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인연

부처님의 이야기속 사람들=마하캇사파, 아누룻다, 푼니카

백련암 2011. 3. 21. 02:23

 

[붓다를 만난 사람들] 21.마하캇사파

 

철저한 두타행으로 부처님의 상수〈上首〉제자가 되다
 

아내와 승단 귀의…출가 8일만에 아라한과 증득
걸식·분소의·수하좌·진기약 등 사의〈四依〉 평생 실천

 

 

부처님은 제자 가운데 누구를 가장 신뢰하셨을까? 오랜 세월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르며 시중을 들어주었던 아난다였을까, 아니면 법의 상속자라 칭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사리풋타였을까? 혹은 자신의 핏줄을 이어받은 아들 라후라였을까?


십대제자라 꼽히는 훌륭한 제자들을 중심으로 몇몇 이름을 떠올리다 보니, 유독 마음이 가는 이름 하나가 있다. 바로 마하캇사파, 즉,

대가섭(大迦葉)이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명이자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평가되는 마하캇사파야말로 그 누구보다 부처님

으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은 제자가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부처님은 그에게 당신의 자리를 나누어 앉게 하셨으며 또한 옷을 물려주셨기 때문이다. 이런 영광을 누린 제자가 또 어디 있을까.


어릴 적 핍팔라야나 혹은 핍팔리라고도 불렸던 그는 라자가하 근처의 한 마을에 살던 대부호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타고난 성품이었는지 아니면 후천적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어릴 적부터 세간 생활에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출가를 꿈꾸었다.

결혼에도 뜻이 없어 이 핑계, 저 핑계 둘러대며 미루다가 결국 부모님의 뜻을 어기지 못하고 웨살리 교외에 살던 밧다 카필라니라는

절세의 미인과 혼인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참으로 기이하게도 그녀 역시 출가에 뜻을 두고 있던 여인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 후에도 각자 따로 침대를 쓰며 12년 동안이나 서로 접촉하는 일 없이 살았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자, 두 사람은 상의하여 함께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출가를 감행한다. 물론 각자 향한 길은 달랐다.


핍팔라야나와 부처님과의 만남은 곧 이루어졌다. 수염과 머리카락을 자르고 가사를 걸친 채 이곳저곳을 편력하던 핍팔라야나는 라자가하와 나란다 마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바후풋타 사당에 앉아 있는 한 명의 수행자를 보았다. 바로 부처님이었다. 그는 부처님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 분이야말로 내가 의지해야 할 스승이구나.”
부처님께 예를 갖춘 후 말씀드렸다.
“존귀한 분이시여, 존자야말로 제 스승이십니다. 저는 당신의 제자입니다.”


부처님은 이미 그가 올 것을 알고 있었던 듯 따뜻하게 맞이하여 가르침을 들려주셨다. 성도 3년째 되는 해의 일이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은 핍팔라야나는 출가 8일째 되는 날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했고, 수행자들은 이미 출가하고 있던 캇사파 3형제와 구별하여 그를 마하캇사파라고 불렀다.


부처님이 자신의 자리 나누기도


마하캇사파는 그 누구보다 청렴한 인격의 소유자였는데 부처님은 이를 꿰뚫어 보고 계셨다. 어느 날, 부처님이 탁발을 마치고 정사로

돌아가는 도중에 한 나무 아래 앉아 쉬려고 하시자, 마하캇사파는 자신이 입고 있던 대의(大衣)를 벗어 네 겹으로 접은 후 부처님이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대의란 불교수행자가 소지해야 할 삼의 가운데 하나로 설법이나 탁발 등을 할 때 겉에 입는 가장 큰 가사이다.

그가 마련해 준 자리에 앉으신 부처님은 칭찬의 마음을 곁들여 “캇사파야, 이 대의는 참으로 부드럽구나”라고 말씀하셨다.

마하캇사파는 자신이 부처님보다 좋은 옷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죄송한 마음을 느끼며 “세존이시여, 부디 제 대의를 받아주십시오”하고 부탁드렸다.


“옷을 내게 주고 나서 넌 무엇을 입으려 하느냐?”라고 부처님이 물으시자, 그는 부처님이 입고 있는 누더기 옷을 달라고 했다.

