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조급한 마음 내지 말라=
간화선에서는 본래 부처라는 것을 철저히 확인하기 위해서 깨침을 법칙으로 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깨침을 기다려서도 안 된다.
시절인연이 무르익어 반드시 떨어지게 되어 있는 저 과실열매처럼 충분히 익을 때를 기다려야지,
생짜로 나뭇가지를 흔들어 떨어뜨리거나 미리부터 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익기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즉 간절하기는 하되, 속효심(速效心)을 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깨침을 기다리는 마음은 조급한 심정으로 알음알이를 내게 하며,
이러한 사랑 계교야 말로 공부를 제대로 되지 못하게 하고 의정을 일으킬 수도 없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두를 참구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주의해야 할 점은 깨침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깨닫겠다는 일념은 중요하다. 그러나 깨침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단지 화두에 몰두해서 생사심이 파하면 되는 것이다.
오히려 깨침을 얻고자 기다리다 보면 그로 인하여 장애가 되어 깨침은 더더욱 더디어질 따름이다.
간화선은 결코 대오선(待悟禪)이 아니다.
오히려 그 깨침을 기다리는 마음까지도 화두라는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 녹여버려야 한다.
인연되어 떨어지는 과실처럼
충분히 익을 때까지 기다리길
깨침을 법칙으로 삼되, 깨치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자칫 상충되기 쉬운 이러한 두 가지 원칙을 다 함께 살려나갈 수 있어야 올바른 화두 참구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두 참구 시에 오로지 깨침을 중시하다보면, 다만 미래의 깨달음에만 마음을 두어 스스로를 못 깨친 중생으로
매어놓고 중생지견 가운데서 알음알이를 지어 깨닫기를 기다리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본래 부처라는 입장에 치중하다보면 깨침을 법칙으로 삼지 않고 도리어 방편시하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입장을 함께 살려나갈 수 있는 중도적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현전일념(現前一念)을 중시하는 것이다.
다만 일념을 단속해서 화두를 들것이요, 깨치고 못 깨치고 상관없이
오직 ‘이 뭐꼬?’하는 의심덩어리만이 홀로 뚜렷해지는 의단독로(疑團獨露)를 달성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이것은 오랜 세월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경각을 얻기 전에는 완전히 바보처럼 멍청이처럼 여올여치(如兀如痴)하게 지내면서
분별지혜로써 알려고 하지 말고, 다만 모른 채로 오직 모를 뿐인 화두를 챙겨나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비로소 깨치고 못 깨치고 상관없이 화두가 한 조각을 이루어(打成一片) 의단이 독로해지고
시시각각으로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느껴나가 안락의 법문을 이루게 될 것이다.
[ 월호스님 / 쌍계사 승가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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