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태전 선사와 홍련

백련암 2012. 1. 18. 14:36

 

구례 사성암

 

 

태전대사와 한퇴지의 벽화이야기

 

태전 선사와 홍련


당나라 창려(昌黎)땅에 기생이 절에 다니며, 부처님 전에 발원하기를,

"저는 금생에 여자의 몸을 받아 여러 남자의 희롱함을 입은 처지오나 내세에는 반드시 남자의 몸을 받도록 보살펴 주시옵소서"

 하고 빌었습니다.

하루는 불단(佛壇)에 나아가 향(香)과 초를 올리려는데, 책이 한 권 놓여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책이름은 '전여위남(轉女爲男)'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님께 이 책을 달라고 하면 주지 않을까 염려해서 가만히 품안에 숨겼습니다.

"옳구나, 부처님께서 주신 게지"하고 여인은 몇 차례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 집에 돌아와 그 책을 품안에서 꺼내 놓고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매일 책을 읽고 또 읽기를 10년이 지났습니다. 
 

이 책을 읽기만 하면 곧 남자가 되는 줄 알고 여인은 사람들에게 "부처님도 아무 영험 없고 아주 사람 속이는 거라고요,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요"하고 비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인이 불법을 비방하다가 죽어서 다음 생에 한씨(韓氏) 소생의 아들이 되니 그가 바로 한유(韓愈)입니다. 
 

후세에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서 강건한 필력으로 이름난 韓愈는 당나라 중엽에 남양의 등주(登州)땅에 태어나,

자사 벼슬(지방장관)에 올랐으며, 호(號)를 퇴지(退之)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불교를 심하게 배척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법을 비방하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습니다.

한 번은  그가 한림학사라는 벼슬에 있을 대에 '불골표(佛骨表)'라는, 불교의 사리신앙을 비방하는 상소문을 헌종에게 올렸다가

그 일로 헌종의 노여움을 사 장안에서 팔천 리나 떨어진 변방인 조주(潮州)의 자사로 좌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무렵 조주 땅에는 태전 선사(太顚禪師)라는 고승이 오랜 세월을 축령봉에서 수도에만 전념하고 있었는데,

사람들로부터 '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 받았습니다. 
 

한퇴지는 여기에서도 불교를 또 깎아 내리고자, 미인계를 써서 태전 선사를 시험하는 덫을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조주에서 으뜸가는 미인으로 이름난 기생 홍련을 불러들여 말했습니다.
 

"만약 백일 안으로 태전 선사를 파계시키면 후한 상을 내리겠으나, 그러지 못하면 큰 벌을 내릴 것이다."
이 말을 들은 홍련은 자기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이 있었으므로 쾌히 승낙하였습니다.

홍련이 험한 산길을 올라 스님의 암자에 도착하니 이미 해질 무렵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스님의 훌륭한 덕을 흠모하여 왔습니다.

이제 스님의 시중을 들며 백일 기도를 올리고자하여 먼길을 왔습니다.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
 

태전 선사의 승낙을 얻은 뒤에 암자에 머물게 된 홍련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태전 선사의 시중을 들며 기회를 엿보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선사는 좌선에만 전념한 채

홍련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자 점차로 마음이 조급해진 홍련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사를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선사는 추호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진에만 열중하였습니다.

날짜는 하루하루 흘러가 마침내 약속한 백일을 하루 앞두게 되었습니다. 
 

어느 사이에 홍련은 태전 선사의 고매한 인품에 감동하여, 그동안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얼마나 경망스러운 짓이었든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사 한퇴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 자신에게 미칠 크나큰 화가 두려웠습니다.
마침내 백일 째 되는 날 아침에 홍련은 태전 선사 앞에 나아가 눈물을 흘리며 큰절을 올렸습니다.

 

"스님! 어리석은 소녀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는 사실 조주자사 한퇴지의 명을 받고, 스님을 파계시키기 위하여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야 그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오늘이 바로 한퇴지 대감과 약속한, 백 일째 되는 날입니다. 소녀가 이대로 내려가면 큰 벌을 받게 됩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태전 선사는 섧게 울고 있는 홍련의 모습을 조용한 미소로 지켜보았습니다.
 

"그대는 너무 염려하지 말고 이리 가까이 오시오. 한 대감에게 벌을 받지 않도록 하여 드리겠습니다."
 

태전 선사는 가까이 다가온 홍련의 치맛자락을 펼치고, 붓에 먹을 묻혀 단숨에 써내려 갔습니다. 
 

  십년불하축령봉(十年不下祝靈峰)  축령봉 내려가지 않기를 십년          
  관색관공즉색공(觀色觀空卽色空)  색을 관하는 관이 공하니 색이 곧 공이니  
  여하일적조계수(如何一滴曹溪水)  어찌 조계의 물 한 방울을             
  긍타홍련일엽중(肯墮紅蓮一葉中)  홍련의 잎사귀에 떨어뜨리겠는가.       

 

홍련이 산을 내려가 치맛자락에 쓰인 이 시를 한퇴지에게 보여주자, 한퇴지는 홍련의 치맛자락의 게송을 읽고 탄식하며,

"어찌 인간이 이럴 수가 있는가? 하며 내가 한번 그가 정말 道人인가 만나봐야겠다"고 하였습니다. 
 

토굴에서 한퇴지와 태전 선사가 자리를 같이 하고 앉자 태전 선사가 물었습니다.
 

"불교의 어느 경전을 보았습니까?"

"별로 뚜렷하게 본 경전은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선사는 노하여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대가 불교를 비방한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누가 시켜서 하였습니까,

아니면 자신이 스스로 느껴 비방한 것입니까?

만일 누군가의 시킴을 받아서 행한 것이라면 주인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 개와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느껴 행하였다면, 이렇다 할 경전을 한 줄도 읽은 바 없이 비방한 것이니,

이는 자신을 속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고 꾸짖었습니다. 
 

퇴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뒤 선사로부터 깊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한퇴지가 묻기를 "省要處 一句<성요처일구>를 스님께서 일러주십시오" 하니,

태전선사가 良久<량구>하였는데,
 

한퇴지가 이를 알지 못하여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 대니, 
 

侍者 三平<시자삼평>이 床<상>을 세 번 쳤습니다. 
 

"무엇을 한 것이냐?"고 태전 선사가 물으니 "먼저 定<정>으로 움직여 뒤에 智<지>로 빼냅니다"라고

 삼평이 대답하자 이에 한퇴지가 대오(大悟)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한퇴지는 불교를 비방하던 그 붓으로 불법을 드날리고 삼보를 찬탄하는 문장을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


 

*한퇴지: 이름은 유(愈), 강건한 문체로 유명한 당나라의 문장가
*사리: 부처님이나 고승을 화장하였을 때에 그 몸에서 나오는 신령스러운 구슬.
*삼보: 불, 법, 승의 세 가지 귀중한 보물을 뜻하는데,

 불보는 여러 부처님네 곧 깨달음을 말하고 법보는 부처님이 말씀한 교법으로 모범이 된다는 뜻이며,

 승보는 교법대로 수행하는 이를 가리키며 곧 화합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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