 “캇사파야, 내 옷은 오래 입어 낡을 대로 낡았느니라.” 그러자 마하캇사파는 그 누더기야말로 이 세상 최상의 것이라 말하며 교환할 것을 간곡히 청했다. 이후 마하캇사파는 부처님의 누더기 옷을 항상 걸치고 다녔으며 이를 계기로 의식주에 대한 탐욕을 완전히 떨쳐버렸다.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수행자들은 그를 비웃었다. “불결하기 짝이 없는 너덜너덜한 누더기 옷을 걸친 채 부처님을 따라 다니는 저 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아직 마하캇사파에 대해 잘 모르던 수행자들의 눈에 그의 모습은 더럽고 불쾌할 뿐이었다.


부처님이 코살라국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초라한 그의 행색을 본 다른 수행자들이 또 다시 수군거리며 조롱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설법을 중단하시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마하캇사파를 부른 후 당신의 자리 반을 내어 주시며 앉을 것을 권하셨다.

이 모습을 지켜본 수행자들은 마치 온 몸의 털이 거꾸로 솟구치는 듯한 공포를 느꼈고, 부처님은 캇사파야말로 부처님과 같은 경지에

도달한 성자라고 설하시며 수행자들을 교화시켰다고 한다. 이렇듯 마하캇사파에 대한 부처님의 신뢰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왜 그를 이렇듯 신뢰하신 것일까. 그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그의 고결한 인격과 행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교수행자들은 원래 유행생활을 기본으로 했으며, 의식주도 유행생활에 걸 맞는 사의(四依)가 권장되었다.

사의란 걸식(乞食), 분소의(糞掃衣), 수하좌(樹下坐), 진기약(陳棄藥)을 말한다. 걸식이란 탁발로 얻은 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것,

분소의란 쓰레기장이나 무덤가에 버려진 헌 옷감 등을 주워 덧붙여 만든 옷을 입는 것, 수하좌란 나무 밑이나 수풀 등 지붕이 없는 야외에서 자는 것, 진기약이란 소의 오줌을 발효시켜 만든 것을 약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 사의는 부처님도 실천하신 것으로 가능하다면 모든 수행자들이 실천해야 할 원칙이었다. 하지만 중도를 지향했던 부처님은 이 사의만을 고집하지는 않으셨다. 사의를 기본으로 하지만 만약 신도들의 보시가 있다면 그것이 너무 사치스럽지 않은 한 청식도 거사의도 또한 정사도 받아들여도 좋다고 하셨다.


이는 고행적인 내용의 사의에 근거한 의식주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집착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또한 의식주 역시 수행을 위한 도구이므로 수행에 최상의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신도들의 보시를 통해 안락함을 맛본 대부분의 수행자들은 점차 사의의 생활로부터 멀어져갔다. 사의를 실천하는 수행자들을 존경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자신이 그런 고달픈 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어떤 수행자는 아예 사의를 실천하는 수행자들을 경시하며 그 지저분한 모습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제1결집 단행…교단 분열 막아


마하캇사파는 이와 같은 승가의 변화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는 고행에 가까운 두타행을 철저하게 실천했다.

두타행은 의식주 전반에 걸쳐 탐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심신을 단련하여 모든 번뇌를 제거하는 수행으로 만족이나 욕망의 제어와 같은 덕을 키워준다는 점에서 중요시되었다. 마하캇사파는 그 누구도 탐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너덜너덜한 헝겊조각을 가져다 기워 입었으며, 음식은 오전 중에 한 번 그것도 항상 일정한 양 만을 탁발해서 먹었다. 그리고 항상 숲 속이나 야외, 무덤가 등에 거주했다.

나이 들어서도 너무나도 가혹한 생활을 계속하는 마하캇사파를 염려하여 한번은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캇사파야, 너도 많이 늙었구나. 언제까지나 힘든 두타행을 계속할 필요는 없다. 누더기 옷도 숲에서 거주하는 것도 이제 그만두어도

좋지 않겠느냐.”
그러자 마하캇사파는 대답했다.
“저는 두타행을 실천하는 삶 그 자체가 즐겁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의 모습이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격려가 될까 싶습니다.”


