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구지 선사 이야기

백련암 2012. 1. 18. 14:02

 

 

구례 구층암 천불전

 

금산사 구지선사 벽화이야기

 

 

구지 선사 이야기


구지(俱 )스님은 중국 무주(務州) 금화산에서 몇 십 년 동안 산을 떠나지 않고 수도에만 힘쓰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실제(實際)라고 하는 비구니가 수도 중에 있는 스님을 찾아와 삿갓을 쓴 채로 스님의 주위를 세 번 돌고 난 뒤에 말하였습니다.

"바로 말하면 삿갓을 벗으리다."

 이렇게 세 번을 거듭 묻도록 아무 대답이 없자, 비구니는 그대로 떠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구지 스님이 말하였습니다.

"해가 이미 저물었으니 하룻밤 묵고 가시오."
 

"바로 말하면 자고 가겠소."

 그래도 구지 스님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비구니는 그대로 떠났습니다.

 비구니의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한 구지 스님은 자신의 수행이 부족함을 느끼고 깊이 탄식하였습니다.
 

"나는 비록 대장부의 형체를 갖추었으나 대장부의 기개가 없구나."

 그리고는 암자를 떠나 여러 곳의 선원을 찾아다니려고 결심했는데 그 날 밤에 산신이 나타나서 말하였습니다.
 

"스님, 이 산을 떠나지 마십시오. 오래지 않아 육신보살이 와서 스님께 법을 일러줄 터이니 기다리십시오."

 산신의 말을 들은 구지 스님은 그대로 머물기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도량을 깨끗이 청소하고 마음을 깨끗이 가다듬으며 육신보살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허름한 노스님 한 분이 걸망을 메고 찾아왔습니다. 그 분은 불일천룡(佛日天龍) 선사였습니다. 
 

구지 스님은 지난밤의 일을 생각하고, 노스님을 육신 보살이라고 여겨, 극진한 마음으로 그 동안의 일들을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
 

"자, 그러면 내가 그대처럼 앉아 있을 테니, 삿갓을 쓰고 그 비구니가 한 대로 해보게."

 구지 스님이 그 비구니가 하였던 대로 삿갓을 쓰고 천룡 화상을 세 번 빙 돌고 나가려 하니 천룡 화상이 대뜸 말하였습니다.
 

"거기 좀 서라."
"제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을 이르면 서겠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머물 수 없습니다."
 

그때 천룡 화상이 손가락을 하나 번쩍 들어 보였습니다.

이것을 본 순간 구지 선사는 문득 어두웠던 마음이 밝아지면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뒤로부터 가르침을 얻으려고 구지 스님을 찾는 이가 있으면 구지 스님은 한결같이 손가락 하나만을 세울 뿐

달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먼 곳에서 구지 선사에게 어떤 사람이 법을 물으러 왔습니다.

마침 선사는 출타하고 시중드는 어린 동자만이 암자를 지키고  있을 때였습니다.
 

"오직 법을 묻기 위하여 일부러 먼길을 왔는데 스님이 안 계시니 참으로 안타깝구나."
 

"우리 스님의 법문이라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스님에게서 들으시나 저에게서 들으시나 다를 리가 없습니다.

그 동안 많이 보고들은 바가 있어 저도 스님처럼 법문을 할 수 있답니다."
 

"그럼 어디 한 번 들어보자."
 

"그러면 저에게 어떤 것이 불법의 참다운 도리인지를 물으십시오."
"어떤 것이 참다운 불법의 도리입니까?"
 

이렇듯 정중하게 법을 청하자 어린 동자는 구지 선사가 하듯 곧바로 손가락을 세워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누가 와서 법문을 물을 때마다 한결 같이 손가락을 세워 보일 뿐 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불법을 얻으러 왔던 사람은 의아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갔습니다.

가는 길에 구지선사를 만나게 되어 절에 다녀온 이야기를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절에 돌아온 선사는 동자에게 그 동안 무슨 일이 없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동자는 자랑이라도 하듯 대답하였습니다.
 

"스님께서 안 계실 때에 어떤 손님이 법문을 듣고자 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안 계신다고 어찌나 걱정을 하던지, 제가 보기에도 안돼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제가 대신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잘했구나. 그래 어떻게 해주었느냐?
"스님께서 늘 하시는 대로 손가락을 세워 보였을 뿐입니다."


"아까 한 법문을 나에게도 한번 해다오."

"스님께서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너에게서 한번 듣고 싶구나. 어떠한 것이 불법의 참다운 뜻이냐?"

 그러자 동자는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습니다.

 그 순간 구지 선사는 동자의 손가락을 거머쥐고 칼로 잘라 버렸습니다.

 동자는 울며 달아났는데 그러한 동자를 보고 구지 선사는 말하였습니다.

 "동자야, 어떤 것이 불법의 참다운 뜻이냐?"
 

이 소리에 동자는 자신도 모르게 하던 버릇대로 손가락 하나를 번쩍 들려 했으나 이미 손가락은 없었습니다.

그 순간 동자의 마음이 활연히 열리었습니다.
 

구지 선사는 입적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천룡의 한 손가락 선법(禪法)을 받고서 일생 동안 썼으나 다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