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서울 구기동 승가사와 비운의 여인

백련암 2009. 11. 11. 18:08

승가사 마애불

초파일 마애불 연등

승가사 대웅전

승가사 승가대사

서울 구기동 승가사와 비운의 여인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말라’는 교훈 세상에 전해

 

서울 종로구 구기동 산 1번지에 위치한 승가사(僧伽寺)는 신라시대 때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진흥왕이 삼국통일의 대망을 품고 북한산을 점령했을 때 승가굴에서 수행하고 있던 혜인법장대사를 예방하고 왕사로

추대했다는 기록이 있다.

 

승가사에는 서역에서 불법을 널리 펴 관음보살로 화신된 승가대사를 봉안한 약사전(보물 제1000호)이 있고 마애관음석불

(보물 제215호)이 서울을 굽어보며 중생들의 애환을 달래주고 있다.

 

이곳에는 전 주지였던 상륜스님(2007년 12월 28일 입적)이 신도들에게 전해 준 애절한 여인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근세 승가사에는 나이가 열아홉 된 처녀가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젊은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부처님 품에 의지

한 여인이었다.

 

이름은 김점례.

삭발염의는 하지 않았으나 점례는 곧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주지스님의 자비심 속에 막 성인고개인

스물을 넘어가고 있었다. 

 

인생의 회오리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점례가 세속과 인연을 끊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있던 어느 날 승가사에 귀부인이 찾아왔다.

 

이 여인은 서울에 사는 부유한 재벌의 어머니로 7대독자의 신붓감을 찾기 위해 마애불에 기도하러 왔던 것.

그곳에서 점례를 본 여인은 한 눈에 며느리 감으로 눈도장을 찍고 주지스님에게 간청하기 시작했다.

“주지스님, 우리 집안과 저 여인이 인연을 맺는 자비를 내려주세요.”

 

“안됩니다. 저 아이는 이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만 중생을 제도해야 할 몸입니다.

그리해서는 안됩니다.

더욱이 일찍 부모를 여의고 절집에 들어와 세속과 인연이 없는 아이입니다.” 주지스님이 거부할수록

귀부인의 간청은 더 간절했다.

 

“사실 우리 집안은 재산은 넉넉하나 아들이 대를 잇지 못해 큰 걱정입니다. 두 번씩이나 장가를 들었지만 후사가 없었습니다.

 

저 여인을 저희 집에 보내 주신다면 이 생에서 평생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면서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겠습니다.”

 

 

 부잣집으로 시집가 억울하게 죽은 점례  원혼 되어 가해자들에게 나타나 괴롭혀

 주지스님 영가법문 내려서 혼령 천도해

 

오랫동안 절집에 살았던 점례는 사찰생활에 싫증도 나고 바깥세계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

밖으로 뛰어 나온 점례는 마냥 뛸 듯이 기뻐했다. 세상을 다 얻은 듯했다.

 

그저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자식 하나만 낳으면 귀부인이 되어 그동안의 외로움을 모두 다 잊고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날 저녁 주지스님이 점례를 불러놓고 조용히 물었다.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주지스님은 점례의 마음을 이미 읽고 직접 답을 듣기 위해 물었다.

 

“아 예…” 대답은 하지 않았으나 점례의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본 주지스님은 “다가오는 인연을 막을 수 없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점례의 결혼식은 성대하지 않았다.

그저 가족들만 모인 조촐한 자리였다.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결혼한 남편은 자상하지 않았다.

그래도 점례는 남편과 시부모를 부처님 모시듯이 공경하며, 달콤한 시간을 가졌다.

 

몇 달이 지나자 점례의 몸에 태기가 들었다.

급히 병원으로 데리고 간 시부모는 담당 의사로부터 점례의 몸상태에 대해 이상한 진단결과를 들었다.

 

“임신은 분명한데 모태에 악성종양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의사는 단호했다. “아기를 지우지 아니하면 산모가 위험합니다.” 

 

부모가 물었다.

“수술하면 다음에 아이는 가질 수가 있나요?”  

 

의사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시부모는 7대 독자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를 낳을 요량으로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점례는 그저 북한산 승가사 마애불을 향해 기도하며 “건강하게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세월이 흘러 태아의 분만기가 다가왔다.

