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족정진 (翹足精進)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8세에 출가, 부처님의 나이 55세부터 시자로 소임이 뽑혀 열반에 드실 때까지 줄곧 측근에서 모셨습니다.
아난은 기억력이 출중하여 부처님 곁에 있으면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면서 마하가섭을 중심으로 제1차 경전결집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결집에 참여할 자격을 가려 뽑던
마하가섭이 아난존자에게 기억력이 총명한 것만으로는 결집에 참여할 수 없다고 거부하면서 "아라한 과(果)를 증득해서 들어오도록
하시오"하고 결집장소인 칠엽굴을 막고 나머지 비구들을 데리고 칠엽굴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오랫동안 부처님을 그림자처럼 따르면서 모셔왔고 기억력이 출중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잘 외어 간직하고 있는 '아난존자' 없이는
결집이 진행되기 어려웠지만 아난존자만을 위해서 예외를 인정할 수도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에 아난존자는 칠일칠야를 잠을 자지 아니하는 교족정진(翹足精進:발뒤꿈치를 들고서 하는 정진)으로 마침내 집회를 갖기로 한 날
아침에 활연대오(豁然大悟)하여 아라한과(果)를 증득한 뒤 결집장소인 칠엽굴을 신통력으로 들어가서 결집에 참여하였습니다.
장로(長老)들 앞에서 선 아난존자는, 장로들이 부처님의 설법에 대하여 물으면 '나는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하는 암송으로 경전
결집을 주도하였습니다.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경전의 첫 말은 이렇게 해서 생긴 것입니다.
아육왕(阿育王) 헌사공양(獻沙供養) : 아쇼카왕의 전생이야기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와 함께 성 안으로 탁발하러 가시는 길에 소꿉장난을 하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은 모래와 흙으로 집과 창고를 만들고 또 신발에다 모래를 담아 밥이라고 하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 중에 키가 작은 아이 하나가 부처님께서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부처님께 무엇이든지 공양을 올리면 큰복을 받는다고 하던데...'
이렇게 생각한 아이는 신발에 밥이라며 담아 놓은 모래를, 동생을 엎드리게 하고는 그 위에 올라가 부처님께 정성스럽게 올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래 밥을 받으시고는 빙그레 웃으시며 아난에게 건네 주셨습니다. "이 모래를 가지고 가서 내 방의 허물어진 곳에
바르도록 하여라."
정사로 돌아온 아난이 말씀대로 방의 허물어진 곳에 바르고 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두 아이가 환희심으로 모래를 보시하였으니, 그 공덕으로 다음에는 국왕이 되어 삼보를 받들고 여래를 위하여 팔만 사천 보탑을 세울 것이다."
이 말씀을 들은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어찌 한 줌의 흙의 공덕으로 그와 같이 큰 공덕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과거에 한 국왕이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출현하시니 임금과 신하들이 모두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법을 청하여 들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왕은 마음의 문이 열리고 깨닫는 바가 참으로 많았다.
왕은 이 기쁜 마음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부처님의 형상을 팔만 사천 장을 그려 보시하였으며,
그 공덕으로 팔만 사천의 탑을 건립할 수 있는 과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국왕이 바로 오늘 모래를 공양한 소년이다."
기원 전 3세기 중엽에 인도를 통치한 아쇼카왕이 바로 그 소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인도 역사에서 가장 넓은 땅을 통일하고 다스린 국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전쟁의 비참함을 통감하고, 인생의 무상함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러한 까닭으로 불교에 귀의하여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아쇼카왕은 참다운 평화의 의미를 이해하고 터득하였습니다. 인생과 사회에서 누구나 구하는 평화란 무기나 군대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득치(德治)로써 노력하여야만 가능함을 깨달았습니다.
아쇼카왕 자신은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올바른 가르침을 널리 펴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왕비와 왕자, 대신들에게까지 불법을 배우게 하였으며, 일반 백성들에게도 널리 불법을 펼쳤습니다.
왕위에 오른 지 열일곱 해가 되었을 때는 천 명의 승려로 하여금 경전을 편찬케 하는 결집을 주최하였고, 시리아, 이집트, 마케도니아, 키프러스, 스리랑카와 같은 여러 나라에 불교사절단을 파견하였습니다. 또한 살생을 금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렵을 막아 동물의 생명가지도 귀하게 여겼으며, 불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도 평등한 자유를 부여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아쇼카왕은 인도 전역에 팔만 사천 불탑과 법칙을 새긴 석주를 세웠으며, 병자를 치료하는 요양소를 설립하였습니다.
스스로도 불교의 생활 규범에 철저하였던 아쇼카왕은, 이처럼 모든 인류에게 불교의 진리를 전파하여 생활 속에서 구현할 수 있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인도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아쇼카왕은 석주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습니다.
"전쟁에 의한 승리보다 자비에 의한 정복이 훨씬 훌륭한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이러이러한 선행을 행하였다하여 스스로의 선한 점만을 보려고 하며, 자신이 저지른 악행과 자신이 지니고
있는 번뇌와 같은 나쁜 점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 글귀는 사람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따라 자기 반성할 것을 촉구한 아쇼카왕의 뜻을 전하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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