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사는 국내에서 제일가는 아미타 기도도량으로 극락전에 봉안되어있는 아미타여래좌상과 좌우협시불인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은
동양 치대의 규모로써 거대한 전각의 내부공간을 감각적으로 꽉 메우고 있습니다.
당사찰의 문화재로는 국보급 보물 5점과 충남 지방문화재 8점등 귀중한 불교유산인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그 중 생육신중 한분인 매월당 김시습 선행의 초상화와 부도탑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백제 불교의 혼이 담긴 무량사는 천년고찰의 역사와 고풍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있는 국내에서 보기드문 고찰입니다.
통일신라시대 문성왕(재위 839~856년) 때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신라말기의 고승 무염이 일시 머물면서 중수하고
고려초기인 고려 고종(서기 1213년 ~ 1259년)때에 대 중창하여, 대웅전, 극락전, 천불전, 응진전, 명부전 등의 불전과 30여동의
요사와 12암자가 있었다. 여러차례 중수하였으나 자세한 연대는 알 수 없으며,
그 후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모두 불 타 소실되고 조선 인조(1623년 ~ 1649년)때 진묵선사에 의해 대중창하였으며,
1872년 원열화상이 중창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세상을 피해 이 절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입적하였고, 조선 중기의 고승 진묵선사가 아미타불을 점안하고
나무열매로 술을 빚어서 마시면서 도도한 시심을 펼쳤던 사찰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동양 최대의 좌불상인 보물 제1565호인 소조 아미타여래삼존좌상을 봉안하고 있는 극락전 보물 제 356호,
충청남도 문화재 제 389호인 명부전, 향토유적 제 70호인 영산전을 비롯하여 산신각,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다.
그리고 중요 문화재로는 극락전 앞에 일렬고 배치된 보물 제 233호 인 무량사 석등, 보물 제 185호 인 무량사 오층석탑, 천왕문 앞으로 우측 담장 아래
위치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 57호로 지정된 무량사 당간지주, 보물제 1497호인 김시습 초상, 보물 제 1265호인 무량사 미륵불괘불탱 등이 있다.
무량사 주차장 직전 좌측으로 약 15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부속암자인 무진암 입구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 25호인 김시습부도가 있다.
김시습이 성종 24년(1493년) 이곳에서 죽자 승려들이 그의 영각을 절 곁에 짓고 초상을 봉안하였으며, 그 뒤에 부여읍의 선비들이
김시습의 풍모와 절개를 사모하여 학궁곁에 사당을 짓고 청일사라 이름하고 그 초상을 옮겨 봉안하였다.
천왕문(天王門)
사천왕상(四天王像)
사천왕상(四天王像)
무량사 들어가자면 정면으로 눈에 들오는것이 석등(石燈), 석탑(石塔), 극락전(極樂殿)이 일렬로 서 있다.
부여 무량사 석등 (扶餘 無量寺 石燈) : 보물 제233호 시대 = 통일신라
무량사 법당 앞뜰에 세워져 있는 8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받침돌은 연꽃 8잎이 조각되어 있고, 가운데받침은 기둥으로 길게 세워져있으며 그 위로 연꽃이 새겨진 윗받침돌이 놓여 있다.
화사석은 8면 중 4면은 넓고, 4면은 좁은 형태로, 넓은 4면에 창이 뚫려 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의 치켜올림과 처마의 경사가 잘 어울려 경쾌한 모습을 보여 주며, 꼭대기에는 자그만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솟아 있다.
전체적으로 지붕돌이 약간 큰 감이 있으나 경쾌한 곡선으로 인해 무거움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래·위받침돌의 연꽃조각은 통일신라 전성기의 화려한 연꽃무늬와는 차이가 있고, 각 부분이 형식적으로 흐른 감이 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인 10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오층석탑 (扶餘 無量寺 五層石塔) : 보물 제185호
무량사오층석탑출토유물 (無量寺五層石塔出土遺物)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0호
1971년 무량사 오층석탑(보물 제185호)에 대한 해체·복원 작업중 발견된 9점의 유물이다.
석탑 1층 몸돌에서 아미타불좌상을 주존으로 한 금동제 삼존불이 나왔고, 3층 몸돌에서도 금동보살좌상 1구가 발견되었다.
5층 몸돌에서는 사리구가 발견되었다.
금동제 삼존불의 본존인 아미타좌상은 높이 33.5㎝로, 얼굴을 앞으로 수그린 자세에 오른손은 어깨 앞으로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도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모양을 하고 있다. 관음보살좌상은 아미타불의 좌측에 있으며, 아미타불과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높이는 25.9㎝로 3개의 산모양 관 중앙에 부처가 새겨 있고, 늘어진 목걸이 장식이 화려하다. 손모양은 같으나 방향이 다르다.
지장보살좌상은 높이 26㎝로 관음보살과 모습은 같으나 삼산관이 없고 손모양이 반대이다.
