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설화 및 꽃의전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진묵대사의 일화모음제 2장

백련암 2008. 4. 1. 18:32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진묵대사의 일화모음제 2장

 

 

다섯번째 이야기

 

대사가 하루는  시자를 불렀다.

기춘아.

시자가 대답하고 즉시 달려오니 대사는 시자에게 소금을 준비하라 했다.

시자가 준비를 마치고 보고하자 대사가 말했다.

그 소금을 가지고 속히 봉서사 남쪽의 부곡(婦谷)으로 달려 거거라.

가서 누구에게 주어야 합니까?

그곳에 감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니 구태여 지금 물을게 없는니라.

 

시자가 소금을 가지고 봉소사 남쪽의 재를 넘어 며느리골, 즉 부곡으로 갔다.

거기에는 사냥꾼 몇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모닥불을 피워 놓고 있었다.

아구, 어서 오시오. 시자스님.

그래 무엇들을 하고 계십니까?

예, 지금 우리가 노루를 한 마리 잡아서 불에 굽기는 했는데

소금이 없어서 이러고들 있습니다.

소금이라면 여기 있습니다.

사냥꾼들이 놀라면서 물었다.

아니, 어떻게  때맞춰  소금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우리 진묵 큰스님께서 소금을 가지고 부곡으로 빨리 가 보라 하셔서 왔습니다.

이제보니  큰스님께서 여러분들을 생각하고 저를 보내신 것 같군요.

사냥꾼들은 저마다 대사의 예지력에 찬사를 보냈다.

 

여섯번째 이야기

 

하루는 대사가 점심공양을 하다 말고 갑자기 물을 찾았다.

시자가 급한 김에  따뜻한 물을 올린다는 것이 뜨물을 갖다 드렸다.

대사는 그 뜨물을 받아 입에 한 모금 물고는 동쪽을 향해 내뿜었다.

그러자 뜨물은  물방울을 지니며 삽시간에 날아가 버렸다.

대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공양을 시작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때 합천 해인사에 화재가 일어나 절이 다 타게 되었는데

난데없이 서쪽에서 먹장구름이 밀려 오더니 삽시간에 소나기를 퍼부어

화재를 진압하였다고 한다.

 

더욱이 그 빗물은 모두 희뿌연 색깔을 띠고 있었으며 어디에나 묻으면 허옇게

얼룩이 지곤 했다  한다.

마침 그 불이 일어난 날이

대사가 점심공양  중에 뜨물을 머금어 뿜은 날이었다고 한다.

 

일곱번째 이야기

 

대사가 상운암(上雲庵)에 주석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큰스님이 계신다고 하니까 많은 납자들이 몰려들었다.

절에 비해 식구가 많다 보니 양식이 곧잘 떨어지곤했다.

한번은 대중스님들이 양식을 구하러 대처로 나갔다.

양식은 구했지만 장마가  계속되는 바람에 홍수가 나서 절로 돌아올 수 없었다.

시자마저도  다  떠난 텅 빈 절이었다. 

 

대중들은 걱정을 했다.

양식도 떨어졌는데 큰스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실까?

글쎄 말이야 시자까지 함께 나왔으니 큰일인걸.

큰스님은 도력이 있으시니까 아마도 잘 해결하고 계실지 몰라.

도력도 도력 나름이지. 

어떻게  드시지도 않고 도력이 나오겠나.

 

대중들은 장마가 그치기를  기다려  한달이 넘어서야 상운암으로 돌아왔다.

걱정은 했지만 상운암에 도착하여 대사를 뵙고는 깜짝 놀랐다.

머리에는 새가 집을 지었고 얼굴에는 거미줄이 얽혀 있었다. 

 

그리고 무릎 사이로 풀이 돋아나 벌써 배꼽 이상 올라와 있었다.

대중들은 거미줄을 걷어내고 새집을 치워 버리는 등 온갖 부산을  떨고 나서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대사가 말했다.

양식을 구하러 나간 사람들이 양식은 어떻게 하고 이처럼 빨리 돌아왔느냐?

대사는 일행삼매에 들어 시간을 초월해 있었던 것이다.

 

여덟번째 이야기

 

한번은 변산에 있는 월명암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겨울 결제가 임박해 오자 대중들은 겨울 양식 준비다 행걸이다 해서

모두 떠나고 대사는 시자와 단 둘이 절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시자가 말했다.

큰스님, 속가의 저의 어머니 기일이 오늘 저녁입니다. 다녀와야겠습니다.

 

대사가 말했다.

그렇게 하려무나. 아무리 출가한 사문이라  해도 부모의 은혜를 저버려서는 안되느니.

아무 염려 말고 다녀오너라.

 

스님께서 드실 공양상을 보아 놓았으니 시장하면 드십시오.

그렇게 하겠네.

 

그때 대사는 방장실에서 창문을 열어 놓고 문지방에 손을 얹어 놓고  경만 보고 있었다. 

바람에 창문이 닫히면서 손가락을 찧어 으깨져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손을 거두지도 않은채였다.

 

시자가 놀라면서 물었다.

큰스님,

시자 기춘이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큰스님, 손을 다치셨군요?

대사가 말했다.

어, 그래? 나는 몰랐었구나.

 

그나저나 너는 제사 지내려 간다던 사람이 어찌하여 제사  참례도 하지 않고 이토록 

빨리 돌아왔느냐?

