 끝날 무렵 또다시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황금빛 새가 앉았던 바위에 내려온 것.
온 백성들은 그 새가 관세음보살임을 알고 일제히 관세음보살을 부르기 시작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한참 후 황금빛의 큰 새는 바위를 박차고 서쪽으로 나래를 치며 날아갔다.
 
성왕은 그 자리에서 사찰 이름을 대조사(大鳥寺)로 지었다. 이후 대조사는 백제왕실의 원찰이 되었다.
백성들도 대조사를 ‘백제 제일도량’으로 삼았다. 특히 몸이 아픈 일이 있으면 언제나 대조사 뒤편의 큰 바위를 찾아 관세음보살

을 염송하며 치유를 기원했다. 그러면 거짓말같이 병마가 사라지곤 했다.

 
대조사 바위의 위신력은 고려시대로 이어지며 미륵보살로 화현됐다.
몸이 아파 치료차 대조사 바위를 찾았던 석공이 바위 속에 미륵보살의 형상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래, 저 속에는 분명 미륵보살님이 계셔. 내가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야 겠어.”
 
이렇게 마음먹은 석공은 사찰에 이 사실을 알리고 자신이 평생 거대한 바위를 다듬어 미륵보살님을 조성하겠다고 청했다.
대조사는 곧 모든 스님을 참석시켜 전체회의를 열고 석공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몇 년후 거대한 미륵보살이 위용을 드러냈다. 석공의 병도 말끔하게 나았다.
이후부터 백성들은 관세음보살이 미륵보살로 화현해 몸이 아픈 백성들을 치유해준다고 믿고 대조사를 찾아 기도해 숱한 가피를

입었다고 한다.

 
* 부여=여태동 기자  
 
찾아가는 길
1) 서울에서 갈 때는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천안-논산 민자고속도로를 탄다. 연무나들목으로 나와 강경쪽으로 들어온다.

    강경을 지나 세도면-임천면으로 와서 성흥산성으로 올라온다. 성흥산 중턱에 대조사 이정표가 있다.

 

2)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논산이나 부여에서 임천면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와서 20여분 성흥산을 올라오면 된다.  
(041)833-2510
 
참고 및 도움
<대조사 미륵실기>, <부여군지>, 부여군청 문화관광과, 대조사 주지 임하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