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가 있는 그곳

가시연꽃

백련암 2012. 2. 22. 21:04

 

가시연꽃 / 이동순

온 몸을 물 속에 감추고
눈만 빠끔히 올려 세상을 엿보는 개구리가
그는 정말 싫었던 것이다.

다른 저수지의 연꽃들 처럼 화사한 분홍 연등을
한번도 달아보지 못하고
이 쓸쓸한 곳에서
그냥 묵묵히
묵묵히 참고 지내왔는데도

거친 비바람은 사정없이 짓밟고 갔던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그 저 노엽고 싫게만 보이던 어느 날
슬금슬금 가리워진 등짝에서는
뾰족 가시가 하나둘
돋아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못난 등짝에
하얀 백로들이 서서 깃을 다듬거나 졸고 잇는 것이
마냥 좋았다.

그러다 가을이 되자
아득한 물 위에 가시만 남겨두고
넓은 잎은 덧없이 녹아
물 속에 가라앉고 마는 것이었다.

가시연꽃 / 창작과 비평사


 

'詩 가 있는 그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0) 2012.02.22
사슴 =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여...   (0) 2012.02.22
종이 배  (0) 2012.02.22
소금  (0) 2012.02.22
커피 한 잔의 여유  (0) 2012.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