그에게 있어 두타행은 힘든 수행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자체가 즐거운 경지, 이미 그는 그런 경지에 있었다. 이런 그를 어찌 부처님이 신뢰하지 않을 수 있을까. 또 구성원들이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 때 나는 침상에서 내려와 시내로 탁발을 나갔다. 밥을 먹고 있는 한 문둥병자에게 다가가 그의 곁에 가만히 섰다. 그는 문드러진 손으로 밥 한 덩어리를 집어 나에게 주었다. 발우 안에 밥을 담는 순간 그의 문드러진 손가락이 툭하고 그 안에 떨어졌다. 담 벽 아래에서 나는 그가 준 밥을 먹었다. 그것을 먹고 있는 동안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내게는 혐오스러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테라가타’라는 초기경전에 마하캇사파의 말로 전해지는 시구이다. 좋고 나쁨, 더럽고 깨끗함, 추하고 아름다움, 이 모든 분별을 떠난

그의 경지가 느껴진다.


마하캇사파는 특히 부처님의 만년에 큰 활동을 하게 된다. 사리풋타도 목갈라나도 일찍이 모두 입멸해 버리자, 승가는 아난다와 마하캇사파 두 사람 체제로 들어갔던 것 같다. 아난다는 포근하고 상냥한 성품으로 모든 이들로부터 사랑받았지만 마음이 너무 유약한 탓에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편 마하캇사파는 지나치게 엄격한 성격 때문에 인기는 없었지만, 수십 년을 통해 보여준 청렴하고도 고고한 그의 인격은 위기 상황에서 승가를 집결시키는 위대한 힘으로 빛을 발하게 된다.

부처님의 열반 후 500명의 아라한을 소집하여 라자가하의 칠엽굴에서 제1결집을 실행함으로써 교단의 동요와 분열을 막았던 것이다.

 

말수도 적고 거의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으로 다른 수행자들로부터 놀림도 당하고 멸시도 당했던 그이지만, 일찍이 그의 강한 의지와

우직함을 꿰뚫어 보셨던 부처님은 그에게 자신의 분소의를 물려주고 자리를 나누어 앉게 함으로써 승가에서의 그의 위치를 확고하게

해 주셨다. 부처님의 열반 후, 그 유해를 넣은 관이 마하캇사파가 도착할 때까지 아무리 애써도 불이 붙지 않아 다비를 행할 수 없었다는 전승은 부처님의 마음 저 깊은 곳에 마하캇사파라는 제자가 얼마나 크게 존재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붓다를 만난 사람들] 22.아누룻다

 

용맹정진으로 지혜의 눈을 얻은 천안제일〈天眼第一〉

 

석가족 왕족으로 태어나 데와닷타 등과 출가
50여년간 앉지도 눕지도 않고 수행에만 전념

 

 

부처님의 명성이 고향 카필라왓투까지 전해지자, 부처님과 같은 종족인 석가족 젊은이들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우리 종족으로부터 부처님이 나타나셨다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 무렵, 부처님의 사촌 동생인 마하나마·아누룻다 형제도 이 소식을 전해 들으며 출가의 뜻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처님이 석가족의 영역 근처에 있던 아누피야라는 마을에 머물고 계신다는 소식을 접한 두 사람은 흥분하여 진지하게 의논했다.


“석가족으로부터 그렇게 훌륭한 분이 나오셨는데 우리 가문에서도 누군가 출가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하지 않는다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네.”  하지만 둘 다 출가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 한 명은 대를 이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의논 끝에 결국 아누룻다가 출가하고

마하나마는 집에 남기로 했다.


아누룻다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고자 서둘러 어머니를 찾아가 출가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죽어도 사랑하는 아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어머니의 간곡한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누룻다 역시 단념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 간에 언쟁이 되풀이되던 어느 날, 아누룻다의 어머니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만약 밧디야가 출가한다면,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석가족의 명문 귀족 출신이었던 밧디야는 아누룻다의 친구이자 이미 석가족의 왕이라 불리며 정치적 입지를 굳힌 자였다. 이런 밧디야가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의 길을 선택할 리 없다고 판단한 어머니의 묘안이었다. 아누룻다는 한 가닥 희망을 품고 그 길로 밧디야에게 달려가 함께 출가하자고 제안했다. 평소 부처님의 인격에 호의를 갖고 있던 밧디야는 출가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았지만 이미 높은 지위에 있던 터라 신변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7년만 기다려 주게. 그러면 내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함께 출가하겠네.”
“7년씩이나 어찌 기다리라는 말인가.”


이렇게 해서 7년이 6년, 5년, 4년이 되다 결국 밧디야의 입에서 일주일만 기다려 달라는 말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아누룻다의 열렬한 의지가 밧디야를 움직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둘은 출가하게 되었다. 이때 소식을 들은 아난다와 데와닷타, 바구, 캄빌라 그리고 이발사였던 우파리가 합류하면서, 결국 7명의 석가족 청년이 출가하게 된다. 아누룻다의 열의가 석가족 명문가의 청년들, 그리고 이발사 우파리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준 순간이었다.


