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인연

포대화상(布袋和尙) 이야기, 달마대사 이야기

백련암 2012. 1. 18. 17:02

포대화상(布袋和尙) 이야기

 

 

포대화상<남한산성 장경사>

 

당말기(唐末期) 명주 봉화현(明州 奉化縣)에서 태어났으나, 씨족(氏族)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안습니다.

몸집이 뚱뚱하고 배가 늘어져서 배불뚝이였으며, 지팡이에 큰 자루를 끼어 메고 다니다가, 주는 대로 받아 넣고,

달라는 대로 꺼내 주며, 먹을 것이라면 무엇이나 주는 대로 먹기를 잘 하였습니다.
                 
잠은 아무데나 가리지 않고 누워 잤으며, 한 잠자리에서 거듭 지내는 일이 없었습니다.

길흉화복과 날씨 등을 미리 말하였는데(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본디 출가한 법명은 계차(契此)스님이지만, 큰 자루(布袋)를 메고 다녀서, 포대화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게송으로,

 一鉢千家飯   한 바리때에 천 집 밥을 빌어먹고
 孤身萬里遊   홀몸으로 만리를 노닌다
 靑日覩人少   대낮에도 보이는 사람 드물어         
 問路白雲頭   갈길 을 흰구름에게 묻는다

하고 읊었습니다.

 

번뇌의 티끌에 젖지 않고 의, 식, 주에 탐착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두타행(頭陀行)을 즐긴 포대화상은,

그가 열반한 후에 미륵보살 화현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늘날에도 그의 상(像)이 많이 그려집니다.


 

 

달마대사 이야기 = 3년 후에 다시 살아나다(蔥嶺途中手携隻履) 

 


달마대사는 위 나라 효명 황제가 그의 높은 도를 흠모하여 세 번이나 함께 있기를 청하였으나 끝내 사양하였습니다.

그리고 보내오는 예물 또한 세 차례나 사양하다가, 황제의 뜻이 간절하여 가사 두 벌과 금 발우와 비단 약간만을 받았습니다.

소림사에서 아홉 해 동안 수도하던 달마대사는 서쪽의 천축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돌아갈 때가 되었구나. 너희들은 저마다 그동안 얻은 바를 말해 보아라."
 

도부가 먼저 말씀드렸습니다.
"문자는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습니다."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구나."

 

다음에 비구니 총지가 나와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본 바로는 아난이 아촉불국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도다."


이번에는 도육이 나와서 말씀드렸습니다.

"사대(四大)는 본래 공하고 오온(五蘊)도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 제가 본 바로는 한 법도 가히 얻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달마대사는 자신의 뼈를 얻었다고 평하였습니다. 

 

그러고는 혜가가 나왔으나, 그는 아무 말 없이 예배하고 물러가 다시 제 자리에 섰습니다.

이를 본 달마대사가 말했습니다.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

 

부처님께서 정법안장을 가섭존자에게 처음 전하신 뒤로 지금까지 이어져 나에게 이르렀다.

내 이제 이를 너에게 전하노니, 그대로 잘 지켜라.

그리고 가사와 발우를 전하여 법의 신표로 삼으니, 제각기 표시하는 바가 있음을 알아라."
 

혜가는 다시 한 번 자세히 설명해 주기를 달마 대사에게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안으로 법을 전하여 마음을 깨우쳤음을 증명하고, 밖으로 가사를 전하여 종지를 확정한다.

후세 사람들이 갖가지 의심을 일으켜,

'나는 인도 사람이요. 그대는 중국 사람인데 무엇으로써 법을 증득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랴' 하고 물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이 옷을 잘 간직하고 있다가 보이며, 나의 게송을 알려주어 교화하는 일에 지장이 없도록 하라.

 

이제 나의 게송을 잘 들어라."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법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하고자 함이니
한 송이 꽃이 다섯 잎 피우면
열매는 스스로 맺히리라.

 

달마대사는 혜가에게 이 말을 전하면서 능가경 네 권을 주시며,

"능가경은 곧 여래의 가르침에 드는 문이니 여러 중생을 가르쳐 깨닫게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 무렵 많은 스님 가운데 광통율사와 보리유지 삼장은 달마대사의 덕을 시기하였을 뿐 아니라 그 깊은 법을 이해하지 못하여

음식에 독약을 넣어 다섯 번이나 죽이려 하였습니다.

달마대사는 그럴 때마다 음식을 토해내어 무사하였는데, 여섯 번째에 이르자,

이미 법을 전하였으니 때가 왔다고 하며 독약이 든 음식을 알고서도 그대로 먹었습니다.

그리고 앉은 채로 입적하니, 후위 효명제 태화 19년의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달마대사의 영구를 웅이산에 장사지내고 정림사에 탑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삼 년이 지났을 때, 송운(宋雲)이라는 사람이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총령( 嶺:파미르고원)을

넘는 달마대사를 만났습니다.
 