병원에서는 아이와 산모를 함께 살려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 했으나, 아이를 분만한 점례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죽을 때를 안 점례는 남편에게 소원을 전했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제가 죽으면 승가사 뒷산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세요.”

 

7대 독자의 탄생에 흥분한 시부모는 점례의 시신을 거두는 것에 소홀했다.

그저 회사 직원에게 지시만 하고 장지까지 가지도 않았다.

 

점례의 시신을 호텔 신축예정지 부지에 묻고 돌아와 승가사 뒷편 양지바른 쪽에 묻었다고 허위보고를 했다.

시간은 훌쩍 지나 아이가 성인이 됐고 회사일도 잘 되어 호텔부지에 건물을 올리게 됐다.

 

그런데 점례 남편의 꿈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추워라. 아이고 추워라.”

점례의 소리였다.

너무나도 오랜 세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던 사실이라 꿈이거니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

 

이튿날도 또 그 이튿날도 계속해서 똑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의심이 난 남편 사장님은 그때 직원을 불러 물었다.

 

당황한 직원은 “틀림없이 승가사 뒷산에 묻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나서 점례를 묻은 장소를 찾아가 보니 무덤은 호텔 건축공사로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거짓말을 해놓고 그 무덤을 찾아가 보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장은 당시 직원을 다그쳐 현장을 찾다가 점례의 유품을 발견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사장은 직원을 밀쳤고, 그 바람에 그만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길로 사장은 정신이상자가 되어 버렸다.

 

호텔공사 현장에서 점례의 시신을 묻은 덤프트럭 운전사도 갑자기 유리창에 나타난 귀녀(鬼女)의 모습에 놀라 강 속에 차를

몰아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점례를 수술했던 병원에서도 해괴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점례의 병을 간호하던 간호사가 점례의 혼백을 본 것이다. “귀신이 나타났어요. 귀신이요.”

그러나 누구도 곧이듣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 후 두 번째 나타난 점례의 혼령은 병원장의 몸 속에 들어와 정신을 혼란하게 했다.

 

다시 세월이 흘러 점례의 아들이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갔는데 호텔방에서 난데없는 휘파람소리가 들려왔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은 아버지에게 문안인사를 하니 알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며느리를 점례로 착각해 발작을 일으키려 하였다.

 

때마침 승가사 주지스님이 그 집을 방문하자 온 가족이 스님에게 호소했다.

 

“스님, 저희들을 살려 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주지스님은 조용히 일렀다.

“참회는 아무리 무서운 원한도 녹여낼 수 있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을 하십시오.”

주지스님이 시키는 대로 불단을 차리고 염불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집안은 점점 활기를 되찾아갔다. 그러나 점례의 혼령은 집안을 떠나지 않았다.

다시 승가사 주지스님이 방문해 영가천도 법문을 했다.

 

“점례야,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원한 속에 죽게 된다.” 

그러나 점례의 혼령은 아랑곳없이 주지스님에게도 달려들었다.

 

스님이 염주로 그의 얼굴을 치자 혼령이 붙은 며느리는 도망치듯 천장에 올라갔다 내려왔다하며 난리를 쳤다.

 

주지스님은 큰 염주를 벗어서 목에 걸어주고 염불을 하였다. 며느리가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이렇게 해서 점례의 혼령은 천도됐고 며느리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최근 승가사를 찾아 점례처녀 이야기를 신도들에게 물어보니 나이 드신 노 보살님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전 주지였던 상륜스님이 들려준 이야기인데 이제 입적하고 계시지 않으니 혹여 이 이야기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을까하고 걱정했다.

 

이야기를 전한 스님은 가고 없지만 아련한 점례의 이야기는 승가사 신도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비련의 한 여인을

추모하게 될 것이다.  

 

 * 여태동 기자 

 

 찾아가는 길 /

1)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종로 1가나 광화문, 경복궁에서 버스 ‘0212’번을 타고 구기동 이북5도청까지 들어오면 종점이 나온다. 

    그곳에서 내려 아래로 10여 미터를 내려오면 승가사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고  5분정도 올라오면 초소가 나오고

     승가사행 틀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 매일 오후 4시까지 운행한다.

  참고문헌 및 도움: <속편불교영험설화>, 승가사주지스님 및 신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