 

평생 잠들지 않을 것 부처님께 맹세

이렇듯 강한 열망을 가지고 출가한 아누룻다였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항상 채우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마련. 태어나서부터 줄곧

안락한 생활을 해왔던 그에게 있어 수행생활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사왓티의 기원정사에서 설법을 하실 때의 일이었다. 많은 제자들이 부처님의 설법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부처님의 말씀을 마치 자장가 삼아 고개를 꾸벅꾸벅하며 앉아 조는 한 수행승이 있었다. 바로 아누룻다였다. 코까지 살짝 골았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평소에도 아누룻다는 정신이 깨어있지 못한 게으른 수행승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러자 부처님은 “법을 들으면서 기분 좋게 잘 수 있는 것, 이 또한 좋은 일 아니겠느냐”며 아누룻다를 감싸주셨다.

 

법회가 끝나자 부처님은 따로 아누룻다를 부르셨다. 그리고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냉기가 흐르는 목소리로 엄하게 꾸짖으셨다.

“아누룻다야, 너는 깨달음을 구하여 출가한 것이 아니더냐. 출가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설법을 들으며 꾸벅꾸벅 존다는 말이냐.

정신이 해이해졌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구나. 네가 출가할 때 지녔던 강한 의지를 한번 떠올려 보거라.”


부처님의 호된 꾸중에 아누룻다는 너무나도 부끄럽고 죄송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부처님, 죄송합니다.” 몸을 가다듬고 합장한 후 조용히 꿇어앉은 그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 오늘 이후로 저는 설사 몸이 문드러진다 할지라도, 또한 제 손발이 녹아내린다 할지라도 맹세코 부처님 앞에서 앉아 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후, 아누룻다와 수마(睡魔)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는 눕지도 자지도 않았다. 눕는다는 것은 쉽게 수면으로 빠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므로 거부했다.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또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제어하며 고행의 시간을 보냈다. 아예 수면을 거부하는 아누룻다의 눈은 눈병을 앓았고 부어오르다 못해 드디어 문드러져 갔다. 안타까운 마음에 부처님은 수면을

취하도록 권하셨다.


“아누룻다야, 고행은 좋지 않다. 게으름도 피해야 하지만, 고행 또한 피해야 하느니라. 내가 항상 말하는 중도야말로 최상이니라.”


하지만 아누룻다는 듣지 않았다. 이미 부처님 앞에서 세운 원을 번복하고 싶지 않았다. 부처님은 명의 지와카에게 아누룻다의 눈 치료를 의뢰했다. 지와카는 수면을 취하도록 그를 설득했지만, “이제 저는 수면을 취하는 것이 오히려 고통스럽습니다”라며 끝내 거부했다.

아무리 명의라 해도 수면을 거부하는 아누룻다를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아누룻다는 실명하게 되었다. 하지만 육체의 눈을 잃어버린 대신, 그는 법의 눈을 얻게 되었다. 천안제일(天眼第一)이라는 평가가 걸 맞는 혜안의 소유자가 된 것이었다.


한편, 실명한 채 수행 정진하는 아누룻다를 바라보는 부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용맹 정진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기쁘신 한편, 측은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부처님과 아누룻다 사이에는 너무나도 따뜻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수행승들은 스스로 삼의를 기워 입어야 하는데, 실명한 아누룻다에게 있어 이 일은 가장 힘든 일 가운데 하나였다. 꿰매는 것은 손의 감각으로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바늘구멍에 실을 넣는 것은 쉽지 않았다. 둔한 동작으로 몇 번이나 바늘구멍을 찾아 실을 넣으려 애쓰던 아누룻다는 결국 포기한 채,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다.


“혹시 옆에 누구 있습니까. 있으면 저를 위해 바늘에 실 좀 끼워 주세요. 큰 공덕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누군가 다가오더니 바늘과 실을 받아 들며 “그럼 내가 그 공덕을 쌓을까요”라고 했다. 그 목소리는 틀림없는 부처님의 목소리였다. 아누룻다는 깜짝 놀랐다.
“부처님 아니십니까. 죄송합니다. 저는 누군가 다른 이가 곁에 있는 줄 알고….”
“아누룻다야, 나라고 공덕을 쌓고 싶지 않겠느냐. 나 역시 그 누구보다 공덕을 쌓아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 가운데 한명이니라.