3층 몸돌내에서 발견된 금동보살좌상은 높이 35.2㎝로, 관과 두 손이 파손되었다.
5층 몸돌에는 청동 외합과 내합이 들어있는 사리구가 발견되었다. 내합 안에는 수정으로 된 작은 병, 다라니경, 자단나무와 방분향으로 가득 차 있다.
수정병 안에는 청색 사리가 1개 들어 있었다.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扶餘 無量寺 五層石塔) : 보물 제185호 시대 = 고려시대
무량사 극락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웅장한 모습의 5층 석탑이다.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은 1단으로, 둥글게 다듬은 두툼한 석재를 포함한 층단으로 괴임을 만들고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세웠다.
탑신(塔身)은 지붕돌과 몸돌을 한 층으로 하여 5층을 이루고 있다.
네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있는 몸돌은 지붕돌에 비하여 높이가 낮은 편이나 전체적으로 알맞은 비례를 보이고 있어 우아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지붕돌과 밑의 받침은 딴 돌로 구성되어 있고 받침의 수는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낮은 받침돌 위로 머리장식의 일부가 남아있다.
백제와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조화시켜 만든 고려 전기의 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백제의 기법이 이어졌고 통일신라의 시대적인 양식도 계승되었다.
해체공사를 할 때 탑신의 1층 몸돌에서 금동제 아미타여래좌상, 지장보살상, 관음보살상의 삼존상이 나왔고,
3층에서는 금동보살상, 5층에서는 사리구(舍利具)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冥府殿(명부전)
삼존상 무독귀왕 지장보살 도명존자
부여무량사지장보살및시왕상일괄 (扶餘無量寺地藏菩薩및十王像一括)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시대 = 조선시대
부여 무량사 명부전에는 중앙 불단 위의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중심으로 그 측면에 무독귀왕(無毒鬼王)과 도명존자(道明尊者)의 삼존상이 있고
시왕(十王)이 각각 좌우에 5왕씩 대칭으로 모셔져 있다. 그 옆으로 판관(判官)과 사자(使者), 인왕(仁王) 등이 있다.
각기 다양한 모양의 존상들은 색채가 화려하고 옷에 새겨진 문양 등이 섬세하며 각기 17∼18세기에 유행했던 시대적 조각양식과 조선후기에 성행했던
명부신앙을 잘 보여주고 있는 바, 무량사의 불교유물들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때 17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명부전의 모든 존상들을 잘 갖추고 있다.
무량사 명부전은 1872년 원열화상에 의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창건되었으며, 전각 안에 모셔진 지장보살 및 시왕상 일괄은
종교적·학술적인 면과 불교미술사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이다.
지장전과 석탑
부여 무량사 극락전 (扶餘 無量寺 極樂殿) : 보물 제356호 시대 = 조선시대
무량사는 신라 말에 범일이 세워 여러 차례 공사를 거쳤으나 자세한 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신라말 고승 무염대사가 일시 머물렀고,
고려시대에 크게 다시 지었으며, 김시습이 이 절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치않는 2층 불전으로 무량사의 중심 건물이다. 외관상으로는 2층이지만 내부에서는 아래·위층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트여 있다. 아래층 평면은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기둥 사이를 나누어 놓았는데 기둥은 매우 높은 것을 사용하였다.
위층은 아래층에 세운 높은기둥이 그대로 연장되어 4면의 벽면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는 그 얼마되지 않는 낮은 벽면에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창문을 설치했었는데 지금은 나무판 벽으로 막아놓았다.
아미타여래삼존상을 모시고 있는 이 불전은 조선 중기의 양식적 특징을 잘 나타낸 불교 건축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수한 건물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
扶餘 無量寺 塑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 무릎이 군형잡힌 불상이다.