대사는 수능엄삼매에 들어 밤이 가고 시간이 흐르는 것을 초월해 있었다.

 

아홉번째 이야기

 

대사가 혼자 길을 가고 있었다.

산천도 구경하고 혼자만의 기쁨도 누리면서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어떤 사미를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요수천(樂水川)가에 이르렀을 때다.

사미가 대사를  돌아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큰스님, 제가 먼저 건너가 보겠습니다. 

물이 얕은지 깊은지 알아보고 말씀드리지요.

그렇게 하시게.

 

사미가 신발을 벗어들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건너갔다.

사미가 건너는 모양새로 보아 물이 깊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대사도 그를 따라 옷도 벗지 않은 채 건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대사가 물에 빠져 곤욕을 치르자 사미가 얼른 되돌아 와서 부축하였다.

대사는 나한의 장난인 줄 알고 나서 게송을 읊었다

 

너희 열여섯 명의

영축산 나한들이여!

요수천의 밥 먹기를

언제부터 그만두었는가.

그대들의 신통묘용을

내 따르지는 못하지만

위대한 도는

이 늙은 비구에게 물어보라

 

전주 청량산 목부암에 주석하고 있을 때였다.

 

대사가  그리로  옮기게 된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바람도 구름도 없이 맑은 날 밤이면 성좌를 알 수 없는 별 하나가 멀리 동쪽

들녘 끝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서 이상하게 여기고 찾아간 곳이 바로 목부암이었다.

대사는 이 목부암에 이르자 암자 이름을 원등암(遠登庵)이라 고쳤다.

 

그것은 멀리까지 암자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인다는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본디 목부암은 나한도량이었다. 

열여섯분의 나한들이 모셔져 있었다.

나한들은 목부암의 불빛을 대사에게 비쳤는데 그것은 대사의 뜻을 계발하기 위함이었다.

나한들은 월명암의 진묵대사를 오래 전부터 존경해 왔던 것이다.

 

열번째 이야기

 

전주부에 어떤 이름없는 아전이 있었다.

그는 평소 대사와 아주 가까이 지내는 터수였다.

어느날 그 아전은 관청의 물건을 몰래 훔쳐 달아나려다 대사에게 들켰다.

대사가 가엾은 표정으로 말했다.  

흠포,

즉 관청의 공적인 물건을 사사로이 써버림이 어찌 사내대장부로서  할 일이겠는가.

그러지 말고.

그 흠친 물건은 도로 관청의 제자리에 갖다 놓고 대신 쌀 몇 말을 가져다

저 나한들에게 공양하게.

그러면 머지않아 좋은 일이 있을 것이네.

아전은 부끄러워하면서 돌아갔다.

 

잠시후 아전이 쌀 몇말을 지고 왔다.

대사가 말했다.

참 잘했네.

 

그 쌀로 공양을 지어 나한님들에게 올리게.

아전은 손수 공양간에 들어가 밥을 지어 나한님들께 올렸다.

 

대사가 말했다.

전주 부청에 혹 빈 자리가 있지 않던가?

감옥의 형리 자리가 잠시 비어 있습니다.

그러나 봉급이 매우 박하고 그다지 할 일도 없는 그런한 자리입니다.

일이 있고 없고는 그만두고 얼른 가서 그 자리를 자청하여 맡도록 하게나.

앞으로 한 달 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네.

정말 그럴까요?

허!  이사람 속아만 살아왔나?

 

아전이 돌아가고 나서 대사가 나한전에 들어갔다.

대사는 들고 있던 주장자로 나한들의 머리를  세번씩 두드리고 말했다.

그대들은 방금 그대들에게 공양 올린 아전을 눈여겨 보았겠지?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그러니 그 아전의 일을 잘 도와주도록 하라.

 

그 이튿날 아전이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나한이 나타나 꾸짖어 말었다.

너는 무슨일이 있으면 우리들에게 직접 청탁할 일이지 어찌하여 

스승인 큰스님께  아뢰어 우리를 주장자로 맞게 만드느냐?

 

아전이 꿈속에서 말했다.

큰스님께서 주장자로 때렸다고요?  어째서요?

 

이유는 알 필요 없다. 

하여간 이번 일은 우리 스승님의 명령이니 도와주겠다.

 

그러나 앞으로 다시 그러한 일이 있을 때는 어림없는 줄 알아라.

잘 알겠습니다,  나한님들.

꿈을 깨고 난 아전은 곧바로 전주 부청에 달려가 옥리 자리를 자청했다.

 

전주 군수도 그 자리를 선뜻 내맡겼다. 

그러지 않아도 봉급이 박한 자리라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던 것을 자청해서 맡으려하니 전주 군수로서는

다행 중 다행이었다.

 

송사는 계속해서 일어났고 송사가 있을 때마다 수당이 지급 되었다.

아전은 생각보다 꽤나 넉넉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새 한달이 지나갔다.

 

하루는 군수가 아전을 불러 호방의 자리가 비었으니 그리 옮겨 앉으라 하였다.

아전은 비로서 나한님의 공덕과 대사의 덕화를 느꼈다.

 

그런데 한번 배운 도둑질은 쉽사리 그만둘 수 없었는지,

뇌물을 받은 것이 발각되어 호방이 된 석 달 만에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