이리 주거라.”


부처님의 말씀에 당황한 아누룻다는 말했다.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이미 생사의 대해를 건너 깨달음의 저 언덕에 도달하신 분입니다. 이미 충분히 공덕을 쌓아 행복하신 분인데

새삼스럽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부처님은 따뜻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천녀 유혹마저 무상의 법으로 제압

“아누룻다야, 세간에서 공덕을 쌓은 자는 많지만 나를 능가할 자는 없다. 나는 보시나 설법 등에서 부족한 바가 없다. 하지만 여래는

여섯 가지 법에 있어 질리는 법이 없나니, 즉, 보시와 교계, 인욕, 설법, 중생 애호, 그리고 무상정등각의 추구이니라.

내가 쌓는 공덕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모든 중생들을 위한 것이니라.“


수행 정진하다 실명한 제자, 그리고 그 제자를 위해 바늘구멍에 실을 넣어주시며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제자에게 자신 역시 중생들의 행복을 위해 공덕을 쌓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부처님. 이미 육신의 시력은 잃어 눈앞에 계신 부처님을 볼 수 없는 아누룻다였지만,

따뜻한 부처님의 목소리는 아마도 아누룻다의 온 몸에 잔잔하게 퍼지며 스며들었을 것이다.


출가 후 익숙지 않은 생활에 지쳐 수마에게 굴복 당했지만, 출가 당시 그가 보여주었던 강한 의지, 그리고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후 50여년의 세월 동안 항상 앉아 있었으며 눕지도 자지도 않았다는 사실로부터도 실은 그가 매우 강한 의지의 소유자였음을

엿볼 수 있다.


불전에는 그가 훌륭한 외모 탓에 많은 여인들의 유혹에 시달렸지만, 결코 동요하지 않고 불법에 대한 깊은 이해와 믿음으로 수행을 지속해간 사실이 전해진다. 부처님을 비롯하여 석가족은 모두 뛰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어 부처님의 이복형제인 난다도 시자였던 아난다도 여성들로부터 많은 구애를 받았다. 아누룻다도 타고난 미남이었는데 수행을 계속하면서 안색이 이전보다 더 좋아져 천녀까지 그의 환심을 사고자 찾아와 춤과 노래로 그를 현혹시키려 했다. 전생에 그의 처였으나 지금은 33천의 신들 가운데 한명이 된 잘리니라는 여신은 아누룻다존자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속삭였다.


“그 옛날 당신이 살고 있던 그 곳, 모든 욕락을 갖춘 33천에 다시 태어나겠다는 원을 일으키십시오. 그곳에서 당신은 천녀들에게 둘러싸여 공경 받으며 빛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누룻다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대답했다.

“자신의 몸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천녀들이야말로 재앙 덩어리이다. 천녀들을 원하는 사람들 역시 재앙 덩어리이다.”

이에 질세라 잘리니는 대꾸했다. “33천에 사는 사람들이나 신들의 주거인 난다나원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즐거움에 대해 모릅니다.”


“이 어리석은 것아, 너는 부처님의 말씀이 어떤 것인지 모를 것이다. 만들어진 것은 모두 무상하다. 태어나서 다시 멸해가는 성질의 것이다. 그것들은 생기해서는 멸한다. 그것이 가라앉은 평안함이야말로 안락이니라.”

 

어쩌면 아누룻다에게 있어 실명은 혜안을 얻기 위한 그만의 길이었을지 모른다. 그 누구보다 정열적이고 강한 의지의 소유자였기에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 역시 그 누구보다 치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붓다를 만난 사람들] 23. 푼니카

 
천한 하녀 신분으로 바라문 감화시킨 지혜의 화신
 

수닷타 장자 집에서 일하던 노예 출신
어깨너머 듣게 된 법문에 진리 깨달아

 

 

부처님 당시 인도 종교계는 바라문과 사문의 대립 구도였다. 바라문이란 베다를 중심으로 제식위주의 종교 활동을 하고 있던 기존세력이었으며, 사문이란 반(反)바라문이라는 공통된 입장 하에 유물론, 회의론, 숙명론, 요소설 등 제각기 다양한 설을 주장하는 자유사상가들이었다. 부처님 역시 사문 종교가 가운데 한 명이었다. 사람들은 바라문교의 전통적인 가르침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수많은 주장을 앞에 두고 어떤 것이 진정 자신에게 평안을 안겨줄 수 있는 가르침인가 고민하며 방황했다.


