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구정선사(九鼎禪師) 이야기 : 솥을 아홉 번 바꿔 걸다

백련암 2012. 1. 17. 21:57

 

 

 

동대관세음보살

 

높은 축대를 쌓고 지은 동대암(東臺庵)이다. 이 암자를 관음암(觀音庵)이라고 칭하게 된 것은 오대산의 동대가 1만의 관세음보살 진신(眞身)이 언제나 머물러 계신 곳이라는 믿음과 함께, 보천태자(寶川太子)의 유언에 따라 관음방(觀音房)을 짓고 창건하였기 때문이다.
태자는 임종 직전 당부하였다.

“이 오대산은 백두산의 큰 줄기이며, 각 대(臺)는 진신이 언제나 머물러 계신 곳이다. ……

동대에는 마땅히 관음방을 두어 원상관음(圓像觀音)과 함께 푸른 바탕에 1만 관음상을 그려 봉안하며, 복전(福田)5원(五員, 5명)을 두어 낮에는 8권의 금광명경(金光明經)과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 천수주를 독송하게 하고 밤에는 관음예참(觀音禮懺)을 염하게 하라.

그리고 그 결사의 이름을 원통사(圓通社)라 하라.”

 

구정선사(九鼎禪師) 이야기 : 솥을 아홉 번 바꿔 걸다.

 

금산사 대장전 벽화중에서...

 

동대 관음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조그만 토굴이 하나 있다.

이 곳이 바로 유명한 구정선사가 출가하여 공부하던 곳이다.

구정선사(九鼎禪師)는 무엇보다도 출가 수행자에게 하심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일화로 특히 유명한 분이다.


신라말 홀어머니를 모시고 비단을 팔아 하루 하루를 근근히 살아가던 한 청년이 하루는 강원도 대관령을 넘어가다가 고갯마루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비단장수 청년은 누더기 옷을 입은 노스님 한 분이 오랜 시간을 꼼짝도 않은 채 홀로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그 스님께 다가가서 물어보았습니다.
 
"대사님께서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던 노스님이 대답하였습니다.


 "어떤 중생들에게 공양을 시키고 있는 중일세,"
 

이 말을 들은 청년을 더욱 궁금해져서 다시 물었습니다.
 

"어떤 중생들에게 무슨 공양을 하고 계시는지요?"


 

"내가 움직이면 옷 속에 있는 이가 피를 빨아먹기 불편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잠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라네."


 

이 말에 큰 감동을 받은 청년은 갑자기 세속의 삶이 부질없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노스님의 제자가 되어 수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청년은 굳은 결심을 하고는 비단 보퉁이를 팽개쳐 버리고 산길을 오르는 노스님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오대산 동대(東臺) 관음암(觀音庵)까지 노스님을 따라온 청년이 스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비단을 팔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스님의 인자하신 용모와 거동에 감동 받고,

저도 수도하고 싶은 마음이 문득 솟아올라 이렇게 스님의 뒤를 쫓아왔습니다. 부디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네가 중이 되겠다고? 그렇다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다 하겠느냐?"
 

"예! 스님께서 시키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이렇게 청년의 다짐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노스님은 겨우 출가할 것만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나무하고 밥하며 스님 시봉을 하면서 3년이 흘렀다.

그 동안 기다려도 법문 한 구절 가르쳐 주지 않자 어느 날 노승에게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고 물었다.

" 즉심이 불이니라<卽心是佛>" 했다. 그러나 글자를 모르던 청년은 이것을 잘못 알아들어 '짚신이 부처' 라고 생각했다.

"짚신이 부처라고?"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했지만 스승을 지극히 존경하고 있었기에 그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리고는 자기짚신을 머리에 이고 다니며 늘 생각했다.

'어째서 스승님은 짚신이 부처라고 하셨을까?

"짚신아 어째서 네가 부처냐? 짚신아 어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질문만 반복하던 그는 짚신의 끈이 뚝 끊어지는 순간 마침내 크게 깨달았다.

깨닫고 보니 짚신이 부처가 아니라 "즉심시불" 이었던 것이었다.

 

산에서 뛰어내려와 노승에게 '즉심시불' 이라고 말하자 아무 대답 없이 그 다음날 노스님은 행자에게

부엌의 커다란 가마솥을 걸으라 하였습니다. 

 

스승의 말에 엄동설한임에도 언 흙을 파 찬물에 이겨 솥을 걸었다 그러나 노승은 솥이 기울었다하여 다시 걸으라 했고

 

그렇게 하고 나자 이미 한낮이 지나 하루해가 기울어 가고 있었는데, 노스님은 부엌에 들어와 솥을 걸어 놓은 것을 보더니만

다시 이르는 것이었습니다. 
 

"솥은 잘 걸었다만 이제 이쪽에서는 필요가 없어졌으니 저쪽으로 옮겨 걸어라." 이렇게 말하고는 나가 버렸습니다. 
 

청년은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전날에 정성스럽게 걸어놓은 솥을 떼어내서 옆 아궁이로 옮기고는 잔손질까지 하여

잘 마무리하였습니다. 
 

얼마 뒤에 노스님이 다시 들어오더니 화난 목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이놈! 이것이 솥을 걸어 놓은 거냐? 한 쪽으로 틀어졌으니 다시 걸어라,"
 

그러고는 짚고 있던 석장으로 솥을 밀어 주저앉혀 놓고 나갔습니다.

청년이 보기에는 틀어진 곳이 없었지만,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묵묵하게 다시 솥을 걸었습니다. 
 

청년은 이렇게 솥을 옮겨 걸고 허물기를 아홉 번이나 반복하였는데, 이는 노스님이 그에게 인욕과 하심(下心)을

청년에게 가르쳐주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노스님은 청년의 진정한 구도심을 인정하여 제자로 받아들이니 솥을 아홉 번 고쳐 걸었다는 뜻에서

구정(九鼎)이라는 법명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무염선사라고 밝혔다고 한다. 동관음에서는 구정선사를 일명 "짚신부처"라고 부르고 있다.
 

이 청년은 그 뒤로 열심히 수행하여 뒷날 크게 명성을 떨쳤는데 그가 바로 구정선사입니다.

구정 선사의 이러한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입산 출가자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하심: 자기 자신을 낮추어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