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진묵대사의 일화모음제 4장
열세번째 이야기
광해군 14 년(1622), 대사의 나이 61세 때 일이다.
전주 송광사와 홍성의 무량사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불상을 조성하여 점안법회를 열었다.
그리고 두 절에서는 동시에 대사를 증명법사로 초빙했다.
그러나 대사는 어느쪽에도 가지 않았다.
대신 신표를 하나씩 보내어 증명단에 안치하고 점안법회를 하도록 일렀다.
그리고 훈계도 잊지 않았다.
이 신표를 모시고 점안법회를 하게 되면 존상은 원만상을 성취할 것이다.
그러나 그 뒤로는 불사한답시고 무조건 존상에 개금하지 말라.
그리고 무량사 주지에게는 특별히 주의를 주었다.
무량사 화주스님은 점안하기 전에는 결코 산문 밖을 나가지말라.
명심하라.
그런데 무량사의 불상은 홍성 사람이 혼자 3 천 금을 대어조성한 것이었다.
무량사로서는 아주 큰 시주였다.
점안법회 시간이 다가왔는데도 그 시주가 오지 않자 화주를 책임졌던
스님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참 이상하다. 어찌하여 이 시주님이 아직 도착을 못하고 있는 것일까?>
화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산문 밖까지 나갔다.
나중에 그는 어떤 갑사에게 피살되어 시체로 발견되었다 한다.
열네번째 이야기
대사는 말년을 전주 봉서사에서 보냈다.
봉서사라면 그가 일곱살 때에 출가한 절이다.
거기서 내전과 외전을 배웠고 사미로 성장한 절이었다.
그절에서 멀지 않은 곳에 봉곡(鳳谷) 선생이란 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덕망과 학식을 두루 겸한 고매한 서람이었다.
대사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로, 서로 트고 지내는 터수였다.
한번은 대사가 봉곡선생을 찾았다.
봉곡선생, 그 강목 좀 빌려 주시겠소이까?
왜 있잖소. 거 누구 어록이라던가?
봉곡선생이 알아차리고 옆에 놓였던 책 한 권을 빌려주었다.
대사는 그 책을 받아들고 말했다
모두 12 권이라던데 이 한 권만 빌려 주시면 나머지는 언제 보겠습니까?
아주 12 권을 함께 빌려 주구려.
아무리 대사가 총명하기로서니
한권을 읽는데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열흘씩은 걸려야 할 거요.
하여간 함께 주셨으면 합니다.
정 그러시다면 그렇게 하시구려.
대사는 어록 12 권을 빌려 발에 넣어 가지고 갔다.
봉곡선생이 사람을 시켜 대사의 뒤를 밟게 했다.
대사 또한 미행자가 있음을 눈치채고는 책 한권씩 빼어 다 읽고는 길옆에 던져 버렸다.
그렇게 해서 봉서사까지 오는 동안 12 권을 모조리 읽었고 또 모두 길 옆에 던져 놓았다.
봉곡선생의 심부름을 맡은 사람은 대사가 버리는 책을 모두 주섬주섬 주워서
돌아가 버렸다.
뒷날 대사가 봉곡선생을 찾아가 수인사를 나누자 봉곡선생이 말했다.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빌려간 소중한 책들을 모두 길가에 던져 버리셨소.
내가 사람을 시켜 모두 거두어 오기는 했소이다만.....
대사가 말했다.
아, 그러셨소이까?
그야 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에는 집착하지 말아야 되는게 아닙니까?
나와 선생의 차이점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소이다.
나는 읽고 난 책을 버리고 선생은 다 읽고 난 책을 다시 주워 모으고 말이오.
허허.
봉곡선생이 말했다.
무슨 뜻인지 자세히 알아듣게 말씀해 주실 수 있겠소이까?
예, 통발의 목적은 고기를 잡는데 있고 뗏목의목적은 강을 건너는데 있으며
손가락은 달을 가리키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소이다.
만일 고기를 잡고도 통발에 집착하거나
강을 건너고도 뗏목에 집착한다면 되겠소이까?
손가락을 펴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만 보고 있으면 되겠소이까?
봉곡선생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모든 내용을 책을 펼쳐 가면서 물어 보았다.
대사는 한 글자 한 구절도 틀리지 않고 모두 대답하였다.
봉곡선생도 그제서야 대사를 다시보게 되었다.
봉곡선생이 어느날 저녁을 준비해 놓고 대사를 초빙했다.
그리고 동비(童婢)에 모셔 오도록 일러 놓았다.
동비가 봉서사로 대사를 모시러 가다가 우연히 길에서 대사와 마주쳤다.
동비가 봉곡선생의 말을 전했다.
선생님께서 큰스님을 모셔 오라기에 제가 이렇게 왔습니다.
그때 대사는 허공을 바라보면서 배회하고 서 있었다.
대사는 동비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물었다.
너는 아들을 낳고 싶지 않느냐?
동비가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면서 대답을 못하고 있자
대사가 다시 말했다.
네가 복이 없어서 그런 것을 누구를 탓하겠느냐.
가서 선생께 아뢰어라. 내가 곧 가겠노라고.
동비가 돌아와 그대로 아뢰니 봉곡선생은 대사의 얘기에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그래서 물었다
그래, 너는 아무 대답도 못했단 말이지?
봉곡선생이 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늦게 대사가 도착하자 봉곡이 말했다.
어찌하여 이리도 늦으셨소이까?
대사가 말했다.
오다보니 마침 서쪽 하늘 저편에서 한줄기 신령스런 기운이 솟아오르고 있었소.
그것은 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서기지요.
해서 내가 그것을 붙잡아 어디다 쏟고 싶었으나 쏟을 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였소이다.
또 그것이 좋지 않은 척박한 땅에 흘러들어갈까 염려스럽기도 했고요.
그래서요?
그래서 어쩌겠소이까.
그 신령스러운 기운을 부수어 멀리 허공 밖으로 보내고 오는 길이오.
그래서 좀 늦어졌소이다. 미안하외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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