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색 찬란한 미타불이 나투신 곳, 봉림사(鳳林寺)의 전설
귀달린 뱀
옛날 남양땅에 부사(府使)가 새로 부임해 왔다.
새로 온 부사는 이곳을 거쳐간 어느 부사보다도 마음이 유순한 데다가 백성을 대하는데 있어서
공손하고 문장또한 뛰어나 덕인이라 일러 왔다.
송사를 다루되 공정무사하게 처리하고 불의나 부도덕한 것을 배격하니,
군민들 사이에는 어질고 본받을 만한 부사가 왔다고 칭송이 자자했다.
그런데 부사의 뜻한 바와는 달리 그 해 마침 비가 내리질 않아 농민들의 걱정이 대단했다.
그렇지 않아도 남양지방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해변가 연안에서 소금을 구웠으며
많은 백성들은 농사에 종사하고 있는 평농평어(平農平漁)지역이었으나,
우척답이 많고 토지는 척박하여 살기가 힘든 고장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도 비록 가난한 사람이 많다 해도 산천이 맑고 인심 좋은 고장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따라서 부사는 더 걱정이 되었다.
어느 날 부사가 동헌 뒷편을 거닐면서 군민을 잘 다스릴 것을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바르고 착한 정치를 베풀 것인가 하고 고심하며 있을 때였다.
뜰 앞 연못을 바라보는 순간 연못의 물이 별안간 왈칵 뒤집히면서 그 와중에 어떤 짐승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연못 옆에 있는 고목나무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부사는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하여 이러한 상서롭지 못한 광경이 나타나는 것일까? "하며
부사는 동헌에 있던 아전들을 급히 불러 그 광경을 보라고 했으나,
부사에게는 똑똑히 보이는 데도 아전들은 아무도 짐승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오히려 부사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 것처럼 의아한 표정들이었다.
그러자 이방이 말을 꺼냈다.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귀달린 뱀'이 올라가는 것이 부사에게만 눈에 띄었을 뿐,
그 때에도 다른 사람에겐 안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그 해 남양고을에는 몹시 흉년이 들었다고 하며,
이것은 모두 귀 달린 뱀인 용의 장난이라고 했다.
부사는 기이하게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다른 사람에겐 보이질 않고 부사인 나에게만 보인단 말인가.
이것은 필시 연못에 있는 용이 노한 때문이요,
장차 이 고을에 흉년이 들 것을 미리 알리는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 것이다.
부사는 곧 연못가에서 용왕을 달래는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는 즉시 아전들에게 명령을 내려 이에 대비하라 하였고,
고을 백성들에게는 앞으로 한해나 수해가 오더라도 예방책을 강구하도록 하였다.
예컨대 냇물을 이용할 수 있게 한다든지, 또는 우물도 파게 하였고,
봇둑을 튼튼히 하여 여러 가지로 미리 예비하도록 영을 내렸다.
고을 백성들은 어느 영이라 거역할 수도 없거니와 '부사의 예측대로 흉년이 든다면 우리들의 생사가 달린 일인데' 하고는,
너나 할 것 없이 이르는 대로 재주껏 힘썼다.
아니나 다를까 그 해에 부사의 말대로 흉년이 들었다.
농사가 잘 안되기는 했지만 부사의 덕택으로 큰 흉년을 면할 수가 있었고
농사를 못 짓게 된 논, 밭에는 대작으로 흉년기근을 면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겠는가. 백성들은 부사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또한 '부사가 아니었던들, 이나마 호구지책이라도 할 수 있었겠느냐'며
고을 전체에 이구동성으로 부사에 대한 칭송이 대단했다.
남양부사가 정사에는 물론, 백성들로 하여금 흉년을 이겨내게 하여 여러모로 선정을 베풀었다는 소식이 조정에까지 알려지자,
그 이듬해 나라에서는 남양부사를 승진시켜 조정으로 끌어 들였다.
그러자 남양 고을 백성들은 부사가 떠나는 것을 몹시 아쉬워하며 남양 고을에 더 머무르게 해 달라고 탄원을 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후 일제시대의 일이었다.
1898년 개교한 남양초등학교는 본래 남양 시가지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가지 발전이 안된다 하여
1938년경에 학교의 실습지였던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 때 학교 운동장 끝에 있었던 연못(옛날 남양부 동헌 뒷편)을 메워 운동장을 만들었더니,
그 후 해마다 남양초등학교의 학생운동회 날이면 몇 해를 계속해서 영락없이 비가 오니,
이는 남양 지방의 용이 올라 갔다는 옛 전설과 함께 지금까지도 용이 심술을 부리고 있다고 학부형들이 수군거렸다.
이 말을 들은 학교측에서는 옛날 연못이 있던 그 자리에 다시 연못을 팠다.
그 후에 여러 번 보수하여 관리하고 있는데, 촌로들은 연못을 다시 판 것이 잘한 일이라고 하며
옛부터 내려오는 전설을 아직도 신봉하고 있다.
그 후부터 운동회날 비가 오지 않은 것은, 용이 놀 수 있는 연못을 다시 파서 용의 마음을 달래놓았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남양면 홍승길(洪承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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