부처님을 만난 사람 가운데도 이교도였다가 불교로 개종한 인물들이 많다. 10대 제자로 꼽히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 그리고 캇사파 삼형제는 자신들의 제자까지 모두 이끌고 개종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육사외도 가운데 한 명인 산자야 벨랏티풋타의 제자였다가 불교로 개종했으며, 캇사파 삼형제는 불을 섬기다가 부처님과의 만남을 통해 개종한 인물들이다.


특히 후자는 바라문 출신으로 불에 의한 정화의례를 중시하던 자들이었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한 후 모든 제사 도구를 강에 떠내려 보내고 1000여명에 이르는 제자와 함께 불교에 귀의했다. 캇사파 삼형제의 귀의 후 부처님은 이들은 데리고 마가다국의 라자가하로 들어가 사람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공언하게 했다고 한다.
“이 분이야말로 저의 스승입니다. 저는 이 분의 제자입니다.”


당시 마가다국은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많은 자유사상가들이 대국의 비호를 받으며 모여 생활하고 있었다.

당시 이름을 날리며 활동하던 명망 높은 캇사파 삼형제의 이 고백이 사람들에게 주었을 영향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편, 쿠루국에서 한 바라문의 딸로 태어난 난둣타라(Nanduttarā)는 바라문교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따라 목욕, 제화 등을 중시하며 정화의 날들을 보냈다. 그러다 출가하게 되었는데 처음 입문한 것은 자이나교였다. 과거의 악업을 제거하고 새로운 업을 쌓지 않도록 계율을 지키고 혹독한 고행을 실천했다. 그러나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는 없었다. 다른 자유사상가들의 가르침에 따라 쾌락을 즐기기도 해 보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당시 유명한 종교가들의 가르침을 다양하게 배워온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자만하며

목갈라나에게 신통력 겨루기를 제안한다. 하지만 결과는 그녀의 패배. 이를 계기로 그녀는 부처님을 만나 제자가 된다.

이들 일화로부터 당시의 격동적인 상황과 그 속에서 출가수행자들이 겪었을 갈등 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99개 병 물로 채우고 출가 허락받아


차라(Cālā)라는 비구니의 일화에서도 당시 수행승들이 많은 이설을 앞에 두고 얼마나 마음의 갈등을 느꼈는지 엿볼 수 있다.

마가다국 나라카마을에 살던 바라문 여성 루파사리는 1남3녀의 자식을 키우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위인 아들이 바로 훗날 지혜제일이라 불리는 사리풋타였다. 평소 오빠를 따르며 존경하던 여동생들은 오빠가 따를 정도의 가르침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하며 울며 만류하는 많은 친족들을 뿌리치고 출가했다. 그 가운데 차라는 가장 큰 언니였는데, 어느 날 탁발을 마치고 한 그루 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노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 삭발했습니까? 당신은 여성출가자 같은데, 어찌 이교를 선택하지 않고 어리석게도 이런 행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물론 차라의 내면으로부터 울려나온 목소리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새로운 사상과 주장을 접하며 자신이 선택한 이 길이 진정 올바른 길인가, 혹시 더 훌륭한 다른 길이 있는 것은 아닌가, 오고 가며 접한 이교의 학설이 문득문득 뇌리를 스치며 차라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차라는 대답한다.


“다른 종교가들은 잘못된 견해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보지도 못하고 신봉하지도 못 하고 있습니다. 석가족으로부터 필적할 자 없는 부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 분은 저에게 모든 잘못된 견해를 뛰어넘는 진리의 가르침을 설해주셨습니다. 그 분의 말씀을 들은 후 저는 그 가르침을 즐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3종의 명지(明知)를 얻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성취되었습니다.”


3종의 명지란 자기 자신 혹은 타자가 과거, 현재, 미래에 생을 반복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그 반복으로부터 빠져나와 재생하지 않는 자각을 얻는 것을 말한다. 오로지 부처님이 설하신 가르침 속에서만 평안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재확인하는 차라였다.


이와 같이 다양한 사상 속에서 방황하다 불법과의 만남을 통해 길을 찾아갔던 수행승들과는 달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한 이후 그 어떤 동요도 없이 다른 종교들이 갖는 교리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며 이교도들을 불법으로 인도한 여인이 있으니 바로 푼니카이다.