"스님 어디로 가십니까?"
"내 고향 서역으로 돌아가는 길이오. 그리고 그대의 임금은 이미 세상을 떠났소."

 

이렇게 말한 달마 대사는 짚신 한 짝을 매단 석장을 짚고 멀어져 갔습니다.

송운이 돌아와 보니, 명제는 이미 승하하였고 효장제가 즉위하여 있었습니다.
 

송운이 달마대사를 뵈온 일을 자세히 보고하자, 황제가 이상히 여겨 묘를 파헤쳐 보라 하였는데,

뜻밖에도 그 안에는 빈 관과 짚신 한 짝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갈대 잎을 타고 강을 건너다(折蘆渡江歸小林) (달마대사 이야기)


달마대사는 본디 남인도 사람인데, 선불교(禪佛敎)를 중국에 처음으로 전파한 분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남인도 향지국의 왕으로 불법을 몹시 숭상하여 많은 중생들에게 이로움을 베풀었습니다.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달마대사는 그 중 막내아들로 '보리다라'라고 불리었습니다.

그 무렵 인도 최고의 도인이라고 칭송 받던 반야다라 존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향지국의 왕과 교분이 있어 왕래하던 중 보리다라 왕자의 총명함을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뒷날 향지국의 왕이 세상을 떠나자 모든 사람들이 통곡을 하였으나 보리다라만은 영구 앞에서 선정에 들어가

칠일만에 깨어났습니다.

그러고는 출가하여 반야다라 존자의 제자가 되어 수행을 하여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대는 이미 모든 법을 깨달았다. 이제 그대를 보리달마라 하겠으니, 달마라 함은 통달하고 크다는 뜻이다."

이리하여 보리다라 왕자는 보리달마라 불리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줄여서 흔히 달마대사라고 불렀습니다.
 

반야다라 존자가 말하기를  
 

"그대가 비록 깨달음을 얻었으나, 멀리 떠나지는 말라.

우선 남인도에 머물며 정진하다 내가 열반에 들고나서 예순 일곱 해가 지나면 동쪽으로 가라.

그곳에서 상근기들을 직접 대하라. 행여 너무 빨리 떠나서 햇볕에 시드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 나라에 법의 그릇이 될 만한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그대가 교화한 지방에서 깨달음을 얻는 이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남쪽에는 머물지 말라.

  그곳에는 유위공덕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부처님의 이치를 바르게 보지 못하리라.

  또 그대가 그 곳에 가더라도 오래 머물지는 말라."
 

그 후 반야다라 존자가 열반에 든 지 예순 일곱 해가 지나자, 달마대사는 스승의 뜻을 받들어 중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중국에 전래된 불교와는 다른 선불교를 전파하여 이른바 달마선(達摩禪)의 시조(始祖)가 되었습니다.
 

달마대사가 처음 도착한 곳은 광주로 양(梁)나라의 땅이었습니다.

양 나라의 왕은 불심천자라고 칭송을 받으며, 불교를 위하여 헌신한 무제(武帝)였습니다.

무제는 달마대사가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모셔와 물었습니다.
 

"짐이 왕위에 오른 이래로, 절을 짓고 경전을 펴내었으며 승려를 득도시킴이 헤아릴 수 없는데, 어떤 공덕이 있소?"
"아무 공덕도 없습니다."
 

"이는 인간과 하늘의 작은 결과를 받는 유루(有漏)의 원인일 뿐이니,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아 있는 듯 하나 실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이오?"

"청정한 지혜는 오묘하고 원만하여 본체가 원래 비어 있어 고요하니, 이러한 공덕은 세상의 법으로는 구하지 못합니다."
 

"어떤 것이 성제(聖諦)의 으뜸가는 이치요?"
 

"전혀 거룩함이 없습니다."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요?"
 

"모릅니다."
 

지금까지 양무제(梁武帝)는 수없이 많은 절을 짓고, 많은 탑을 쌓았으며, 스님들을 공양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한량없는 복을 지었다고 자부하며 살아왔으며, 그가 만난 스님들도 한결같이 그를 찬탄하고 칭송했는데,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스님이 대뜸 아무 공덕도 없다고 하였으니 양무제는 노여움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양무제와는 인연이 닿지 않음을 느낀 달마대사는 '남쪽에 머물지 말라"하신 반야다라 존자의 말씀을 떠올리고,

양자강을 건너 위 나라로 가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달마 대사가 양자강을 건너려는 순간에 먼지를 일으키며 한 떼의 군마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자신의 공덕과 선행이 무시당한 것에 대한 화를 삭이지 못한 무제가 달마 대사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그러자 달마대사는 강가에 자라나 있는 갈대 잎을 꺾어 강물 위에 띄우고 그 위에 올라 유유히 강을 건넜습니다.

이윽고 숭산 소림사에 도착한 달마대사는 아홉 해 동안 면벽좌선을 하며 때가 오기를 기다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