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동해 척빈탑 유래

백련암 2009. 11. 11. 00:59

동해 척빈탑 유래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돌탑을 세웠다는 척빈탑.

  

돌탑 쌓으며 가난 물리친 홍도촌 사람들

 

구두쇠 김영감, 복혈 건드려 마을전체 재앙 와  복덕 나누라는 스님 말 실천하고 다시 부자 돼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의 홍도촌이라는 마을에는 ‘척빈탑(斥貧塔)’이란 돌탑이 있다.  높이가 약 3m, 기단부 직경이 약 3m쯤

된다.

말 그대로 ‘가난을 물리치는 탑’이라는 사연이 담긴 이 돌탑은 1928년 마을 주민들이 쌓았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홍도촌 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에도 똑같은 사연에 의해 돌탑을 쌓아 올렸는데 현재는 무너져서 남아 있지

않는다고 한다.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돌로 탑을 쌓아 올린 것일까.

 

그 절박했던 이야기는 척빈탑을 세운 유래를 기록한 기문(記文)에 새겨져 있다.

 

두타산의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고 인심이 좋기로 유명한 삼화사 계곡아래에 위치한 홍도촌은 주변 마을에서도 부러워하는 부자

마을이었다.

 

무릉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넉넉한 물은 들판을 기름지게 만들었고, 농사도 매년 풍년이 들어 마을 사람들은 먹을 것, 입을 것,

잠 잘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집집마다 끼니 걱정이 없으니 날마다 웃음이 넘쳤다.

매년 가을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풍년농사의 알곡을 삼화사 부처님 전에 올려놓고 감사의 불공을 올렸다.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이는 김 씨 성을 가진 부자였다. 하지만 김 씨는 마음이 넉넉하지 못하고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재물을 모으면 나누려 하지 않았다. 어쩌다 집안에 손님이 와도 마음을 내어 극진하게 대접하지 못하고 냉수 한 사발이

고작이었다.

 

“아이고, 저 영감 죽을 때 재물 다 싸 짊어지고 가려나?” 주변의 수근거림에도 김 부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가난한 거지가 구걸을 와도 아예 대문을 굳게 닫아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자린고비 영감’ ‘구두쇠 영감’이라 부르며 흉을 보곤 했다.

“나를 뭐라 불러도 좋다. 재물만 있으면 되니까.” 매일 동전 세는 일을 유일한 낙으로 삼던 김 부자의 집에 어느 날 삼화사에

주석하는 스님이 탁발을 왔다.

 

“나무 관세음보살, 부처님 전에 올릴 공양미를 보시 받고 있습니다. 적선하세요.” 구두쇠 영감은 잔뜩 스님을 노려보다가 대답

했다. “잠시 기다리시우. 내 안으로 갔다 올 테니.”

 

이미 마음이 인색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스님은 혹여 마음 씀씀이가 변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한참을 기다렸다.

하지만 집 안으로 들어간 구두쇠 영감의 손에는 쇠스랑이 들려 있었고, 소 외양간의 거름이 한 덩이 들려 있었다.

 

“여기 있다. 땡 중아. 이거나 먹고 썩 물러가라.” 황망한 일을 당한 스님은 며칠 뒤 다시 구두쇠 김 부자의 집을 찾았다.

 

이번에는 땅의 형세를 보는 지관(地官)으로 변장을 했다. 그리고는 그럴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김 부자에게 말을 걸듯 중얼거렸

다. “허허,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잘 사는구만. 형세를 보아하니 마을 한 가운데 복혈(福穴)이 지나가고 있어.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어. 조금만 복혈을 틀어 놓으면 더욱 잘 살 터인데….”

 

귀가 솔깃해진 김 부자는 지관으로 변장한 스님의 옷소매를 잡았다.

“지관, 지금 당신 뭐라고 했소?” “아니오. 나는 그저 지나가는 말을 했을 뿐이오.” 더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김 부자는

 다급해졌다.

 

 “내 오늘 당신에게 한 턱 후하게 낼 것이니 집으로 들어와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시오.” 지관 변장을 한 스님은 못 이기

는 척하고 김 부자의 집안으로 들어가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는 못 이기는 척 하면서 나머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지금 어르신의 집 형세는 복혈이 지나가는 것은 분명하오.

하지만 저 집 뒤의 큰 바위에 눌려 많은 복이 흘러 들어오지 못하고 있소.

그러니 바위를 좌측으로 조금만 옮겨 놓으면 이 지역의 모든 복이 어르신의 집으로 들어올 것이오.”

 

지관이 돌아가자 김 부자는 곧바로 하인을 동원함은 물론 이웃 주민들까지 인부로 사서 집 뒤의 바위를 옮기게 했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그저 두둑하게 주는 하루 품삯에 고개를 갸우뚱하기만 했다.