원래 푼니카는 수닷타 장자의 집에서 일하던 노예였다. 수닷타란 코살라국의 수도 사왓티에 기원정사를 건립하여 부처님과 그 제자들에게 보시했던 그 유명한 장자이다. 이 수닷타의 집에서 일하던 하녀가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바로 푼니카였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이름도 직업도 아무 것도 알려진 바가 없다. 푼니카는 자신의 어머니가 해 왔던 대로 날마다 강에 가서 물 길어오는 일을 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부처님은 수닷타 장자가 세운 기원정사에 머무르며 법을 설하고 계셨다. 푼니카는 오가며 설법을 듣게 되었고, 영특하고 순수한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진리에 눈떴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악업으로 물들지 않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이교도 모순 지적하며 불법으로 인도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날 아침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푼니카는 물을 긷기 위해 강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그때 차가운 강물 속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한 바라문의 모습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노예 신분이었던 그녀에게 있어 바라문은 하늘과도 같은 존재. 하지만 아무리 성스러운 바라문일지라도 얼음과도 같은 강물의 차가움이 고통스럽지 않을 리는 없었다.

도대체 저 바라문은 이 추운 겨울 아침에 왜 강물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일까? 그녀는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제 일은 물을 긷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추울 때라도 항상 물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주인 마나님이 몽둥이를 들지도 혹은 욕을 퍼부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그런데 바라문께서는 누가 두려워서 차가운 강물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까?

손발을 떨고 있는 것을 보니 추위를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물속에서 그러고 계신지요?”
그러자 바라문은 대답했다.


“늙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악한 행위를 한 자는 목욕을 함으로써 악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법이니라.”
푼니카는 순간 당황했다. 지금껏 자신은 주인 마나님의 꾸중과 체벌이 두려워서 혹독한 추위를 참으며 물을 긷기 위해 강으로 들어갔건만, 이 바라문은 자신이 지은 악업의 과보가 두려워 그 악업을 씻어내기 위해 강에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푼니카는 되물었다.


“그렇다면 개구리나 거북이, 뱀, 악어, 그 외 물 속에 사는 다른 모든 생물들은 당연히 천계에 갈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도축가, 어부, 사냥꾼, 도적, 사형집행인 등 악업을 지은 그 어떤 사람도 강물에서 목욕만 한다면 악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군요. 만약 이 물살이 당신이 이전에 저지른 악업을 씻어낼 수 있다면 이들은 선업 또한 씻어낼 수 있겠지요. 그리고 당신은 선과 악 이 양자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겠지요.”


차가운 강물 속에서 몸을 바들바들 떨며 목욕을 하고 있던 바라문은 푼니카의 말에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바라문교에서 목욕은 일종의 정화 의례로써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자신이 진리라 여기며 날마다 실천하고 있던 행동이 지니는 모순을 한낮 노예에 불과한 여인으로부터 지적당한 바라문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너무나도 적확한 그녀의 지적. 결국 바라문은 자신의 잘못된 믿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길을 걷고 있던 나를 당신은 존중할 만한 길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성스러운 여인이여, 이 목욕옷을 당신에게 드리지요.”


바라문은 이제 목욕을 그만 두겠다는 뜻을 보이며 옷을 건넸다. 하지만 푼니카는 사양하며 다시 바라문에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진정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괴로움을 혐오한다면, 다른 사람이 알든 모르든 절대 악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악행을 앞으로 혹은 지금이라도 한다면 당신은 영원히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계율을 받아 지키십시오. 그렇다면 당신에게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이를 들은 바라문은 삼보에의 귀의를 맹세했다.


“일찍이 저는 범천의 친족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참된 바라문이며 세 가지 명지를 갖춘 참된 목욕자이며, 학식 풍부한 참된 베다학자

입니다.”

 

정(淨)과 부정(不淨)의 관념을 중시하는 바라문교에서는 부정을 정화하는 행위로 목욕을 중시하지만, 진정한 청정의 세계는 목욕이

아닌 올바른 심신의 행이 일구어낼 수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 후 푼니카가 99개의 병을 물로 가득 채웠을 때, 수닷타 장자는 그녀의 출가를 허락했고 머지않아 그녀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사성계급 제도에서 가장 하위인 수드라, 즉 노예 계급의 그녀였지만,

강물을 길어 물병을 채우듯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지혜롭게 내면을 채워간 푼니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