인조 11년(1633년) 무렵 제작되어 중층으로 이루어진 극락전의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데, 17세기 대규모 사찰에서 널리 조성되었던 대형의
소조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 삼존상은 아미타, 관음, 대세지라는 분명한 아미타삼존을 보여주고 있고, 이미 발견된 복장발원문을 통해 현진이라는 조각승과 1633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조각사 연구는 물론 조각 유파 연구에도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또한 17세기 전반기 대형불상에서 삼신 또는 삼세불상이 결합된 삼존형식이 대부분인 가운데, 극락전의 조존으로 아미타, 관음, 대세지보살이
결합된 삼존도상의 드문 예로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거대한 규모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불신의 전체적인 모습이 도식적으로 단순화된 감이 있으나 양대 전란이후 자존심과 자신감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던 불교계의 저력을 느낄 수 잇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주존불인 아미타불이 높이 5.5m에 이르는 대형으로 현존하는 조선 중기 불상 가운데 충청도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장중함이 돋보이는 불상이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관음보살상, 오른쪽에 대세지보살상이 있는데 모두 전체적으로 당당한 체구와 넓은 무릎이 균형잡힌 불상이다.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扶餘無量寺塑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 보물 제1565호 시대 = 조선시대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중층전각으로 이루어진 극락전의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데, 17세기 대규모 사찰에서 널리 조성되었던
대형의 소조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 삼존상은 아미타 · 관음 · 대세지라는 분명한 아미타삼존 도상을 보여주고 있고,
이미 발견된 복장발원문을 통해 현진(玄眞)이라는 조각승과 1633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어 조선후기 조각사 연구는 물론
조각 유파 연구에도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거대한 규모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불신의 전체적인 모습이 도식적으로 단순화된 감이 있으나
양대 전란 이후 자존심과 자신감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던 당시 불교계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전반기 대형불상에서 삼신 또는 삼세불상이 결합된 삼존형식이 대부분인 가운데, 극락전의 주존으로 아미타·관음·대세지보살이 결합한
삼존도상의 드문 예로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무량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치 않은 2층 불전으로 무량사의 중심 건물이다. 외관상으로 보면 중층 건물이나 내부는 사하층의
구분없이 하나로 통해 있다.
청한당 = 스님 요사채
원통전(원통전)
靈山殿(영산전)
靈山殿 앞 石燈(영산전 앞 석등)
무량사미륵불괘불탱 (無量寺彌勒佛掛佛幀) : 보물 제1265호 시대 = 조선시대
보관(寶冠)의 화불(化佛) 및 童子(동자), 童女(동녀)
5색광과 화불
무량사미륵불괘불탱 (無量寺彌勒佛掛佛幀) : 보물 제1265호 시대 = 조선시대
미래불인 미륵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 여덟구씩의 화불을 그린 괘불인데,
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진행할 때 예배를 드리는 대상으로 법당 앞 뜰에 걸어놓았던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미륵불은 두 손으로 용화수 나뭇가지를 받쳐들고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서 있다.
보관의 끝에는 6구의 불상이 있고 그 사이로는 동자(童子)와 동녀(童女) 등 59구의 얼굴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다.
네모난 얼굴에는 눈과 속눈썹, 도톰한 입술, 콧수염까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고 옷에는 화려한 장식들이 달려있다.
머리광배와 몸광배가 그려져 있고 몸광배에는 연꽃과 모란 등의 무늬가 있다.
머리광배와 몸광배 밖으로는 오색의 구름과 함께 배치된 작은 불상들이 마치 미륵불을 수호하고 있는 듯하다.
녹색과 붉은색을 주로 사용하여 화려하게 채색되었으나 전체적으로 형식화된 모습이다.
조선 인조 5년(1627)에 그려진 이 불화는 5단의 화면을 이어 한 화면을 만든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으며 17세기 전반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근엄하고 당당한 모습과 중후한 형태미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지장전과 탑, 석등
요사채
무량사 전경
극락전과 오층석탑
범종각
향적당 현판(香積堂)
향적당(香積堂)
一柱門(일주문) 안에서 볼땐 光明門(광명문)이라는 편액이 걸려있음
광명문 현판(光明門)
무량사는 아미타불도량이기에 광명문이라 쓰여진것 같네요
一柱門 = 萬수山無量寺(만수산무량사)편액
편액 오른쪽에 지도가 그려져 있어 신기하게여겨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일주문 편액을 쓰신분이 차우(此愚) 김찬균(1910년~ ?)선생님 이
쓰셨다고 되어있네요 양산 통도사 범종루, 속초 신흥사 천왕문을 비롯해 여러 절 편액에 독특한 주자서체 글씨를 남긴 분이랍니다.
한반도 모양 두인(두인)을 새기고 그 안에 일체유심조라는 글씨를 넣었답니다. 화성 용주사의 대웅전 앞 홍제루 편액도 이 분이 쓰셨답니다.
일단 김찬균선생님만의 독특한 서명인것 같습니다.
제 눈엔 아직 잘 안 보이는데 한번 더 가서 자세히 봐야 되겠습니다.
一柱門 = 萬수山無量寺(만수산무량사)
※ 여기서 잠깐 = 일주문은 기둥이 하나라는 뜻이 아니고 한줄로 서 있다는 뜻이고 한마음(일심)으로 수도한다는 의미랍니다.
그래서 일주문 중엔 네 기둥을 일렬로 세운 곳도 있는 것이랍니다.
◈찾아가는 길 = 기차 = 장항선 : 용산역승차 → 대천역하차 → 외신행시내버스로 환승 → 외신버스종점 하차 = 소요시간 3시간
현지 시내버스 = 대천역에서 → 외신행버스 이용 외산에서 하차 = 소요시간 25분
현지교통 = 부여에서 외산직행(직행버스는 부여에서 보령행), 시내버스 수시로 운행 → 외산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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