 

며칠 동안 바위를 옮겨 놓은 김 부자는 흡족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관의 말과는 반대로 가세가 점차 기울기 시작했다.

 

“아니, 그 놈의 지관이 거짓말을 했나. 왜 해가 갈수록 내 집안의 재물이 자꾸 밖으로 새기만 하는 것이야.”

하나 둘씩 집안의 하인도 내 보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남에게 베풀기에 인색한 김 부자는 이제 더 이상 부자가 아니었다.

 

몇 년 사이에 정말 ‘거지 중의 상거지’가 되어 버렸다. 곡산에 양식도 부족해 예전에 하인으로 있었던 집에 가서 양식을 꿔다

먹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나누기에 인색했던지라 말을 꺼냈다가 구박만 받고 돌아서야 했다.

불행은 김 부잣집 한 집의 몰락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풍년만 들었던 농사는 가뭄과 홍수로 인해 알곡 한 톨도 건지지 못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마을 사람들은 한 두 집씩 짐을 싸고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 모두가 굶어 죽게 생겼어.

무슨 방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어?”

 

마을 사람들은 내심 구두쇠 김 부자영감이 바위를 옮겨놓은 것에 대해 불안을 품고 있었다.

 

“김 영감이 바위를 옮기기 전에 우리 마을은 누구보다 잘 살았어. 그런데 지금은 거지신세가 됐어. 분명 김 영감이 무슨 꼼수를

부린 것 같아.”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심증만 있었지 물증이 없어 아무런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

 

가난이 계속되자 홍도촌 마을에는 거지들조차 구걸을 하러 오지 않았다. “홍도마을에 가면 내가 도로 먹을 걸 나눠 줘야 할 판이

라니까.”

마을 굴뚝에는 저녁이 되어도 연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삼화사에 주석하고 있던 스님이 염주를 목에 걸고 마을로

내려왔다.

아무것도 나눌 수 없는 마을인 줄 알면서도 스님은 그들의 심성을 떠 볼 요량이었다. 스님은 한 노파의 집에 도착에 목탁을 치며 적선을 권했다.

 

“스님, 우리 마을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왜 집집마다 다니시는 거예요. 이렇게 스님이 오셨으니 예전부터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따르던 우리 집에 마지막으로 남은 시래기 한 줄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착한 노인의 마음씨를 간파하고 마을에 닥친 액운을 풀어 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지세를 살펴보았다.

 

 “어허, 예전에 누가 복혈을 건드렸구만.” 스님은 노인에게 마을 사람들을 한 곳에 모으도록 했다.

 

그리고는 마을이 왜 재앙에 시달리는 지를 설명해 주었다.

“원래 이 마을에는 복혈이 흐르고 있었소. 그런데 언제부턴가 복혈이 막혀 모두가 고통 받고 있는 것이오. 보아하니 여러분들은 그동안 부자로 살면서도 남에게 베풀기에 인색했소.

 

특히 김 부잣집은 너무 욕심을 부려 복혈까지 건드렸으니 그 과보를 받는 것이오. 지금부터라도 복덕을 쌓는다는 마음으로

강가의 돌을 날라서 마을에 돌탑을 쌓으면서  가난을 물리치겠다는 기도를 매일 하시오.”

 

스님은 다시 마을 사람들에게 힘을 모아 복혈을 막은 바위를 다시 원래대로 옮기게 했다.

그리고는 비법(秘法)을 일러주었다. “탑 속에 항아리 하나 묻고 그 속에 간수를 가득 채워 담으시오. 그러면 가난이 물러갈 것이

오.”

스님이 돌을 쌓으라고 한 것은 혼자만 잘살려 하지 말고 서로 힘을 합치라는 뜻이었고, 항아리에 간수를 넣으라는 것은 살림을

소금처럼 짭짤하게 아껴서 하라는 뜻이었다.

 

비법을 알려주자 마을 사람들은 스님의 가르침을 믿고 실행했다. 바로 그해 가을 농사는 풍년이 들었고, 해를 거듭할수록 마을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게 됐다.

돌탑도 계속 커졌다. 홍도촌 사람들은 현재도 척빈탑을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기고 있다.

 

동해=여태동 기자 

 

 척빈탑이 세워진 유래를 기록한 기문.

 

찾아가는 길 /

1) 영동 고속도로를 타고 동해시로 들어온다. 동해시내로 내려오다 우측으로 돌아 도 42번 국도를 따라 올라온다. 삼화사의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하면 삼화동이 나온다.

2) 대중교통은 동해시에서 시내버스 12-4번을 이용하면 된다. (033)534-7661(삼화사)

 

참고 및 도움 /

척빈탑 기문, 삼화사불교대학 최선정화 교학처장, 삼화사 홈페이지, <두타산과 삼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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